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지방행정공제회 기금 운용 비리 사건 전모

주식 비싸게 매수해 차익 ‘꿀꺽’...펀드매니저 내연녀 부탁?

2015-02-17     이범희 기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증권사 직원과 짜고 회삿돈으로 주식을 비싸게 사들인 후 차액을 빼돌린 혐의로 대한지방행정공제회(이사장 이인화·이하 공제회) 전직 펀드매니저가 재판에 넘겨졌다.

적발된 공제회 펀드매니저는 공제회 기금 운용 한도 내에서 특별한 제한없이 매수·매도 주문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사측의 눈을 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내연녀의 부탁으로 범행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한다.

     ‘짜고 친 주식투자’…도덕적 해이 드러나
      사측 사과문 게재 “재발 방지대책 강구”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이선봉)는 공제회 기금운용 비리 사건을 수사한 결과 공제회 전직 펀드매니저 조모씨(38)와 J증권사 차장 박모씨(49) 등 4명을 구속 기소하고, 개인투자자 한 명도 불구속 기소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공제회 펀드매니저로 일하면서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박씨 등과 짜고 주식 57종목을 미리 사들인 후 불법적인 자기거래(통정매매)를 통해 총 12억9000만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자본시장법 위반)를 받고 있다.

공제회 기금 1700억 원을 운용하던 조씨는 기금 운용의 일환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것처럼 꾸며 이같은 범행을 지인들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의 수법은 신종수법으로 수사관들도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

이를테면 조씨는 당일 매수할 종목과 수량을 정해 휴대전화 메신저로 박씨 등에게 전달했고, 박씨 등은 이를 미리 매수한 뒤 즉시 매수가격보다 2~3% 높은 가격으로 매도주문을 냈다. 매도주문을 전달받은 조씨는 공제회 기금으로 ‘시장가 매수주문'을 제출해 이를 고가에 사들였고, 박씨는 다시 이를 비싸게 팔아 차익을 분배하는 수법을 쓴 것.

시장가 매수주문은 매수가격이 아닌 수량만 정해 주문하는 것으로, 조씨는 고가에 매도하려는 주식을 모두 사주기 위해 시장가 주문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조씨와 박씨의 정보 교환으로 공제회는 해당 종목을 2~3% 비싸게 샀고 이 돈은 박씨의 수익으로 빠져나갔다. 박씨는 이렇게 해서 챙긴 1억5000만 원의 차익 중 비용을 빼고 6000만 원씩을 조씨와 나눠 가졌다.

당연히 기금 운용 실적이 펀드매니저 중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공제회는 지난해 10월 계약해지만 했을 뿐 금융위원회 신고 등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공공기금을 이용한 일종의 신종 금융 범죄”라며 “각종 공제회의 투자 및 기금 운용과 관련된 비리에 대해 계속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조씨는 비슷한 수법으로 공제회의 돈을 내연녀 장모씨(33·구속기소)의 수익으로 빼돌리기도 했다. 조씨는 지난해 7~9월 장씨가 194차례에 걸쳐 48개 종목을 사게 한 뒤 이를 기금으로 비싸게 되샀다. 이 수법으로 장씨는 11억4000만 원의 차익을 챙겼다. 검찰은 학원을 운영하는 장씨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며 조씨에게 범행을 부탁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조씨 등이 빼돌린 12억9000만 원 중 일반투자자 기금 20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다 공제회 기금에서 나갔고, 회사 차원이 아닌 개인 범행으로 조사됐다"며 “금융위원회와 협업해 신속히 수사에 나선 결과 범죄수익 중 6억2500만 원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또 공제회 또 다른 전직 펀드매니저 박모씨(42)를 배임수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는 2012년 6월~2014년 4월 공제회의 거래증권사 선정에 편의를 주는 명목으로 증권사 직원들로부터 4450만 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를 받고 있다. 공제회는 분기별로 거래 증권사를 선정해 왔는데 박씨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먼저 금품을 요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공제회 측은 홈페이지에 게재한 사과문을 통해 “일부 직원의 불법행위로 인해 공제회를 사랑해주신 회원에게 심려를 끼친 점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관련자들을 해임 조치하는 한편 부당이득을 환수하기 위해 현재 손해배상 청구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발방지대책을 강구중이며 임직원의 재산신고·등록 등을 통해 재산변동내역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한편 주식 거래시간 중 개인 통신기기 사용금지, 부정행위로 퇴직한 임직원의 민간 금융기관 재취업 제한 등 ‘특단의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일이 이인화 이사장의 거취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책임론 또 불까

이미 지난해 3월 3년 연속 적자를 내는 등 손실이 심각해지자 공제회 대의원들이 같은 달 26일 열린 대의원대회를 열어 해임안을 상정한 바 있다. 또한 4개월 후인 7월에는 안전행정부가 공제회에 대한 감사를 통해 ‘기관경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역시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데 따른 조치였다.

당시 안행부 관계자는 “행정공제회에 대한 감사를 마무리짓고 기관경고를 부과했다"며 “최근 수년간 계속된 적자운영에 대한 경고 메시지"라고  밝혔다. 다만 대의원들로부터 해임 요구를 받고 있는 이사장과 부이사장에 대해선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직원 비리로 공무원의 신뢰를 잃는다면 이 이사장도 힘든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러나 사측은 사과문 게재 하단에 “국내외 어려운 경영환경에도 불구하고 공제회는 3년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 자산 7조원 돌파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밝히며 이번 사건에 대한 잘못만 인정했다.

한편 공제회는 지방공무원들의 생활 안정과 복리 증진을 위해 설립된 특수법인이다.  2013년 10월께 기준 회원 24만 명, 자산규모 6조3000억 원에 이른다.
주요사업은 지방공무원들이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에도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회원들 대상의 생활공제제도를 운영한다.

교직원공제회, 군인공제회와 더불어 3대 공제회 중 한 곳으로 꼽힐 정도로 덩치가 큰 곳이다.
이번 사건이 알려진 직후 공무원들 사이에선 황당함과 당혹감이 함께 공존하며 공제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한 공무원은 “공제회 운영 자체가 노후 복지인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사실이 확인된 만큼 신뢰가 깨진 게 사실이다"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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