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상주본’ 행방을 찾아서
화재 소실인가 절도인가 아니면 대국민 사기극인가
2008년 집수리 중 발견… 소유권 법정다툼 진흙탕 싸움
지난달 화재 발생… “자작극” VS “도난 후 방화한 것”
훈민정음. 1443년 세종대왕이 만들고 반포한 한글이다. 훈민정음의 문자 체계를 설명하고 사용 방법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책 ‘훈민정음 혜례본’은 국보 제70호이며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있다. ‘훈민정음 혜례본’은 1940년대 발견돼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보관 중인 ‘간송본’과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배모씨가 공개한 ‘상주본’ 두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상주본은 훈민정음의 창제원리, 사용법, 발음 등에 대한 해석이 적혀 있는 유일한 판본이다.
그러나 간송본이 미술관에 보관돼 있는 것과 달리 상주본은 현재 행방이 불명확하다. 상주본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갖가지 잡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배모씨 vs 조모씨
소유권 주인은 누구인가
고서를 수집하는 배 씨는 2008년 7월 집을 수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며 상주본을 처음 언론에 공개했다. 당시 문화재청 등 문화재 전문가들이 상주본을 감정한 결과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70호 훈민정음 혜례본(간송본)과 같은 판본으로 판정됐다. 뿐만 아니라 1조 원의 가치가 있다는 감정도 나왔다.
그러나 얼마 뒤 상주시에서 골동품 점을 운영하고 있는 조모씨가 상주본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소유권 분쟁이 시작됐다. 조 씨는 “상주본은 원래 우리 가게에 있던 것”이라며 “배 씨가 고서적 2박스를 구입하면서 상주본을 몰래 끼워 넣는 수법으로 훔쳐갔다”고 주장했다. 또 조 씨는 배 씨를 상대로 물품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4년에 걸친 법정다툼 끝에 2011년 조 씨가 승소해 상주본 소유권은 조 씨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배 씨는 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상주본을 내놓지 않았다. 조 씨는 상주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2012년 국가에 기증식을 했고 이로 인해 현재 상주본의 소유권은 문화재청이 갖고 있다.
그러다 다음해 배 씨는 상주본 절도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조 씨의 증언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로 인해 상주본 소유권이 애매하게 됐다. 당초 법원이 배 씨의 절도 혐의를 인정했기 때문에 조 씨가 소유권을 가져갈 수 있었다. 현재 문화재청이 가지고 있는 소유권은 조 씨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러나 배 씨의 절도 혐의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배 씨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조 씨 측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상주본은 과거 도승지를 지냈던 조상이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으로 이것이 조 씨까지 전해져 왔다”고 주장했다. 상주본을 둘러싼 소유권 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방화냐 자작극이냐
상주본은 어디로?
그러나 소유권 분쟁과는 별도로 현재 상주본의 행방이 묘연하다. 지난달 26일 오전 9시25분께 배 씨의 집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날 화재로 배 씨의 집이 모두 불에 타면서 집안에 있던 골동품과 고서적 등이 사라졌다. 그러나 상주본이 불에 타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배 씨가 상주본을 어느 곳에 보관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 씨는 “상주본은 큰방과 작은방에 나눠서 보관했다. 이번 불은 작은방에서 발생한 것으로 상주본이 불에 타 없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11년 배 씨가 절도혐의로 구속기소 됐을 당시 검찰수사관들이 배 씨의 집을 압수수색했지만 상주본을 발견하지 못했다. 때문에 배 씨가 상주본을 집이 아닌 제3의 장소에 보관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번 화재를 두고 배 씨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조 씨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상주본은 무사할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배씨가 쇼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배 씨가 상주본을 빼돌리기 위해 불에 탄 것처럼 자작극을 벌였다는 것이다.
현재 배 씨에게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하라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만약 배 씨가 상주본을 숨겨놓은 것이라면 외국으로 빼돌릴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경찰에서 배 씨는 상주본의 행방에 대해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배 씨는 또 “상주본을 불이 난 작은방과 또 다른 방에 나눠서 보관했다”면서도 또 다른 방이 어딘지에 대한 질문에는 “아직 밝히고 싶지 않다”며 언급을 회피했다. 이 같은 배 씨의 행동이 자작극 의혹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배 씨는 “불 때문에 그동안 모았던 골동품을 거의 다 잃었고 집안에 가보도 많이 없어졌다”며 “당장 살기도 어려워졌는데 내가 왜 불을 내겠느냐”고 부인했다. 오히려 배 씨는 방화를 의심했다. 화재가 발생하기 며칠 전에 모 언론사 기자가 작은 방 내부를 촬영했다는 것이다. 또 배 씨는 화재 발생 당일에 화재보험에 가입하라는 전화도 왔다고 주장했다. 배 씨는 “보험에 가입했다면 꼼짝없이 자작극 누명을 쓸 뻔했다”면서 “상주본을 노린 누군가가 방화를 저지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화전에 상주본이 도난당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나라의 보물 훈민정음
“국가가 나서야 한다”
한편 이 상황에 대해 황평우 은평 역사한옥박물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배 씨가 상주본을 한 장, 한 장 분책해서 따로 보관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 씨가 지금 ‘다 불에 탔다. 도난당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아봐야 한다”면서도 “국민적인 정서에서 훈민정음본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하루 빨리 국민들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산을 무작정 형사범으로 몰고 도난당했다고 몰고 민사적으로 소유권까지 바꿔가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관장은 이어 “문화재청이나 국가에서 배 씨에게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정당한 보상을 하는 것이 상주본을 가장 빨리 찾아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상주본은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다. 배 씨는 상주본을 훔치지 않았지만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상주본의 행방 또한 묘연하다. 상주본은 화재로 인해 모두 소실되거나, 아니면 도난을 당했거나, 일부만 소실됐거나, 빼돌렸을 수도 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사건의 진실을 배 씨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