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사반장 21탄 ‘미모의 파이터’ 지경순 경위

기획연재-이수영 기자의 리얼스토리 “민망한(?) 부위 다친 ‘호빠’ 마담 병원 끌고 간 사연은…”

2009-11-24     이수영 기자

대한민국 1세대 여형사를 만나는 날. 터프한 중년 여인을 상상했던 기자는 깜짝 놀라고 말했다. 몸에 착 감기는 가죽 재킷에 세련된 화장으로 한껏 멋을 낸 늘씬한 미녀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

리얼스토리 21번째 주인공인 지경순(49) 경위는 ‘현대판 다모’로 불리는 대한민국 여자형사기동대 창립멤버다.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으로 1979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의 경호원으로 특채 선발되며 경찰과 인연을 맺었다.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지원부대인 101경비단(백일단) 소속으로 이순자 여사 등 퍼스트레이디 근접 경호를 담당했고 지난 1991년 창설된 서울경찰청 산하 여자형사기동대(이하 여형사기동대) 초창기 멤버로 활약했다. 90년대 기업형 호스트바(호빠)와 동성(同性) 성매매 실태를 추적해 사회적 이슈를 만든 것도 지 경위와 여형사기동대 멤버들이다.

1세대 여형사가 겪은 사건 비화와 애환을 [ 일요서울 ]이 지상 중계한다.

여형사기동대 창설 이듬해인 1992년 지 경위를 비롯한 18명의 여형사들에게 특별 임무가 떨어졌다. 서울 청량리 인근의 유흥업소들이 남자 접대부 수십 명을 갖추고 비밀 변태영업을 벌이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된 것이다. 지 경위 등 여형사 5명은 손님으로 위장하고 문제의 업소에 잠입했다.


여형사, ‘호빠 죽순이’로 변신하다

고참 여형사가 돈 많은 귀부인 행세를 했고 서른을 갓 넘긴 지 경위는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 분했다. 화려하게 차려 입은 이들이 두둑한 현찰을 흔들어보이자 ‘비밀호빠’의 문은 쉽게 열렸다.

“본부에서 지원한 수사비가 아니었으면 잠입할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대기업 간부 ‘사모님’으로 변장한 선배가 핸드백에서 뭉칫돈을 척척 꺼내자 웨이터들 대우가 달라지더군요. 일단 룸에 들어가니 그야말로 별천지였습니다.”

서울 청량리 B호텔 바로 옆에 자리 잡은 5층짜리 건물이 여형사기동대의 첫 번째 목표물이었다. 첩보에 따르면 이 건물 3~5층 전체가 비밀 호스트바로 운영되고 있었다. 마담들은 찾아온 손님의 신상을 일일이 기록해 철저히 단골만 받았고 룸까지 이르는 내부는 완벽한 미로였다.

“룸에 앉아있는데 세상에, ‘연예인급’ 미소년들이 줄줄이 들어오는 겁니다. 나이도 갓 스무 살 될까 말까한 어린애들 천지더군요. 그때 초이스를 못 받고 그냥 나간 선수들만 줄잡아 40명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단속하고 보니 이 업소 한군데에서만 80명이 넘는 남자 접대부가 고용됐더군요. 그때 22살 먹은 ‘여 마담’이라는 새끼마담과 친해졌는데 이 친구 때문에 작전을 물 말아 먹을 뻔 했지요.”

허리띠 졸라매 모은 수사비를 ‘총알’삼아 여형사들은 업주의 경계심을 푸는데 집중했다. 큰손 행세를 하며 적잖은 팁을 뿌린 끝에 마담과 친분을 쌓은 수사팀은 다음 방문 일정을 예약할 수 있었다. 남은 건 현장을 덮쳐 일망타진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복병이 숨어있었다. 지 경위의 말을 들어보자.


“다쳐도 하필이면…”

“약속한 날짜, 시간에 맞춰 서울경찰청 소속 남자 형사들의 지원을 받아 소탕 작전이 벌어졌습니다. 여형사기동대 인원이 18명뿐이라 수적으로도 불리하고 남자들과 몸싸움을 하기 시작하면 밀릴 수밖에 없으니 검거 작전에는 대부분 남자 형사들이 동행하지요.”

문제는 경찰의 단속 정보가 업소에 먼저 흘러들어갔다는 것. 자연스럽게 잠입조를 담당했던 여형사들이 손님을 가장해 문지기를 통과한 직후 업소 내부에서 한바탕 추격전이 벌어졌다. 미로 같은 통로를 따라 요리조리 몸을 숨기는 남자 접대부들을 일일이 포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지 경위 눈에 ‘여 마담’이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중학교 시절까지 육상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순식간에 여 마담의 턱밑까지 쫓았다. 건물 옥상을 향해 계단을 질주하던 여 마담은 막다른 곳에 몰리자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지 경위를 쏘아보았다.

“아무리 젊은 남자애라도 훌쩍 뛰어내릴 수 있는 높이가 아니라 ‘다 잡았구나’ 싶었어요. 이럴 땐 살살 달래서 데리고 내려가는 게 상책이죠. ‘야, 더 이상 튈 데도 없으니까 누나 따라와’하고 한 걸음 내딛었는데, ‘그 일’이 벌어진 겁니다.”

쫓기던 여 마담은 서 있던 곳에서 약 2m 아래의 맞은편 난간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난간에는 드럼통 몇 개가 놓여있었고 그는 이를 발판 삼아 도망치려했던 것. 그런데 위가 막힌 듯 했던 드럼통은 구멍이 뻥 뚫려 있었고 여 마담의 호리호리한 몸뚱이는 그대로 드럼통 안에 쏙 빠지고 말았다. 곧이어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지 경위의 귀청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처음엔 녀석이 장난하는 줄 알았어요. 그 정도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해도 발목 접질리는 정도인데 아주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더군요.”

‘장난하지 말고 잽싸게 나오라’며 을러댔지만 눈동자를 허옇게 까뒤집은 여 마담의 모양새가 수작 같지는 않아 보였다. 얼른 다가가 드럼통 안을 들여다본 지 경위, 곧 나름대로 참혹한(?) 광경에 말을 잃고 말았다.

“글쎄 드럼통 안에 새끼손가락 굵기 만한 철근이 삐죽이 솟아있었는데 그게 녀석 엉덩이에 박혀있는 게 아닙니까. 죽는다고 소리 지를 만 하지요.”

곧바로 달려온 남자 형사의 도움을 받아 드럼통에 ‘꽂힌’ 여 마담을 빼낸 지 경위는 그를 인근 병원으로 급히 옮겼다. 진찰결과 항문과 직장 일부에 상처가 났을 뿐 다행히 상태는 심각하지 않았다.

“저보다 열 살이나 어린애가 아파서 끙끙대는데 가엾더군요. 딱히 돌봐주는 가족도 없어서 제가 틈날 때마다 병원에서 간호를 해줬죠. 맘 같아서는 호스트 일도 그만두게 하고 싶었는데 그건 잘 안 됐어요. 이후 형사와 정보원으로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았죠.”


‘튀는’ 여형사에서 회사원 되기까지

지경순 경위가 경찰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특별하다. 태권도 국가대표로 1979년 상명대 체대에 입학한 지 경위는 그해 청와대 무도특채 경호원 시험을 봤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밀착 경호할 9명의 최종 합격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 하지만 곧바로 10·26 사태가 벌어지면서 ‘박근혜 경호팀’은 사실상 해체되고 말았다.

“일도 시작하기 전에 임무가 없어지는 바람에 그냥 학교에 복학할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경찰에서 합격자들을 채용한다는 통보를 받고 순경 제복을 입었죠.”

171cm의 큰 키에 눈에 띄는 미모로 경찰 제복 모델에 선발되기도 한 지 경위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단연 튀는 여경이었다. 당시만 해도 복장규제와 서열이 엄격했던 여경 사회에서 지 경위의 자유분방함은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경 선배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시죠? 요즘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내가 입문했을 때만해도 여경 고참은 기숙사 사감선생님 같았어요. 매니큐어나 눈 화장, 진한 색깔 립스틱 같은 건 꿈도 못 꿨죠.”

그래도 화장이 너무 하고 싶은 날은 선배들 앞에선 맨 얼굴을 보이다 몰래 화장실 칸막이에 화장품을 싸가지고 들어가기도 했다. 이젠 다 옛날이야기라며 웃는 지 경위의 목소리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는 듯 했다.

그런데 지경순 경위는 지난 94년 돌연 경찰 제복을 벗었다. 현직에 머물러 있었다면 지금쯤 경정 직위쯤은 달았을 그는 왜 안정된 직장을 포기했을까.

“너무 어릴 때 경찰에 입문해서인지 제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가족들이 미국에 건너가 있는 상황이라 그립기도 했고. 더 늦기 전에 다른 길을 찾아보자 싶어 사표를 던지고 한국을 떴죠.”

야심찬 출발이었다. 스무 살부터 여형사로 14년을 살았던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깥세상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한국에서 경찰로 대우만 받다가 막상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이국에 가니 적응이 쉽지 않더군요. 결국 가족들을 남기고 혼자 한국에 돌아왔어요. 그리고 사업에 손을 댔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습니다. 먹고 살기에 지장은 없어도 옛날 생각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지요. 그러다 2005년 지금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지 경위는 현재 동양생명 SIU(보험사기조사 전담팀)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보험금을 노린 각종 사기수법을 파악하고 의심스러운 가입자를 조사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여형사 시절 질리도록 했던 일과 똑같다.


“강호순 사건, 제때 파악 못한 것 실수”

현재 각 보험사 조사관으로 재직 중인 전직 경찰의 수는 250여명. 이 가운데 여성은 지 경위가 유일하다. 매년 보험사기 사례집을 정리해 경찰청에 전달하고 1년에 5번은 지능계 현직 형사들과 세미나도 갖는다. 실제 그가 조사를 담당한 굵직한 보험사기 사건도 많다.

2004년 태풍 매미 때 홍수에 휩쓸려 실종됐다고 허위신고를 해 사망보험금 20억원을 챙긴 부부를 4년 동안 추적, 진실을 밝히기도 했다. 또 지난해 40대 남성이 베트남까지 원정을 가 고의로 다리를 절단하고 상해보험금을 타내려 한 사건도 지 경위에 의해 사기로 드러났다.

특히 올 초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방화·살인 혐의와 관련해 지 경위는 보험 전문가의 입장에서 검찰 자문을 담당하기도 했다. 강호순은 두 번째 부인과 장모 등의 명의로 거액의 사망보험에 가입한 뒤 집에 불을 질러 두 사람을 살해하고 보험금을 가로챘다는 혐의를 받은 바 있다. 강호순이 가입한 사망보험 조사관은 다름 아닌 지 경위였다.

“너무 아쉬운 사건이었어요. 그가 가입한 게 화재보험이었다면 방화와 관련해 어떻게든 허점을 찾았을 텐데 사망보험은 사망 여부만 확실하면 보험금이 나가게 돼 있거든요. 강호순 사건이 이슈화 되고 나서 재조사에 착수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새로운 사실을 건지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현장에 나가 목격자 증언을 다시 확인하는데 두 모녀가 불에 타들어가면서도 방범창에 매달려 울부짖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튀는 여형사에서 사업가, 회사원으로 팔색조 삶을 살아온 지경순 경위. 화려한 싱글인 그는 여전히 일 욕심에 1분 1초가 아쉬운 커리어우먼이다.

“14년 전 박차고 나온 경찰 생활, 그리울 때도 있었죠. 하지만 요즘 하는 일도 어차피 수사의 일종이잖아요. 오히려 설익은 경험보다 연륜이 쌓인 지금이 더 일할 맛이 나는 걸요. 결혼 욕심? 그런 거 없습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