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유공자 지정…보상비도 ‘껌값’

2004-09-03     윤지환 
‘알아서 찾아오는 사람’만 주는 보훈처 보상금 지급구조. 독립 유공자 단체 등 많은 유공자 단체들의 내부에서 나오던 불만의 목소리는 이제 불만의 차원을 넘어 분노로 변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보상대상자의 심사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유공자로 지정되기도 힘들 뿐 아니라 그나마 유공자로 지정된다고 해도 그 보상비는 그야말로 ‘담뱃 값’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보상비를 지급하는 데 대한 공고도 제대로 하지 않아 보상금 수급대상자가 보상사실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수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월남 참전 용사들은 다른 유공자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엽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70년대 후반부터 고엽제 피해 보상이 진행돼 현재 이것에 대한 보상이 모두 마무리된 상태다. 반면 우리나라는 90년도 초반에 와서야 고엽제 피해문제가 제기돼 93년에야 보상관련 법안이 마련되었다. 국가 보훈처에 고엽제 피해자에 대한 보상실태를 확인해본 결과 보훈처에서는 고엽제 피해자를 상급, 중급, 하급 3단계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보훈처는 현재 월남 참전자들의 나이가 50~ 60대인 점을 내세워 보훈대상자지정 신청을 하는 대부분의 참전 용사들을 일반 환자로 분류해 고엽제 피해자로 수급 받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주월 백마부대에서 근무했다는 한 참전용사는 “고엽제 피해자 급수를 따서 보상받는 게 장군으로 승진하는 것 보다 더 힘들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고엽제 환자 중 급수를 못 받고 치료만 받고 있는 사람이 3만 여명에 이른다. 보훈처 관계자는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상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고령화로 인한 지병인 경우가 많아 일반 환자로 분류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룡부대에서 근무했다는 한 참전 용사는 “그나마 하급이라도 받아 보상을 받다가도 이마저 못 받는 사례도 있다”면서 “나와 함께 근무한 전우 중 한명은 피부질환으로 하급으로 분류돼 미약하게 나마 보상을 받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나중에 급수를 좀 올려 보려고 당뇨병 기록을 올렸더니 당이 급수 이하로 검출됐다며 기존의 하급 수급자 명단에서 제명해 버렸다”고 말했다.그는 또 “이 친구가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의 병으로 급수를 땄다 하더라도 다른 병세가 급수 이하면 일반 환자로 분류하게 돼 있더라는 것”이라며 “이런 말도 안되는 규정이 어디 있냐”고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다.

정부의 주먹구구식 보상정책도 문제지만 이를 시행하는 보훈처도 국가 유공자들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유공자들은 “보훈처에서 유공자들을 마치 구걸하는 거지 취급하는 듯하다”며 불쾌한 심경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현행 보상 시행령 법규에 따르면 유공자로 지정된 참전용사들 중 신체에 이상이 없는 이들은 65세가 되어야 생계보조금 수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생계 보조금으로 매달 지급되는 돈은 6만원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월남참전용사 복지회의 한 관계자는 “65세가 넘어가면 한달에 6만원이 나오는데 그 정도의 돈은 65세가 되면 동사무소에서도 준다. 그런데 국가는 우리에게 이것마저 주는 게 아까운지 두 군데서 다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둘 중 한 곳에서만 받아야 한다.

동사무소에서 65세가 넘으면 주는 돈이 보훈처에서 주는 돈 보다 2만원 가량 더 많은데 누가 보훈처 돈 받겠나”라고 말했다. 보훈처는 지난 2002년도에 모든 참전 유공자들에게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검토되었으나 당시 보훈처장은 예산이 없어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강력히 표명해 이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그러나 보훈처에 확인해 본 결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상을 미루고 있는 보훈처장의 말과는 달리 보훈처는 해마다 예산이 남아 이를 불용 처리하고 있다. 또 보훈처 내부 투자에 관해서는 아낌없이 예산을 증액 편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훈처가 발표한 2004년 세출예산현황에 따르면 보상금 지원에 관한 예산지출은 지난 2003년도에 비해 약 7.5% 포인트 증가한 반면, 보훈처의 청사 증축, 관사 확보, 정보화 등을 위해 사용한 지출은 전년도에 비해 무려 55.7% 포인트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폭 증가하기는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단체지원 2.6% 포인트, 교육지원 9.7% 포인트 증가했고 의료지원도 10.9% 포인트 증가한데 그쳤다. 이런 사정은 지난 2002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보훈처의 예산집행은 해마다 자체 살림 불리기에 가장 큰 증가세를 보인 셈이다.반면 단체 지원에 대한 예산증가액이 2.6%에 그치고 있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듯이 보상에 대한 실수령자의 의견 수렴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예산편성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해마다 보상자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정작 실수요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예산은 수 년째 제자리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