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포세대’ 시름 깊어지는 취업 3중고

자소서·영어·한국사로도 모자란 채용 기준

2015-03-16     박시은 기자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이 시작되면서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의 시름도 깊어졌다. 기업들의 채용 기준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 한국사, 영어 등 기본이라 불리는 관문 통과에 이어 실무역량까지 갖춰야하는 추세다. 초짜 신입보다 경력을 갖춘 신입사원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의 채용 방식을 벗어난 이른바 ‘탈스펙’을 추구하는 기업들도 늘어났다. 5포세대로 불리는 취준생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일요서울]이 올 상반기 채용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의 고민을 들어봤다.

기업별 요구 항목 다르고 난이도 높아…학원 성행
탈스펙 바람 불자 “기껏 다 해놨더니…” 혼란 가중

5포세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에 이어 인간관계, 내집 마련을 포기한 2030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 같은 용어는 취업난에서부터 비롯됐다.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 마련에 대한 희망도 잃은 것이다.

5포세대로 대표되는 현재 취준생들의 올 상반기 채용 기상도도 그리 맑지 못하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의 10곳 중 7~8곳 가량이 채용 규모를 지난해보다 줄일 전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을 중 올해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한 기업이 64.7%에 달한다. 또 지난해보다 채용 규모를 줄이겠다는 기업이 6.8%, 단 한명의 채용 계획이 없는 기업도 4.8%에 달한다.

거기다 완전 초짜인 신입보다 경력을 갖춘 신입사원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143개사 대졸신입 채용 합격자 중 경력을 가진 사람이 24.6%로 집계됐다.

갈수록 취업 관문이 좁아지는 가운데 기업들의 채용 기준은 더욱 높아졌다. 우선 자소서와 토익 점수로 대표되는 영어 성적에 이어 최근에는 한국사를 보는 곳도 늘어났다.

2년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A씨는 “토익, 토익스피킹, 오픽(OPIC), 일본어 관련 자격증과 점수는 이미 획득했고 다른 외국어도 공부하고 있지만 한국사시험, 금융권 자격증 등 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다”고 말했다. 그는 “남들은 ‘이 정도 해놨으면 서류전형은 통과하겠네’라고 말하지만 합격한 곳보다 떨어진 곳이 훨씬 많다”면서 “대기업만 바라보고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아직 취업이 안 됐다. 솔직히 더 이상 뭘 해야 취업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고, 막막할 때도 많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취준생 B씨는 “갖춰야 하는 스펙도 많지만 자소서를 쓰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며 “자소서 작성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 중에는 자소서 첨삭 과외나 강의를 듣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각 기업별로 자소서의 요구 항목이 다르고, 난이도가 갈수록 심화되자 취준생들은 자소서 항목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신한은행은 지난 하반기 공채에서 200자 원고지 60장의 자소서를 요구했다. 기업 측에서는 대답하기 까다롭거나 의도를 알아내기 어려운 질문을 통해 지원자들의 역량을 파악하려는 의도이지만, 대다수 취준생들은 자소서 항목을 보고 난감해하기 일쑤다.

이 영향으로 최근 취준생들 사이에서는 자소서 인터넷 강의나 첨삭 과외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취업 전문 아카데미는 각 기업별 자소서반, 직무중심 강의반 등 반을 세분화해서 운영하고 있다.

아직 대학생인 취준생들 중에는 학교 수업은 온라인 강의로만 채워 넣고, 학원으로 출석해 취업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뿐만 아니라 자소서 작성을 위해 20만 원에서 최고 100만 원에 이르는 자소서 대필도 성행하고 있다.

안 봐도 해야 돼

또한 한국사 관련 시험이 영어점수만큼이나 필수 항목이 되면서 취준생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인적성시험에 한국사 문항을 추가하거나, 관련 자격증을 우대하는 식이다.

기업 측은 기본 수준에서 문제를 출제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취준생들은 만만히 볼 수 없다는 평을 내놓는다. 외우지 않으면 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다수 출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과 다른 방식을 추구하는 이른바 ‘탈스펙’으로 전향한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혼란을 느끼는 취준생들도 늘고 있다. 기껏 요구하는 스펙을 다 만들어 놨는데, 이제 와서 ‘스펙을 보지 않겠다’는 채용 방식에 그야말로 멘붕(멘탈붕괴)이 오는 것이다.

올 상반기 공채에서 탈스펙을 요구하기 시작한 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포스코 등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입사지원서에 동아리나 봉사활동 기입란을 삭제했다.

SK그룹은 외국어 능력과 IT 자격증, 해외 연수 경험 같은 스펙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SK그룹 만의 독특한 채용 방식으로 알려진 ‘바이킹 챌린지’ 선발 비중을 지난해 2배인 전체 인턴 채용의 2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포스코 역시 한국사 등 일부 자격증을 제외한 자격증 평가우대 정책을 폐지했다.

이 같은 탈스펙 바람은 금융권에도 불고 있다. 학력, 연령 등에 제한을 두지 않고 지원자들의 성장 가능성과 창의성, 인문학적 소양을 중점으로 심사하겠다는 뜻을 비추고 있다.

취준생 C씨는 토익과 각종 자격증, 어학연수경험까지 갖춰가며 준비해왔는데 이제 와서 ‘탈스펙’이란 이름으로 이 같은 항목 칸을 없애버리고 자소서 중심으로만 서류전형을 진행하겠다고 하니 지금까지 뭘 한 건가 싶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 같은 기업들의 변화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는 취준생들도 많다. 실제로 탈스펙에 맞춰 채용을 하는지 체감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취업 확률을 높이려면 영어점수를 비롯한 기타 스펙들을 만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이미 안 하면 안 될 것들이 됐다는 인식이 만연해졌기 때문에 업계 전체가 영어점수를 비롯한 것들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은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될 전망이다.

실제로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공채 준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어학성적·자격증 준비’가 43.64%로 가장 많은 답변을 차지했다. 이어 ‘관련 직무 인턴 활동’이 39.73%, ‘취업 스터디 활동’이 7.27%, ‘취업 사교육 학원 수강’이 5.45%, ‘기타’가 3.92%를 차지했다.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