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광해군, 팩션의 주인공으로 주목받는 이유
2015-04-10 조아라 기자
[일요서울 | 조아라 기자] 조선 15대 국왕인 광해군이 등장하는 콘텐츠가 줄을 잇고 있다. 최근 들어 유난히 광해군을 다룬 대중매체가 많아진 이유는 뭘까. 혹자는 “난세의 영웅인 동시에 권력투쟁에 무너진 비운의 왕이라는 점이 드라마적 요소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해군 열풍의 시작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다. 이주호와 황조윤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주연배우 이병헌은 1인 2역 연기를 선보이며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었다. 예민하고 난폭했던 광해가 따뜻하고 인간미 느껴지는 모습으로의 변화를 담은 영화는 그간 정형화 됐던 광해군의 이미지를 바꿨다. 또한 백성을 위해 권력을 장악한 세력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바람직한 위정자의 모습을 담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광해군의 이미지는 이후 다수의 작품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2013)’는 최초의 여성 사가장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다. 동명의 팩션을 각색한 이 작품에서 광해군은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난 정이에게 연정을 품고, 사가장인 정이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국왕으로서의 냉철함보다는 왕자 시절이 중심이 돼 인간으로서의 감성적인 면을 조명했다.
‘왕의 얼굴(2014)’은 광해군의 성장 스토리를 다룬 팩션이다. 여기에 한 여인을 두고 아버지 선조와 삼각관계에 놓이게 되는 로맨스를 더했다.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광해군이지만 이 드라마는 개혁군주로서의 광해군을 그렸다. 선조가 방계 콤플렉스와 임진왜란으로 역경을 겪는 동안 광해가 백성을 어루만지며 왕재로 성장한다는 스토리다. 여기에 관상이라는 운명론적 요소를 더해 ‘왕의 얼굴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진정한 군주의 상을 지향한다는 광해군의 이미지를 덧입힌 것이다.
현재 방송 중인 ‘징비록’에서도 광해군의 왕의 면모를 그린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발생 전 부터 1598년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해전까지의 시기에 조정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작품에서 광해가 주연으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시대 배경 상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징비록’도 전란에서 백성의 고초를 보며 왕으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과정이 빠지지 않는다.
신작 드라마 ‘화정(華政)’은 좀 더 노골적으로 광해의 치세를 그린다.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17세기 광해군의 시대를 옮긴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가 광해군에서 왕위를 물려주고, 인조가 반정을 통해 집권하는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담는다. 동시에 선조 유일의 적통 공주였던 정명공주의 삶을 함께 그린다. 화정의 제작진은 “불운한 왕인 광해군이 이 드라마를 통해 다른 평가를 받길 바란다”고 전했다.
광해군의 인기에 대해 일부에서는 그의 캐릭터성에 주목한다. 긴 시간을 세자로 보내며 겪은 심리적 고초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비극을 통해 성장했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중립외교’라는 위정자의 모습이 보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뚜렷한 성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과도한 미화를 자제해야 한다는 우려도 있다.
광해군은 조선시대 내내 폭군으로 윤색됐고 정통성이 부정됐다. 근대 이후에야 새롭게 재조명받는 광해군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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