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보고 탈북 여성이 성 노리개로 전락?
“살기 남기 위해 성(性)을 팔 수 밖에 없었다”
2010-01-12 서준 미디어헤이 대표
흔히 ‘탈북자’라고 하면 대부분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귀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상당수는 그렇기는 하지만 실제 ‘탈북’을 해도 남한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중국 국경 인근의 도시에서 살아가거나, 혹은 한국에 들어왔다가도 또 다시 해외로 나가서 살아가려는 탈북자들도 적지 않다. 특히 그 중에서도 ‘탈북 여성’들은 더욱 가혹한 삶을 살고 있다. 일부는 남편에게 학대를 받으며 성적 노리개가 되는 경우도 있고 언제다시 북한으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인신매매범의 표적이 되어 팔려가는 경우까지 있다. 또한 한국에 와서도 화류계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탈북 여성의 고단한 삶을 취재했다.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탈북 여성들의 앞에는 더욱 냉엄한 현실이 놓여 있다. 한국으로 가길 원치 않거나 혹은 갈 수 없는 이들은 대개 중국 국경의 도시 지역, 즉 조선족 동포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의 하루하루는 정말이지 힘겨운 나날들이다.
일단 처녀가 북한을 탈출했을 때, 그녀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안정이다. 이를 위해서 그녀들은 조선족 남성들과 결혼을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일부 조선족 남성들은 비용을 들여 거의 그녀들을 ‘사다시피’ 해서 함께 결혼을 한다. 하지만 남편의 학대는 그녀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조선족 남성들의 경우 교육 수준이 극히 낮기 때문에 여성에게 인격적인 대접을 해주기가 쉽지 않다. 또한 이렇게 돈을 주고 조선족 여성들을 사는 남성들은 신체적인 불구나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정상적인 ‘연애’를 통해 결혼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은 성격 자체도 비뚤어져 있고 여성을 마치 자신의 성적 노리개로 대하는 경우까지 생겨난다. 그러다 보니 탈북 여성들의 반발이 많다. 대개 탈북 여성들의 경우 교육 수준이 높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강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예 북한을 탈출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 그런 그녀들이 교육수준이 낮고 정신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조선족 남성과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그녀들은 그 결혼 생활에서도 또다시 탈출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되는 것이다.
결국 탈북 여성들은 조선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흥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심지어 이곳에는 한국과 비슷한 ‘노래방’도 존재한다. 일부 여성들은 그곳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다름 아닌 ‘중국 공안’들이다. 이들에게 걸리면 꼼짝없이 북한으로 되돌아 가야하고, 그렇게 되면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북 여성들 중에는 자살을 시도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어차피 그곳에서 살다가 공안에게 잡혀 ‘죽은 목숨’이 되나 북한으로 되돌아가 굶어죽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절망적인 생각 때문이다. 때로는 ‘굶어죽더라도 고향에서 굶어죽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역시 굶어죽을 정도의 가련한 현실일 뿐이다.
때로는 탈북과정에서 사기성이 강한 브로커들과 연결이 되어 북한을 탈출하자마자 인신매매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 이 여성들이 어디로 보내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경로가 파악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중국 어느 지역으로 끌려가 성노예로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성’이라는 것은 그녀들의 삶을 더욱 가혹하게 만드는 조건이 될 뿐인 셈이다.
한국 유흥업소에 근무하는 경우도 있어
중국 국경 인근도시에는 탈북 여성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가련한 인생’들이 또 있다. 바로 일명 ‘꽃제비’라고 불리는 탈북 어린이들이다. 이들은 길거리를 다니며 먹을 것을 주워 먹는 ‘거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삶보다는 이곳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하고 탈북을 했다. 때로는 부모와 함께 탈북을 했다가 그 와중에 부모를 잃고 본인 혼자만 살아남은 경우도 있다.
이래저래 고아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들 역시 매일 매일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다. 먹을 것이 있으면 ‘살고’, 먹을 것이 없으면 ‘죽는’ 것이다. 실제 많은 꽃제비들이 동사, 아사, 병사로 인해 생명을 잃고 있다.
아이들 역시 중국 공안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가끔씩 중국 공안들이 ‘일제 단속’을 통해 이들을 잡아들이고 있다. 특히 북한에서 ‘특무’라는 이름으로 탈북자들만 전문적으로 잡아들이는 요원들이 파견되기도 한다. 이들은 상당수 중국 공안 복장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한에서 파견 나온 특수 요원들이라는 이야기다. 이들은 탈북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 탈북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 역시 단속의 대상이 된다. 아이들을 재워주거나 밥을 먹여도 벌금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잡히거나, 죽거나, 죽을 고생하며 살아가거나’하는 세 가지 길 밖에 없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꽃제비들의 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 돈을 벌어 자신도 먹고 살고 고향에 있는 부모님들이나 형제들에게 보내주고 싶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왔다고 해도 그녀들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동포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주거지도 제공되지만, 어느 덧 홀로 자립해야 하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일부 여성은 화류계로 진입, 자신의 삶을 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한때 화류계의 전설처럼 이야기되는 A씨의 이야기다. 그녀는 탈북이후 자신의 생계를 위해 유흥가에 진출했다. 특이한 것은 그녀의 삶의 태도가 보통이 아니었다는 것. 화류계에 있었으면 어느 정도 돈도 벌었을 테고, 이른바 ‘자본주의의 맛’도 알았겠지만, 그녀는 ‘수전노’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철저하게 절약하는 생활을 했다. 알고 봤더니 그녀가 그렇게 했던 것은 북한에 남아있는 언니를 데려오기 위함이었다. 결국 그녀는 수천만 원의 돈을 모아 다시 중국으로 날아가 언니까지 탈북을 시켜 한국으로 데려오는 쾌거를 이룩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또다시 프랑스 파리에서 살 꿈을 꾸고 현재는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 한국에서의 인연을 완벽하게 끊어버려 과연 그녀가 어디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탈북여성과 탈북아동들의 처참한 고통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국제적인 구호도 이뤄지지 않고, 북한 사회의 변화도 요원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서준 미디어헤이 대표] www.mediahe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