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손배 소송 포기 등 합의서 강요 “조폭보다 더해”
[을의 갑질] 건설사 횡포에 건축주 ‘냉가슴’
건설사 직원 40명·컨테이너 동원해 호텔 점유 하기도
인수인계 후 주기로 한 공사대금도 미리 달라고 종용
지난 2월 13일 서울시 충무로의 한 호텔공사 현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공사중이던 호텔 출입구가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 3개로 가로막혀 버렸다. 회색의 컨테이너 박스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해 옮겨다 놓은 것으로 보였다. 심지어 컨테이너 2개는 움직일 수 없도록 용접까지 돼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컨테이너 사이로는 자동차 한 대와 몇몇 사람이 보였고 컨테이너 창문에는 한 건설사 명의로 유치권행사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객실문 폐쇄·메인전기 차단
가구 입고 과정서 쫓겨나
이 공사 현장은 스테이비호텔 건설현장이었다. 건축주인 청산물산은 지난 2013년 7월 30일 58억원 규모의 호텔신축 공사도급계약을 국내 B건설사와 맺었다. 당초 준공일은 2014년 10월 30일이었다. 하지만 준공일은 설계변경과 공사중단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지난 2월 16일까지 연기됐고 건축비도 70억 원으로 늘었다.
청산물산 측이 최종 인수인계일인 2월 16일까지 모든 작업이 완료되려면 가구입고 및 공사가 완료돼야 했다. 하지만 1월 27일까지 수차례 B건설사에게 가구입고를 요청했으나 특별한 이유없이 거절해 호텔현장 진입로와 밖에 가구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월 11일 가구납품 업체를 통해 호텔객실로 가구 입고를 시도했다.
B건설사는 가구납품업체와 청산물산 측이 가구 입고를 진행하는 도중 호텔 내 모든 객실문을 폐쇄했고 전기실 메인전기 차단, 엘리베이터 작동 중단과 함께 회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40여명을 공사현장으로 불러들여 공사대금 미지급을 이유로 유치권을 주장하며 호텔을 무단점거해 버렸다. 컨테이너 박스가 호텔 입구를 막아선 것은 바로 다음날인 12일이다.
기성금에 대해 이견
준공일 연장도 마음대로
청산물산과 B건설사는 공사대금 미지급 부분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청산물산 측은 “공사가 시작된 이후부터 유치권 문제가 발생한 2월 이전까지 기존의 기성금을 꼬박꼬박 입금해 왔다”고 밝혔다.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당초 사용승인일은 지난해 10월 30일 이었지만 B건설사는 각종 설계변경과 보강공사 등을 이유로 12월 15일, 12월 30일로 연장을 요청해 왔다. 이 과정에서 B건설사는 2차설계비용으로 4억7000만 원을 추가로 요구했고 12월 30일까지 설계승인을 연장해 주지 않으면 공사인원을 투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이로 인해 추가공기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청산물산을 압박했다.
이후 B건설사는 청산물산과 협의없이 준공일을 12월 30일로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청산물산은 할 수없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준공일을 12월 30일로 연장해줬다. 이 과정에서 B건설사는 황당한 요구를 해 왔다. 만약 12월 15일까지 사용승인을 받으면 성과금으로 7000만 원~1억 원을 달라는 것이었다.
B건설사의 황당한 요구조건은 또 있었다. 2차설계변경 계약체결을 하지 않으면 공사를 중지시키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결국 B건설사는 11월 17일부터 12월 6일까지 20일간 공사를 중지시켰다. 또 B건설사는 청산물산 측이 2차 설계변경 증액분에 대해 4억7000만 원이 아닌 1억 7000만 원을 통보하자 공사증액 전부를 인정하지 않으면 공사를 재개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또다시 공기연장을 요구했다.
결국 청산물산 측과 B건설사는 12월 6일 2차 변경계약 4억6000만 원을 수용했고 사용승인도 1월 15일까지 연장해줬다. 이후 12월 22일 청산 물산은 B건설사 측이 지난해 8월 1일부터 11월 16일까지 105일간의 기성금으로 요구한 7억9700만 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B건설사는 31일 12월 7일부터 12월 31일까지 25일간의 기성금 약 8억8165만 원을 또 청구해 왔다.
청산물산은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계산된 기성금이 과다하다는 주장이다. 공사기간 동안 주로 마감공사가 이뤄졌었는데 B건설사는 공사투입인원을 제한적으로 했으며 공사일보 미제출, 마감품질 불만족 등의 이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청산물산은 이 시기 B건설사가 당초 지정해 계약한 정품 친환경 페인트가 아닌 저가의 페인트를 허락없이 사용한 점을 밝혀냈다.
고가 정품 페인트 대신
저가 페인트 사용
당초 청산물산 측은 이 페인트 구매비로 4천9675만 원을 미리 지급했었다. B건설사의 이러한 행위는 명백한 사기 행위다. 청산물산 측이 브랜드와 판매업체를 미리 알려줬음에도 의도적으로 저가의 타 브랜드 제품을 구입해 사용한 것은 B건설사의 의도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1월 15일까지 연장됐던 사용승인일이 다가와도 B건설사는 공사를 마무리짓지 못했다. 청산물산은 또 할 수 없이 사용승인일을 2월 2일까지 연장해 주고 ‘인수인계’는 2월 16일까지 박기로 하는 확인서를 B건설사와 상호 교환했다. 그런데 문제가 또 발생했다. 사선제한 규정위반시공으로 수정공사를 하게 된 것이다. 당초 설계를 B건설사와 감리가 잘못 이해해 일어난 일이었다.
불공정 합의서
영업 손실 못 이겨 합의
청산물산은 2월 4일이 되자 지난해 12월 2차설계변경 증액분이 포함된 기성금을 감리확인하에 7억9090만 원으로 확정해 2월 27일 지급하겠다고 B건설사에 통보했다. 청산물산 측에 따르면 통보 받은 B건설사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갑자기 합의서를 제시했다고 한다.
내용은 페인트 관련 이의제기 않기, 하자·손배 등 민형사상 소송 않기, 가구입고와 시운전 및 점검없이 인수인계를 받으라는 불공정 합의서였다. B건설사는 이러한 내용의 합의서를 청산물산 측에 수차례 보내왔고 이에 응하지 않자 이를 빌미로 호텔을 점거하고 공사를 중단했다. 그리고 2월 11일 12월 기성금에 남은 공사대금 잔액 모두를 지급하라고 공문을 보내왔다. 하지만 12월 6일 2차 설계변경 계약 당시 확인서를 살펴보면 “잔금은 지급조건 충족시 최장 30일 이내 지급”하기로 돼 있다.
한마디로 ‘을의 갑질’이었던 셈이다.
사용승인일이 늦어지면 손해 보는 곳은 청산물산이다. B건설사는 이러한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청산물산은 2월 13일 기성검사에 의해 미리 통보했던 7억9090만 원을 B건설사로 송금했다. 하지만 B건설사는 3일이 지난 16일까지도 유치권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사선제한 수정공사로 인한 비용까지 도급금액에 포함시켜 지난번 보내온 합의서보다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조건의 내용으로 합의를 종용해 왔다. 하지만 청산물산은 약 17억 원의 영업손실과 압박으로 인해 합의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을의 횡포’에 갑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B건설사는 청산물산에 의해 서울중부경찰서에 고소된 상태다. 하지만 B건설사는 지금도 청산물산 측에 합의서 위반이라며 지속적으로 고소 취하를 종용하고 있다.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