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생활체육회 통합, 밥그릇 싸움에 누더기 신세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한국 엘리트 체육을 총괄하는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을 이끌어온 국민생활체육회를 하나로 묶는 통합에 대한 법적 조치가 마무리되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주장해온 비정상적인 한국체육을 정상화, 선진화시키겠다는 뜻을 이루게 됐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2016년 3월 출범시킨다는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통합의 끈을 조이고 있다. 하지만 통합당사자인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는 원칙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갈등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거대 체육단체로 탈바꿈하게 될 체육회의 갈등을 짚어봤다.
정치권 vs 대한체육회, KOC 분리안 놓고 주도권 싸움
국생체, 법인화 최대수혜에도 강건너 불구경…진정성 논란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통과했다.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두 단체는 내년 3월까지 통합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또 대표 갈등의 지점으로 떠오른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95년 역사의 대한체육회와 출범 25년 된 국민생활체육회는 국가예산 3000억 원을 지원받는 거대 조직으로 탄생하게 돼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이 한 몸으로 재편하게 됐다.
이에 정부도 발 빠른 대응으로 통합을 가속화하고 있다.
문체부는 오는 4월 중으로 양 단체의 통합 준비기관인 통합준비위원회를 가동하고 2016년 3월까지 새 체육단체를 출범시킨다고 못 박았다. 세부적으로 보면 준비위는 통합체육단체의 정관 제정, 관련 하부 규정의 정비, 회장 선출, 통합체육단체 설립 등기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준비위는 양 단체 관계자와 중립적 인사 등 15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준비위는 통합체육 단체 출범을 위한 정관 작성 및 회장 선거관리 규정, 이사회 운영 규정, 대의원총회 운영 규정, 종목단체와 지역체육단체 규정 등 관련 규정을 오는 12월까지 정비하고 통합체육단체의 회장을 2016년 2월 중 선출한다. 또 기존 대한체육회 가맹경기단체, 지역체육회 및 국민생활체육회 회원인 종목별연합회, 지역생활체육회 등도 각각 통합해 2016년 9월까지 통합체육회의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으로 정했다.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체육단체 통합은 스포츠 시스템 선진화의 첫걸음인 만큼, 생활체육을 기반으로 우수선수의 발굴·육성, 생활체육·전문체육 통합대회(디비전) 시스템 구축, 생활체육에서의 은퇴선수 일자리 창출 등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의 실질적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쏟겠다”며 청사진을 제시했다.
통합 최대 걸림돌 KOC
하지만 이 같은 정부와 정치권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두 체육회의 심기는 편하지 않다. 특히 대한체육회는 통합의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KOC분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은 KOC의 분리다. KOC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인정한 한국의 올림픽 운동 기구다. IOC 헌장에 따르면 KOC는 동·하계올림픽 등 IOC가 주관하는 각종 국제행사에 선수 및 임원 선발과 파견 권한을 가진다. 특히 IOC는 KOC가 정치권으로부터 절대적인 독립해야 그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이 점을 놓고 대한체육회는 KOC분리를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올림픽헌장 제27조 9항에 따라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정부 및 관련 법률로 의해 의사 표명을 저해 받을 경우 IOC로부터 NOC인준이 취소돼 올림픽 참가가 불가능해지는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체육회와 KOC가 분리될 경우 선수 육성과 선수 선발 및 파견이 이원화돼 심각한 갈등이 제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1960년대 체육회와 KOC가 한때 분리됐던 시절 국제대회 참가 여부를 놓고 양측의 갈등이 극에 이르자 손기정 선생이 삭발하는 사건까지 있었다.
여기에 대한체육회는 국민생활체육회의 진정성까지 의심하고 있다. 국민생활체육회는 지난해 11월 합의서를 작성한 이후 단 한 차례도 이사회와 대의원총회에 통합안건조차 상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체육회는 국민생활체육회가 진정한 기구 통합보다는 법안 개정과정에서 재정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법정 법인화’에 더 큰 관심이 있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대한체육회는 한국스포츠가 워낙 엘리트 스포츠, 특히 올림픽에 중점을 두고 있어 분리될 경우 KOC에 정부의 지원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될 게 분명하기에 비 올림픽 종목과 생활체육을 운영하는 통합체육회는 속된말로 ‘찬밥’ 신세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올림픽과 스포츠 외교, 국제대회 출전을 관할하는 KOC 없는 대한체육회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대의원 총회, 이사회를 통과한 ‘통합찬성’을 철회하는 배수진을 쳤다. 또 만장일치로 KOC분리 반대 결의문을 긴급 채택하는 등 반발이 거세다.
김 차관 독주
주도권 정부로
반면 정부와 정치권은 KOC를 별도 단체로 분리해 스포츠 외교력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며 분리를 강조하고 있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가 제기하는 이원화로 인한 갈등에 대해 선수 육성과 대표선발 주체는 경기단체이고 파견은 KOC 고유 업무이니 현재와 달라질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KOC가 통합체육단체에 남아있으면 올림픽 등 엘리트 스포츠에 치중하느라 생활체육이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통합체육회에서 KOC의 기능이 분리되지 않을 경우 체육회 상위기관인 문체부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수정안에 따르면 통합체육회장은 정관에 대해 문체부 장관의 인가를 받은 후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선출하되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해 KOC 회장을 뽑거나 임명하는 데 문체부 장관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는 정치와 스포츠를 엄밀히 분리하는 IOC헌장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이에 정부는 IOC 제재 위험성이 존재한다며 KOC는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통합을 주도한 안 의원이나 김종 차관을 고려할 때 KOC의 분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안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KOC분리론자다. 또 김 차관도 분리에 찬성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부칙에 담긴 ‘KOC에 관한 논의’는 사실상 ‘추진’으로 봐야 한다고 보고 있어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더욱이 대한체육회가 2013년 김정행 회장 취임 이후 역대 회장에서도 보기 힘들 만큼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왜소해지고 존재감이 급속히 쇠퇴한 반면 김 차관의 파워가 막강해지면서 주도권을 이미 정치권에 빼앗긴 것으로 일각에선 보고 있다.
최근 체육계에서는 김 차관에 대해 ‘대한민국 스포츠 대통령’이라고 공공연히 부르고 있다. 체육계 한 원로 인사는 “우리나라 IOC 위원 2명 가운데 1명은 병상에 누워있고 다른 1명은 선수위원인데다 내년에 임기가 끝난다. 문체부 장관은 스포츠 관련 경력이 전혀 없고 대한체육회마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그를 견제할 사람이 전혀 없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회장선거 결과
통합안 변수
대한체육회와 달리 국민생활체욱회는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고는 있지만 새로 선출되는 회장이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생활체육회는 통합을 통해 공공스포츠클럽에 대한 지원, 생활체육지도자 처우 개선, 학교 및 직장 체육활성화 등 생활체육이 안고 있던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 생활체육 동호인들의 체육시설 이용료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현재 동호회원들은 엘리트 선수에 비해 최고 8배의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간 예산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갖추지 못해 지자체로부터 예산을 편법으로 지원받거나 아예 지원받지 못했지만 이번 개정안 통과로 지역별, 종목별 생활체육회도 정부 예산과 지정 기부금을 통해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국민생활체육회는 KOC를 안고 가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두 단체의 통합이 명분과 달리 엘리트 중심 통합 체육단체로 변질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서상기 전 회장의 국회의원 겸직 금지로 인해 사임하면서 새로 선출될 회장에 따라 통합방안에 대한 입장이 다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오는 9일 대의원 147명의 투표로 결정될 신임회장에는 세계배드민턴연맹 회장을 지낸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과 전병관 경희대 스포츠지도학과 교수의 2파전으로 압축됐다.
강 회장은 서 전 회장이 최종 후보로 추천한 인물로 정부와 뜻을 함께 하고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반면 전 교수는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정부 주도의 체육단체 통합은 다소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생활체육회 내부에서도 생활체육회가 예전처럼 예산이 부족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체육인이 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어 선거 결과에 따라 정부가 제시한 통합로드맵 자체가 뒤엉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국민생활체육회의 미온적인 태도는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는 점도 통합을 앞두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떠올랐다.
해묵은 체육계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합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각 주체들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정부 주도의 KOC분리 방안에 국민생활체육회까지 동참하면서 대한체육회가 다소 불리한 입장에 몰렸다. 결국 KOC 분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다만 두 단체의 통합이 문체부가 주도권을 쥐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통합 문제의 퍼즐이 맞춰지지 않을까 체육계의 우려가 크다.
이에 대한체육회는 정부와 국회를 배제한 순수 체육계 인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자주적인 통합추진위원회가 구성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그간 수차례 통합 안이 진행되다가 무산되면서 자칫 양 체육단체의 밥그릇 싸움, 정부와 체육단체 간의 힘겨루기로 비춰지면 입법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불거지고 있다.
실제 양 단체의 지방 하부 조직들 간에 통합 작업에서 불거질 갈등에 대해 긴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도체육회와 도생활체육회 양쪽 모두 상대방에게 흡수될 것을 두려해 주도권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지난 20년간 서로 다른 존재로 엘리트-생활체육을 나눠 관장해온 상황에서 통합이 되더라도 이질감 극복을 하지 못해 한동안 ‘한 지붕 두 가족’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양측이 좁혀야할 시각차가 큰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통합을 향해 첫 단추를 끼운 만큼 이제는 일방적 입장차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스포츠의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해 대한민국 체육계의 미래를 위해 한발짝 물러서서 현명한 해답을 찾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이를 위해 정치권 주도의 왜곡된 시선이 아닌 체육계 스스로가 해답을 찾아가는 주체가 되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체육계의 주도적 통합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종종 정치싸움에 휘말렸던 그간 비정상적인 모습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양 체육회가 이제라도 통합을 위한 당사자에 머물지 말고 통합 주체로 나서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