국창(國唱) 임방울 소리 담은 희귀 릴 테이프 원본 최초 공개

후암미래연구소 차길진 법사 광주시에 임방울 수궁가 담은 음반 기증

2010-01-26     윤지환 기자

국창 임방울의 육성을 녹취한 원본 릴 테이프가 최초로 공개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 차길진 법사가 임방울 선생의 녹취 자료 릴 테이프 3개를 지난 18일 오후 광주광역시에 기증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임방울 선생은 소리를 들려달라는 당대 거부들의 청탁을 거절할 정도로 주관이 확고했다. 또 기계장비를 이용한 레코드 음반 제작 등 육성 녹음을 기피하기로 유명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임 선생의 기록은 3분 내외의 레코드판(LP) 몇 장이 전부다. 음성 보존이 거의 없다는 점은 임 선생을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언제나 아쉬움이었다. 차 법사가 공개한 롤 테이프에는 수궁가와 농부가 등이 녹음돼 있다. 여러 편의 소리가 담긴 롤 테이프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기증은 문화사적으로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릴 테이프는 지난 1955년과 1956년 충주 경찰서장과 진해 경찰서장을 역임한 차 법사의 부친인 고(故) 차일혁 총경이 관사로 임방울 명창과 기예인들을 서너 차례 초청해 직접 녹취한 자료들로 수궁가, 농부가와 함께 춘향전 등이 담겨 있다. 릴 테이프에는 차 총경이 직접 고수를 맡아 임방울 명창의 소리를 북돋우는 육성이 그대로 녹음되어있다.

차 법사는 “당시 녹취한 릴 테이프가 음반관계자에게 유출된 것을 되찾아온 적이 있다”며 원반임을 강조했다.

차 법사로부터 자료를 기증받은 박광태 광주시장은 “이렇게 귀한 자료를 기증해준 차길진 후암미래연구소대표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밝혔다.

이번 릴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가장 놀란 인물은 임방울 국악진흥회의 김충재 이사다. 그는 “릴 테이프에 담긴 소리 하나하나가 매우 진귀하다”며 “특히 농부가는 임방울 선생이 대중에게 공개한 적이 없는 소리”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임 선생 소리 역사에 묻힐 뻔

유수한 문화기관이 많지만 특별히 광주시에 기증한 이유에 대해 차 법사는 “임방울 선생의 고향이 이곳이다. 지금도 전남에서 선생의 넋을 기리며 매년 기념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선고께서 유품으로 남긴 자료를 50년 넘게 소장하고 있다가 법인의 전통문화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복원을 해서 기증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공교롭게도 기념행사 주관이 구청에서 시청으로 격상된 시기에 맞추어 기증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생전에 임 명창과 교분이 두터웠던 선친께서 선생의 기념사업을 빛내기 위해 배려하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직접 녹취를 했던 차 총경은 ‘문화경찰’이란 용어를 처음 쓴 장본인으로 그의 문화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그의 문화 사랑이 없었다면 임 선생 육성은 후대에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차 총경은 6·25사변이 한창일 때 빨치산 토벌 작전을 수행하면서 상부의 명령을 어겨가며 지리산 화엄사를 비롯해 영호남의 국보급 고찰들을 전화(戰火)로부터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6월 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수난의 문화재 를 지켜낸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해 10월에는 경찰공무원으로는 처음으로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한 바 있다. 지난 12월에는 아산 경찰교육원에 1800백석 규모의 공연장이 ‘차일혁 홀’로 명명되기도 했다. 광주시는 전문 기술진을 활용해 기증받은 릴 테이프의 재생작업을 거쳐 원음을 다각도로 활용하고 빛고을시민문화관내 임방울전시실에 전시할 계획이다.


대한제국 구명시식

이와 함께 차 법사는 지난 20일부터 대학로에서 100일간 대한제국의 구명시식을 진행 중이다. 작년 7월 7일부터 13명의 개국 열성조에 100일간의 민족혼을 불어넣는 구명시식을 올린데 이어 두 번째다. 차 법사가 집전하는 이번 구명시식은 18위의 대한제국관련 왕조, 선열들의 위패와 동참자들의 조상 위패가 대상이다.

차 법사는 작년 기도 중에 네덜란드의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도협약 무효소송 서류를 접수해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차 법사는 이번 기도의 목적 중 하나가 간도 되찾기 운동의 일환임을 암시했다.

차 법사는 “대한제국은 우리가 간도를 되찾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며 “간도를 되찾기 위해선 우리가 대한제국을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제국 시대의 과거를 대한민국이 수용해야 한다고 차 법사는 주장했다. 한국의 영토분쟁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차 법사는 “작년 간도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 서류를 준비하면서 몇 가지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올해 경술국치 100년이 된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청일 간에 간도협약이 맺어진 때는 바로 대한제국시기였다”며 “그래서 본래 간도협약 무효 소송의 주체는 대한제국이다. 그런데 남북분단 상황에서 우리가 대한제국의 계승자라는 사실이 헌법 어디에도 명시되어있지 않다. 만약 간도 되찾기 소송이 본격화 된다면 법적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가 대한제국의 혈통을 잇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밝혀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차 법사는 “과거 한국령이었던 간도에 대한 한국의 영토권을 회복하기 위해 당시 선진국이 작성한 모든 법률 문서나 언약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엄밀히 따지면 간도는 대한제국을 위한 것이지, 현재의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혈통을 대한민국이 잇고 있음을 명백하게 해야 한다고 차 법사가 말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차 법사는 “전쟁 전후에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얄타, 포츠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는 분명 ‘(원상)회복’이라고 됐다”며 “다시 말해 원상회복이란 일제가 강점하기 전 상태인 대한제국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한국이 대한제국을 외면하지 않고 인정한다면, 남북한의 이미지 전쟁에서 뿐만 아니라 법적 우위를 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임방울은 어떤 인물?

광주 광산(光山) 출생인 임방울의 본명은 임승근(林承根)이다. 임방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는 다음의 두가지 추정이 있다. 어려서 울지도 않고, 방울방울 잘 놀아서 임방울이라 불렸다는 증언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임방울이 판소리하는 장면을 당대의 명창이 소리를 듣고 탄복하면서, “너야 말로 은방울이다” 라는 칭찬하면서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견해도 있다.

1917년 14세 때 이재현(李在賢)에게 《춘향가》 《홍보가》를 배웠고 유성준(劉成俊)에게 《수궁가(水宮歌)》 《적벽가(赤壁歌)》를 전수받았다. 1928년 상경하여 김창환(金昌煥)의 소개로 무대에 올랐으며 방송에 출연하는 한편, 콜롬비아 및 빅타레코드회사에 이어 오케이레코드회사에 전속되어 《춘향전》 《심청전》 등의 전집(全集)을 선배 명창들과 함께 제작했다. 판소리의 전통적 계승자로 통하며, 작곡·편곡에도 뛰어나 《호남가(湖南歌)》 《사별가(思別歌)》 등을 남겼다. 특히 《춘향가》에 뛰어나 신세기레코드의 임방울 창극조(唱劇調)가 있다. 1960년 국악상(國樂賞)을 받았다. 임 선생의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 만주에까지 그의 명성이 울렸고, 유성기 음반 <쑥대머리>는 100만 장이 넘게 팔린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