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탄압’ 탈북여성의 눈물 고백

“北 군 간부, 입당위해 性상납 요구”

2015-03-16     이지혜 기자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지난해 UN은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국내에서도 북한 인권관련 법안 마련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북한 측은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불법적이라고 반발하고 나섰지만 북한 국민들의 인권이 탄압받고 있다는 것은 국제사회가 인정한 사실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북한 여성들의 인권탄압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탈북여성들의 자신들이 직접 당한 인권탄압 현실에 대해 입을 연 것이다. 입당을 위해서 여군들이 성상납을 해야만 하고, 탈북해도 인신매매가 기다리고 있는 북한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 알아봤다.

꽃제비·성노예·매매혼 무방비 상태로 위험 노출
성교육 전혀 못받는 여군…“자기 스스로 감당해야”

지난 7일 북한은 각종 매체를 통해 여성 인권에 대해 홍보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여성들이 남자들과 같은 권리를 가지고 누려온 행복한 삶은 여성 존중의 대화원을 펼쳐준 절세위인의 사랑”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일성이 조선민주여성동맹을 창설하고 남녀평등권법을 만들어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를 보장했으며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신문은 “자본주의 사회 여성들이 육체도 돈으로 사고팔며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여성들이 나라의 꽃으로 보람찬 삶을 누린다”고 적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북한의 여성들은 ‘나라의 꽃’으로 대우받고 있을까.

“목숨 걸고 두만강 건너…
 기다리는 건 인신매매”

지난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탈북 여성 40여 명이 모여 북한에서의 인권 침해 사례와 탈북 과정에서 겪은 일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을 준비한 뉴코리아여성연합은 “북한의 인권탄압 가해자를 처벌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살길을 열어주는 인권법이 하루 빨리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북한 여성들의 인권 실태는 세계 최악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힘없는 여성들은 북한 독재체제의 희생양으로 신음하고 있다”며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자유,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하나도 누릴 수 없는 북한 여성들의 인권실현을 위해 적극 나서줄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탈북 여성 3명이 자신이 겪었던 인권탄압 현실에 대해 폭로했다.

2006년에 탈북한 김모(33)씨는 북한군수공장에서 온 가족이 함께 9년간 일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젖은 옥수수와 쌀 몇 그램이 전부였다. 부족한 식량에 김 씨의 동생은 영양실조에 걸렸고 가족들 목숨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러다 모두 죽겠다는 생각에 김 씨는  탈북을 결심했다. 그러나 목숨 걸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건너간 김 씨를 기다리는 것은 인신매매였다. 김 씨는 매매혼을 위해 하룻밤에 4~5명의 남성들과 선을 봐야 했다. 밤에 몰래 줄행랑을 쳤다가 붙잡혀 몽둥이를 든 3명의 남성들에게 밤새 얻어맞기도 했다. 아파서 소리를 지르면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남성들은 김 씨가 죽은 줄 알고 이불에 돌돌 싸맨 채 구석에 버려놓은 상태였다. 그때서야 김 씨는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04년 탈북한 송모(28)씨의 부모님은 송 씨가 어렸을 때 정치범으로 몰려 북한 당국에 끌려간 뒤 꽃제비로 살았다. 송 씨의 부모님은 ‘애들이 배 곯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렸다. 부모를 잃고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던 송 씨는 너무 배가 고파 개똥에 섞여 있는 강냉이 알을 집어 먹거나 인분을 물로 씻어 알갱이를 찾아 먹기도 했다. 독이 든 풀을 먹고 앓아 누은 적도 있었다. 배부르게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송 씨는 탈북을 결심하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송 씨의 한국행은 쉽지 않았다. 브로커는 키가 작고 볼품없다는 이유로 송 씨를 식당에 팔아넘겼다. 식당에서도 송 씨는 제대로 먹지 못했다. 매일 밤 기름 한 병씩 퍼먹다 2008년 한국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

“성폭행 후 임신한 동료
 강제 낙태 후 폭행”

북한군 간호중대 사관장 출신 안모(39)씨는 17세에 입대한 뒤 동료 여군들이 상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상관들은 여군에게 “입당하고 싶으면 성상납을 하라”고 요구했다. 당원이 되지 못한 군인은 군대에서 크게 잘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때문에 여군들은 당원이 되기 위해서 성상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안 씨의 동료 중 한 명은 선전 부장에게 성상납을 했다가 임신을 하게 됐다. 그러나 북한 군인들은 동료의 아이를 강제로 낙태시킨 뒤 폭행했다. 안 씨는 “성노예로 전락한 여군들은 많지만 열악한 근무환경과 스트레스로 인해 생리주기가 일정치 않은 여군들은 배가 부른 뒤에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모든 여군이 이런 대우를 받고 있을까. 이에 대해 안 씨는 지난 13일 [일요서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모든 여군에게 성상납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1년에 15명 정도의 신입 여군이 들어오는데 사관장교, 분대장 등 여군들은 직무가 있기 때문에 입당이 가능하다”며 “그러나 조건이 불리한 여군들이 있다. 군관들은 바로 이러한 약점을 노린다”고 설명했다. 23세의 안 씨 동료는 입대 당시 나이를 19세로 속였다. 나중에 나이가 많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직무가 있지도 않아 입당할 수 있는 이유가 부족하자 군관들이 성상납을 요구한 것이다. 안 씨는 “여군들이 짐을 가지러 실내에 들어올 때 지휘부 관계자들이 성폭행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성폭행을 당하거나 성상납을 요구받은 여성들이 하소연 할 수 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해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는 제도도 구비돼 있지 않다. 안 씨는 “북한은 성교육을 전혀 실시하지 않는다. 또 성적권리주장 교육도 하지 않는다. 때문에 17세 때 입대하는 여군들은 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며 “또 북한에서는 성폭행이 발생하면 여성이 비난을 받는다. 가해 남성에 대해서는 전혀 추궁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에게만 피해가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군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무방비 상태의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비난을 받기 때문에 부모한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씨는 “북한에는 성폭행, 성추행이라는 말도 없다. 남한에 와서야 이런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북한에서는 피해 여성이 기분이 나빠도 사실을 알렸다가 미래에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혼자서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북한 여성들의 성적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군대는 물론 사회에서도 빈번하게 성폭행이 발생하지만 이를 처벌할 법도, 피해 여성을 도와줄 기관도 없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만 손가락질 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북한 여성들이 나라의 꽃 대우를 받고 있다고 우기고 있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UN에서 북한인권결의문을 채택하고 국내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돼도 북한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면 북한 여성들의 인권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