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뜯어보기

시급 773만원·건강검진 350만원…하는 일은 거수기·방패막이?

2015-03-16     이범희 기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요즘 재계엔 사외이사 선임이 한창이다. 이들은 회사 경영진에 속하지 않으며 대주주의 독단경영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닌듯하다.

선임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거나 선임 후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일각에선 권력형 낙하산 정착지로 알려지면서 사외이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못하다.

     CEO 감시할 자리에 같은 사조직 출신…“이해충돌 우려”
     10대 재벌 사외이사 40%가 판·검사 등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제도는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위해 도입된 것도 있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경영감시를 통해 대주주를 견제하면서 공정한 경쟁은 물론 이들이 갖고 있는 전문지식을 활용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사외이사들이 대학교수, 변호사, 공인회계사, 언론인, 퇴직관료나 기업인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전문가들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탓에 기업들은 보통 권력 기관 출신들의 전문성을 보고 사외이사를 뽑는다. 실제로도 대기업들이 권력기관 출신의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풍토는 올해도 여전했다.
10대 재벌그룹들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는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4명은 청와대나 장·차관 등 정부 고위직, 검찰 등 권력기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는 전직 장·차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9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 그룹이 올해 주총에서 선임(신규·재선임)하는 사외이사 119명 가운데 39.5%(47명)는 장·차관, 판·검사,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권력기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권력기관 출신 비중은 지난해 39.7%(50명)와 비슷했다.

정치권과 관련 있는 인사, 소위 ‘정피아’(정치+마피아)의 금융권 진출도 노골화 됐다.
최근 우리은행이 사외이사 4명을 선임했는데 3명이 정치권 출신이거나 정치권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서금회 멤버를 비롯한 정피아들을 사외이사로 앉힌 것이다.

제 역할 가능성 ‘의심’

이렇다보니 이들이 과연 제대로 된 감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사외이사 제도가 애초 도입 취지에서 벗어나 권력과 재벌이 상부상조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온다. 

이미 사외이사의 경영감시 기능은 낙제점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6월 기업 경영성과 평가전문 사이트 ‘CEO스코어’가 10대 그룹 92개 상장 계열사의 사외이사활동내역을 조사한 결과 총 1872명의 사외이사들이 4626건의 이사회에 참석해 99.7%의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100% 찬성표를 던진 사외이사도
전체의 95.7%인 1792명이었다. 경영 감시는커녕 ‘거수기’나 ‘방패막이’ 역할만 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비난 받는 이유는 또 있다.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높은 보수와 대우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이른바 ‘황제대우’ ‘특급대우’를 받는 상황이다.

10일 금융권이 공시한 ‘지배구조 연차보고서’를 보면 시중은행 사외이사들은 본연의 역할인 견제와 감시 역할은 하지 않으면서 회의 한 번 참석으로 수 백 만원의 높은 보수를 챙기기도 했다. 시간당 가장 높은 보수는 하나은행 전 사외이사 A씨가 챙겼다.

2013년 3월 하나은행 사외이사에 선임됐다가 지난해 3월 퇴임한 그는 작년 3개월간 근무로 받은 보수총액이 116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간담회에 참석한 시간은 고작 약 1시간 30분. 시급으로 환산하면 773만원이 넘는 셈이 된다.
고액보수와 특혜 논란

삼성화재는 사외이사 본인(350만 원)과 배우자(150만 원)에게 500만원에 상당하는 건강검진을 지원해줬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액 건강검진이다.

메리츠화재(본인·배우자 포함 300만 원), KB생명(본인·배우자 각 100만 원), 동부화재(120만 원), 코리안리(본인·배우자 각 120만 원) 등 다른 보험사들도 건강검진 혜택을 제공했다.
결국 기업들은 사외이사들에게 고액의 연봉과 각종 혜택을 제공해 사외이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에서 ‘거수기’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이에 보답하는 구조가 정착된 셈이다.
이런 혜택을 제공받으면서 사외이사들은 본연의 역할인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할은 없이 사실상 ‘거수기’에 불과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유명무실한 ‘사외이사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무리 사외이사가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하지만 경영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재계 관계자는 “사외이사 자격요건을 더욱 구체화하고 강화해 전문성이 없는 인사는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낙하산식 자리 꿰차기에 대한 경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