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대선자금’ 폭로 둘러싼 미스터리
그는 왜 폭탄을 던지고 떠났을까?
허태열·김기춘 전 비서실장·홍문종 등 친박핵심 실세 겨냥
“구명 요청했지만 거절”…인간적 배신감 등으로 폭로 결심?
‘성완종 리스트’ 진위 여부에 정치권 촉각…일부선 괴소문 나돌아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대선 자금’폭로로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다. 성 전 회장이 ‘김기춘·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 억대의 돈을 건넸다’고 폭로한 내용이 <경향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야당 등에서는 특검을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당사자들은 즉각 부인에 나서면서 성 전 회장의 폭로 배경과 폭로 내용의 진위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치권을 강타한 당대의 사건으로 불거진 만큼 이를 둘러싼 ‘풀리지 않은 의혹들’ 역시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검찰의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나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어낼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사건 속에 숨어 있는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자원외교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 억대의 돈을 건넸다”고 폭로했다.
이 신문은 “성 전 회장이 9일 새벽 서울 청담동 자택을 나온 직후 오전 6시부터 50분 동안 전화인터뷰에서 ‘내가 김 전 실장과 허 전 실장에게 각각 미화 10만 달러(약 1억원), 현금 7억 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김 전 실장이 2006년 9월 VIP(박근혜 대통령)를 모시고 독일에 갈 때 10만 달러를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며 “당시 수행비서도 함께 왔었다. 결과적으로 신뢰관계에서 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성 전 회장은 또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때 허태열 전 비서실장(당시 캠프 직능총괄본부장)에게도 현금을 줬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7년 당시 허 본부장을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만나 7억 원을 서너 차례 나눠서 현금으로 줬다”며 “돈을 심부름한 사람이 갖고 갔고 내가 직접 주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게 경선을 치른 것”이라며 “기업하는 사람은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말하면 무시할 수 없어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이후 성 전 회장은 북한산 형제봉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휴대폰 2대 왜
켜놓았을까?
이 과정에서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휴대전화 2대를 켜 놓은 이유에 대해 갖가지 궁금증이 제기되고 있다. 성 전 회장이 사망 전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현 정부 실세에게 거액의 돈을 전달해줬다”고 폭로한 시간은 9일 오전 6시쯤으로 50여분간 통화가 이뤄졌다.
경찰은 성 전 회장이 오전 10시 이전에 숨졌을 것으로 보고 있고, 유족들은 오전 10시로 보고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기자와 전화통화를 마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3시간여 가량이 남는다. 더구나 휴대전화 2개를 가지고 있었다. 성 전 회장이 주장했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다른 통화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함과 동시에 어디로부턴가 걸려올 전화를 기다린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마당발’로 불리는 성 전 회장이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함으로써 구원의 손길을 내밀 누군가를 기다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성 전 회장이 ‘유서’를 넘기고 잠적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이 보도를 접한 성 전 회장과 가깝거나 물밑에서 지원했던 인사들이 한번쯤은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핸드폰을 켜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이를 폭로한 점에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일단 정치권 관계자들 뿐 아니라 당사자들은 “구명 요청을 했지만 거절하자 인간적으로 섭섭해했던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성 전 회장도 정치인들을 상대로 자신에 대한 구명운동을 하면서 “내가 죽으면 혼자 죽을 것 같으냐”는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들은 이런 폭로를 감지했을 수도 있다. 성 전 회장이 자신들과 관련된 내용을 폭로할 경우 파장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 또한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성 전 회장이 친박핵심 인사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폭로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고 있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구명요청을 거절한 데 대해 성완종 전 회장이 인간적으로 섭섭했던 것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폭로의 배후에 ‘섭섭함’ 있다는 뉘앙스다. 이 주장을 역으로 놓고 본다면 후원금 등 물질적으로 지원해 온 새누리당 친박계 인사들에 대한 강한 원망을 드러냈다는 얘기가 된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한 것과 메모로 작성해 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 성 전 회장은 스스로 ‘MB(이명박)맨’아니라며 ‘표적수사’ 대상이 됐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원했고,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인수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다가 사퇴했다. 이 이력이 ‘MB맨’이라는 꼬리표로 따라붙었다. 더구나 검찰 수사의 주된 대상이 이명박 정권 인사들에 대한 비리에 초점이 잡혀 있다. 정치적 목적에 따른 표적 수사라고 생각, 억울함이 한층 더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성 전 회장이 모든 것을 폭로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진위 여부 놓고
갖가지 추측 나돌아
성 전 회장의 ‘대선 자금’ 폭로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보통들 사이에선 대선 자금과 관련한 미확인 소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인사들 사이에서는 “그럴 듯한 얘기를 들었다”며 괴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대선 때 몸 담았던 한 인사는 “대선 캠프가 어떻게 운영이 되겠느냐. 돈은 필수적이다”며 성 전 회장과 친박핵심 A와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심지어 친박 핵심 A씨와 A씨 측근 인사들에게도 건넸을 수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들 중 실제로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다. 당사자들은 “사실무근”이라고 성 전 회장에게 돈을 건네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문투성이인 ‘성완종 리스트’의 의혹을 해소할 방법은 사실상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뿐이다. 국민적 관심이 높다보니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정치권 금품제공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문무일 대전지검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린 것. 이에 따라 성 전 회장의 정례절차가 마무리 되는대로 경남기업 측에 의혹과 관련한 자료제출을 요청할 방침이다. 또한 공소시효를 완정하지 않은 사안들을 중심으로 수사 단서 확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성 전 회장이 이미 숨진 데다 금품수수 당사자로 지목된 인사들이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어, 수사가 시작돼도 실체규명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야당에서 특검을 거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대 피해자는
박근혜 대통령?
성 전 회장의 폭로로 인해 실질적 최대 피해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메모지에 이름이 올라 있는 인사들 대부분은 친박 핵심인 데다 전직 비서실장 출신이 2명이나 거론돼 있다. 정권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전후에 성 전 회장이 두 전직 비서실장에게 돈을 건넸다고 주장한 만큼 검찰 수사가 경선자금 수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를 경우 조기레임덕 우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더구나 가깝게는 재보선, 그리고 내년 총선과 대선에도 파장이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검찰의 강압수사 논란도 일고 있다. 과거 이 같은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실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친인척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투신자살했다. 2004년에는 박태영 전남지사, 이준원 파주시장 등이 비리 및 뇌물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목숨을 끊었다.
이런 와중에 성 전 회장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더구나 죽기 전 기자회견을 열어 억울함을 호소했다. 심지어 성 전 회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자원외교’와 ‘횡령 배임(215억 원 횡령 등)’을 맞바꾸자는 빅딜을 제안했다”고 폭로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검찰은 “그런 적 없다”, “강압수사는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 같은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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