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를 바꾼 김성근 감독, 부상퍼즐 맞추기가 승리열쇠
김태균도 달려…느림보 군단, 한 템포 빠른 야구로 승부수
감독의 상식파괴, 허를 찌르는 효율로 승리 고삐 조인다
지난달 28일 야구팬들이 기다리던 대망의 10구단 시즌이 시작됐다. 이런 가운데 팬들은 지난 시즌 씁쓸한 성적에 눈물을 훔쳤던 하위권 팀들의 반전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시즌 초반이어서 올 한해 구단성적을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저마다 필승을 다짐하며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지난해 참혹한 성적을 보인 KIA와 후반기 무너진 두산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단단해진 모습으로 승수를 쌓아가고 있다. 또 프론트와의 심각한 내홍을 겪었던 롯데 역시 왕년의 전국구 스타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다만 LG만이 여전히 허우적대면서 막내팀 KT와 꼴찌 경쟁을 하고 있다.
지난 시즌이 종료되자마자 팬들이 1인 시위까지 벌였던 한화는 김성근 효과때문인지 승리를 향한 의욕이 한층 두터워졌다.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한화의 스타일은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달라진 후반플레이
무기력 벗었다
지난 1일 홈 개막전을 가진 한화는 두산을 상대로 3-6으로 패하며 아쉬운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전문가들은 완전히 자멸했을 법한 승부였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며 이는 예년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한화는 5번의 최하위를 기록했던 최근 6년간 경기 후반 플레이는 엉망이었다. 점수차가 불어날수록 선수들의 집중력은 떨어졌고 실수가 속출했다. 선수들 스스로가 ‘오늘 경기는 졌다’고 생각했고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었다. 이런 패배감은 다음날 경기까지 악영향을 끼치며 연패가 길어졌고 많아졌다.
이에 김 감독은 부임 후 선수단 분위기를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 있도록 선수들을 독려했다.
지난달 28일 목동 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개막전에서 연장 12회말 서건창의 끝내기 홈런을 허용했을 때도 투수 교체 타이밍을 들어 본인을 자책했다.
지난 1일에도 1-3으로 뒤지던 한화는 6회초 수비에서 교체 카드 유창식이 볼 15개를 연속으로 던지며 자멸했다. 이는 단순히 2실점했다는 것보다 심리적인 타격이 훨씬 컸다. 결국 스코어는 1-5까지 벌어졌고 7회에 1점을 더 줘 1-6으로 밀렸다.
예년 한화였으면 그 점수차는 더욱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한화는 물고 늘어졌다. 선수 교체와 작전 지시는 더욱 촘촘해졌고 진 경기 속에서도 선수단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한 필사적인 움직임이었다. 7회 1사에서 연속 대타를 투입해 분위기 반전을 꾀했고 8회 2사에서 점수를 쥐어 짜냈다. 이용규의 안타와 김경언의 볼넷으로 만든 2사 1, 2루에서 김태균의 유격수 내야 안타가 더해져 2사 만루가 됐다.
이에 김 감독은 김태균 대신 발빠른 송주호를 대주자로 투입했고 나이저 모건의 적시타로 1점을 만회했다. 9회 마지막 공격에서는 최진행을 대타로 내세웠다.
비록 한화는 홈 첫 경기를 내줘야 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점수차를 좁혔고 달라진 한화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김 감독은 “끝까지 따라 붙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바뀐 선수단의 분위기 덕분일까, 다음날 열린 2연전에서 한화는 두산을 상대로 4-2로 승리를 거두며 과거의 악습을 끊어냈다.
지난 3일 대전에서 열린 두산전에서 한화는 선발 싸움에서 승리하며 경기의 흐름을 이끌어냈다. 이날 한화는 외국인 투수 미치 탈보트를, 두산은 진야곱을 선발로 내세운 가운데 3회 진야곱이 첫 실점을 기록하며 한화가 승기를 거머쥐었다.
4회 한화는 3점을 더하며 4-0으로 달아났다. 이후 탈보트는 5회 첫 실점을 하며 2점을 내줬지만 두산은 추가 득점에 실패해 결국 경기는 한화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빠른 발로 경기 지배
팬들도 놀라
한화의 변화는 또 다른 곳에서도 감지됐다. 다름 아닌예전의 느림보 한화가 자취를 감췄다. 지난달 29일 한화는 넥센을 상대로 첫승을 거둔 가운데 4번 타자 김태균이 적극적인 베이스러닝을 선보여 인상적인 주루 플레이를 만들어냈다.
4번 타자 김태균은 2회 선두타자로 나와 볼넷으로 출루했다. 김태균은 김회성 타석에서 볼카운트 0-2에 스타트를 끊었다. 히트앤런 작전이 김회성의 파울로 무산됐지만 주자 김태균도 달리 수 있는 것을 보여줘 팬들의 눈을 의심케 했다.
또 김태균의 주루 플레이는 3회 상대의 실책을 유발했다. 1사 1, 2루 김회성 타석, 볼카운트 0-2에서 1루 주자 김태균이 리드 폭을 길게 가져갔다. 3구 볼이 되자마자 넥센 포수 김재현이 1루로 송구했으나 1루수 박병호가 잡지 못했다. 볼이 뒤로 빠지지 않아 김태균은 1루에 머물렀지만 2루 주자 이용규가 잽싸게 3루로 들어갔다. 결국 김태균의 큰 리드가 가져온 실책이었다.
이처럼 발이 느린 김태균이 한 발이라도 더 리드 폭을 가져가며 작전에 맞춰 움직이는 장면은 과거 한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김태균이 이 정도이니 다른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화는 김 감독이 추구해온 빠른 야구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화는 넥센과의 개막 2연전에서 총 5번의 도루 시도를 모두 성공하며 넥센 배터리의 혼을 속 빼놨다. 특히 이용규, 정근우를 비롯해 송주호, 주현상, 강경학 등 빠른 선수들을 팀에 전면에 내세우며 경기장을 지배하게 했다.
앞서 한화는 전통적으로 느림보 군단으로 취급받았다. 이광환 감독이 이끌었던 2001년 유일한 도루왕 김수연을 배출하며 팀 도루 1위(135개)에 오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 동안 팀 도루 순위는 8-7-8-6-8-7-7-7-9-8위로 하위권을 도맡아했다. 여기에 장타력까지 급감한 최근 4년 사이에는 득점력마저 떨어졌다. 장타가 아니면 뛰기라도 해야 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반면 최근 달라진 한화를 본 김 감독은 “선수들이 시도 때도 없이 뛴다”면서 “야구는 변화를 줘야 상대가 의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뛰어주고 있다”고 반겼다.
진화한 김성근
깨달음을 실천하다
4년 만에 KBO 리그 현장으로 복귀한 김 감독도 달라졌다. 김 감독은 지난달 29일 목동 한화전에 앞서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며 전날 연장 혈투를 통해 깨달은 부분, ‘템포’라는 사실을 전했다.
김 감독은 “12회 연장 승부를 펼치며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넥센 벤치가 한 박자 바르게 투수 교체를 가져갔다. 그래서 아 템포구나라고 느꼈다”고 전했다. 이 깨달음은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화는 곧바로 승리를 위하 한 박자씩 빠르게 투수교체 타이밍을 가졌다. 이날 선발 투수인 송은범은 3.1이닝 동안 노히트 호투를 펼쳤지만 4회말 2실점하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이에 김 감독은 곧장 안영명으로 투수를 바꿨다. 이후 한화는 4회에만 3번의 투수 교체를 실시하며 넥센의 흐름으로 넘어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이러한 김 감독의 필사적인 움직임에 선수들도 보답하며 승리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특히 선수들은 ‘희생의 야구’를 펼치며 겨우내 지옥 훈련의 성과를 그라운드에서 보이고 있다. 한화는 개막 2연전에서 5개의 희생타를 기록했다. 특히 정범모는 이틀간 4번의 희생번트를 성공시켜 득점 기회를 다음 타자에게 잇게 했다.
지난해 명장 김응룡 감독도 변화에 실패한 한화였지만 김 감독 이후 몰라보게 달라지면서 또다시 김 감독의 야구철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야구는 점차 시스템화 돼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든 것이 시스템 하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여 효율적인 야구를 구사하고 있다. 반면 김 감독은 이런 시스템과 거리가 멀다. 효율을 추구하긴 하지만 정해진 법칙에 따라 운영되는 일률적인 시스템을 거부해왔다.
이를 두고 김 감독의 야구 철학은 ‘상식파괴’에서 시작된다는 평가를 내린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전술과 전략을 앞세워 조직원들의 긴장감을 높이곤 했다. 이 같은 전략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 감독의 상식파괴는 시즌 초부터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 탈보트가 나흘 휴식 후 다시 선발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팬들이 놀랐다. 개막전에서 탈보트는 110개의 공을 던졌다. 정상적인 로테이션이라면 3일 등판해야 맞다.
하지만 2일 등판하면서 시즌 초부터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또 김 감독은 당초 선발이 유력해 보였던 유창식을 지난 경기에서 구원으로 등판시키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마운드 운영을 선보였다. 김 감독의 ‘상식파괴 야구’는 라인업에서도 적용된다.
1일 경기에서 송광민의 1번 기용도 파격이라면 파격이다. 다른 감독들도 간혹 예상을 깨는 라인업을 들고 나온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 빈도수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러나 김 감독의 상식파괴는 SK시절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승률 5할 사수
이처럼 확연히 다른 모습을 갖춘 한화이지만 여전히 완전치 못하다. 선수들의 부상으로 곳곳이 비어 있다. 덕분에 시범경기부터 선수수급문제로 곤욕을 겪어왔다. 하지만 이들이 속속 복귀를 알리고 있어 한화는 더욱 안정을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김 감독에 따르면 배영수는 복귀 준비를 마친 상태다. 그는 지난달 28일 목동 넥센전에 앞서 훈련 중 허리에 담 증세를 보였다. 이에 대전구장에 내려가 컨디션을 끌어올렸고 지난 2일 불펜 피칭을 소화하며 몸 풀기에 나섰다.
배영수는 “16년 동안 프로 생활을 하면서 담이 생긴 것은 처음인 것 같다”며 “등판은 문제가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뿐만 아니라 다른 부상 선수들도 슬슬 복귀에 시동을 걸고 있다. 우선 지난해 왼쪽 발목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던 한상훈은 2군과의 연습경기를 통해 실전 감각을 되찾고 있다. 한상훈과 함께 김태완도 4월 중에 돌아온다. 지난해 11월 마무리캠프 때 어깨 통증으로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못했으나 최근 배팅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베테랑’ 안방마님 조인성은 5월 복귀를 앞두고 있고 정근우도 현재 훈련을 소화하며 경기에 뛸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화는 부상선수들이 시즌 초반부터 전력에서 이탈해 경기를 어렵게 풀어가고 있다. 김 감독은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해야 한다”면서도 “이산가족들이 모이면 해볼 만하다. 부상선수들이 다 모일 때까지 5할 승률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김 감독의 바람처럼 한화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두산과의 홈 2연전에서 1승 1패를 기록하며 다시 5할 승률을 회복했다. 앞으로 부상 퍼즐이 맞춰지면 한화의 공수 전력은 한층 더 보완 될 것으로 보여 예전의 무기력한 한화의 모습은 지워도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갈 길 먼 한화지만 시즌 초반부터 달라진 모습과 정신자세를 보여줌으로써 한화 팬들을 열광케 하고 있다. 다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시즌 후반까지 상승세를 이어가 명실상부한 야구명가로 재건되기까지 김 감독의 매직, 상식파괴가 빛을 발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