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러시아 남북정상회담 이뤄질까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집권 3년차에 돌입한 박근혜 대통령의 올해 외교 일정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5월 러시아가 초청한 전승 70주년 기념일 참석 여부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행사 참석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러시아에서 남북 정상의 조우, 나아가 정상회담 성사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서다.
그러나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20일 현재까지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국의 외교지형과 이해관계까지 염두에 둬야 할 변수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지난 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질의에서 "김 위원장의 참가가 대통령의 참가에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라며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들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러시아 전승기념일 참석 여부는 아직까지 확정된 것이 없다"며 "다른 5월 일정과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는 입장이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지난 8일 한·러 외교장관회담에서 "한국 정상의 참석을 기대한다"며 초청 의사를 재차 밝히는 등 '러브콜'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을 비롯한 초청 정상들의 참석 여부, 남북관계 및 한반도 상황 전개 양상, 박 대통령의 참석 또는 불참시 러시아와의 관계 변화 등 각종 변수를 감안해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서는 박 대통령이 불참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러시아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이다.
가뜩이나 미 외교가 일각에서 한국의 '중국 경도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미국과 불편한 관계인 러시아의 전승기념일 참석까지 강행한다면 한·미관계의 균열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불참 의사를 밝혔다. 나아가 미국 백악관은 지난 10일 "개별 국가들이 스스로 판단하겠지만 미국의 동맹이란 차원에서 보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박 대통령의 참석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해 청와대의 고민을 키웠다.
김 위원장과의 만남 자체가 우리 측에 실익이 없을 것이란 분석도 작용한다.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진전되지 못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기 어렵고 이는 결국 박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얘기다.
이에 더해 국제무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에게 모든 시선이 쏠리면서 박 대통령이 '들러리'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광복 70년이자 분단 70년인 올해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계기로 남북관계 전환의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별도의 정상회담 추진은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이번 기회를 계기로 남북 정상이 자연스럽게 만난다면 대화의 물꼬가 트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또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얼굴을 맞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국면전환 카드 내지는 지지율 회복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남북관계와는 별개로 절대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러시아와의 관계는 청와대를 좌고우면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서 러시아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할 국가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3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현을 위한 경제협력의 초석 마련에 초점을 맞췄다.
러시아가 북한과 인사 및 군사교류를 확대하는 등 밀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점도 행사 불참이란 선택지를 고르기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러시아가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행사 참석 요청까지 거절한다면 양국 관계에 악재가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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