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글 하나 잘못 올렸다가 경찰 체포·구속까지

황당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례 살펴보니…

2015-03-30     이지혜 기자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1948년 정부가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한 ‘국가보안법’은 60여 년 동안 끊임없는 논란을 가져왔다. 국보법의 기본 취지는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한국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간첩 또는 좌익사범의 처벌이다. 이러한 취지와 국보법의 필요성은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그러나 실제 국보법은 박정희, 전두환 정부 시절 민주화 운동을 누르는 도구로 악용된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1년 개정된 이후 악용사례는 줄었으나, ‘북한 찬양’에 대한 자의적인 법 해석이 가능하다는 문제점을 갖게 됐다. 그로 인해 황당하게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사람도 나타났다.

제7조 찬양·고무 항목 두고 폐지 존속 논쟁 거세
백신 제공·北식당 이용, 미사일 글 올렸다가 ‘화들짝’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 ①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해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위의 국보법 7조는 ‘찬양·고무·선전’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없어 광범위한 법 적용이 가능해 논란이 되는 항목이다. 황당한 국보법 위반 사례들의 경우도 위 조항 위반으로 처벌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폐지vs존속’을 두고 가장 많은 논쟁이 일어나는 항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황당한 국보법 위반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북핵 관련 글 올렸다가
집행유예 선고 ‘날벼락’

지난 25일 오후 3시 법정에서는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A씨의 항소심이 열렸다. 앞서 A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북한 핵 관련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국보법 위반 적용을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는 판사의 질문에 A씨는 억울함을 쏟아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사일에 관심이 있었다. 남자아이라면 모두 다 그럴 것”이라며 “북한 핵에 대한 글을 올렸을 뿐이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는 취지는 아니었다. 내 글이 다른 식으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A씨는 이어 “북한과 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핵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도 핵을 소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을 뿐”이라며 “다시는 블로그에 북한 관련 글을 올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A씨는 “검찰이 항소하면서 ‘재범의 우려가 있다. 엄벌에 처해달라’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2003년 사업에 실패한 뒤 노모와 두 아이를 부양하던 평범한 가장이 블로그에 올린 북핵 글 때문에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은 것이다. 이번 사건에 놀란 그는 “일과 관련 된 일 외에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009년 가수 신해철도 북한 미사일 관련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보수단체로부터 국보법 위반으로 고소당했다. 당시 신해철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합당한 주권에 의거해 적법한 국제 절차에 따라 로켓의 발사에 성공했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에 당시 검찰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볼 수 없고, 본인이 그런 위험성을 인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조롱·풍자 목적 리트윗
구속부터 무죄 판결까지

2012년 박정근씨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북한 노동당 대남선전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계정의 글을 리트윗(전달)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북한 혁명가 동영상 자료를 링크하거나 가사를 게재하는 등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한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박 씨는 당시 재판에서 “북한 정권을 조롱하고 풍자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실제로 박 씨는 트위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표하며 조문 대신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조의의 뜻으로 보내겠습니다.” “김정일을 퇴치하자, 병균퇴치, 암퇴치.” 등과 같이 북한을 조롱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박 씨가 북한 계정의 글을 그대로 올린 것을 ‘이적표현물 게재’로 봤다. 이에 1심 재판부도 “피고인이 작성하거나 리트윗한 글을 국가보안법이 정한 이적표현물로 인정할 수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동조·목적성이 인정되지 않고 북한을 조롱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 씨는 지난해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황당한 국보법 위반 사례는 또 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발생 당시 국외 주재 한국대사관들이 교민들에게 “북한 식당을 이용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다”고 통보한 것이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한국대사관들은 교민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면서도 김정일 통치자금의 원천이 되고 있는 북한 식당을 이용하는 행동을 삼가라”고 전달했다.

그런가 하면 2012년 안철수씨는 “북한에 V3백신을 무료로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보수단체로부터 국보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2013년 축구선구 정대세도 과거 해외 방송에서 “김정일을 존경하며 믿고 따른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국보법 위반으로 고발당한바 있다.

위 사례들은 대다수 앞에서 소개한 국보법 제7조 위반을 이유로 발생했다. 이처럼 찬양·고무에 관한 법률은 범위의 제약이 없어 광범위한 해석이 가능해 처벌 범위가 무한히 확대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 대해 남북분단, 휴전상태 등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놓고 볼 때 꼭 필요하다는 반대 목소리도 높다. 해당 항목에 대한 찬반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