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양심주의적 자본주의자 노래, ‘보통씨의 특권’

행성 E2015에서 타전하는 아름다운 혁명의 노래

2015-02-06     편집팀

1989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진우 시인의 신작 시집이 출간되었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파고듦으로써 죽음보다 더 깊은 잠에 빠진 삶을 흔들어 깨운다”(문학평론가 박해현)는 평가를 받은 첫 시집 슬픈 바퀴벌레 일가와 우리를 부단히 억압하는 현실에서 벗어난 자유를 노래한 두 번째 시집 내 마음의 오후이후 10여 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이진우 시인은 표제시에 등장하는 양심적인 자본주의자 보통 씨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예리한 역설을 통해 자본주의의 대낮을 지나고 있는 이 시대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시인은 현재 서울에서의 환멸스러운 삶을 접고 고향 통영 근처의 거제 남부면 저구리에서 자발적 유배의 삶을 살고 있지만, 시집을 꼼꼼히 읽다보면 그의 시들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의 음풍농월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자본주의의 심장인 서울에서 거리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오히려 서울에 사는 사람보다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과 그것을 교묘히 악용하는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을 서슴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진우 시인은 어쩌면 자본주의화 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이상적 삶을 꿈꾸는 견인주의자인지도 모른다. 이상적 삶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 한 그는 끊임없이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에 대한 끝없는 불평불만과 조롱과 냉담이 어쩌면 이진우의 시를 끌고 가는 추동력일 것이다.

철학과를 나온 저자는 이번 시집에서는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시들이 있다. 도덕경」 「에피큐로스 행복론」 「소크라테스의 충고」 「화성인 철학자」 「모두의 철학」 「중용의 온도」 「소크라테스의 영혼」 「노자의 시창작 강의. ‘이진우의 철학시편이라 불러도 무방할 이 작품들은 종교철학적인 시를 썼던 폴 클로델보다는 정치철학적인 시를 썼던 폴 엘뤼아르에 가깝다. 인간을 닮아서 슬픈, 자기 종족끼리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 슬픈 개에 관한 시를 보자.

개새끼들이 알아서 줄을 선다/개새끼들만 아는 개새끼들의 서열/제일 크고 우락부락한 개새끼/눈치 잘 보고 토실한 개새끼/토실한 놈 눈치 보는 개새끼/눈치 보는 개새끼를 감시하는 개새끼/그 뒤에 빌어먹지도 못하고 드러누운 개새끼//어떤 개새끼에게 밥을 먼저 줄까/오라, 저 맨 뒤에 비루먹은 개새끼/힘없는 놈 먼저 먹이는 게 주인의 도리라서/그 개새끼 앞에만 밥그릇을 놓았더니/힘센 개새끼들이 으르러 으르렁거린다/못난 개새끼 배부르게 먹여놓고/잘했다고 십자가에 눈도장 찍고/부처한테 배 내밀었으나/늘 배불렀다가 하루 배고팠던 개새끼들이/내내 굶다가 하루 배불린 개새끼를 뜯어 먹었으므로/며칠 동안 개새끼들한테 사료 줄 필요 없겠네/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살 뜯겨 뼈만 남은 그 개새끼 이름을 생각해 보았는데/입에서 욕만 기어 나온다/이름도 못 얻은 못난 개새끼/개새끼 같지 않던 개새끼/간도 쓸개도 없는/사람 같던 그 개새끼 ―「나는 개에게 줄을 세우지 않았으나전문

어떤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될 때 지구라는 작은 행성 위에서의 삶은 티끌처럼 보잘것없고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고 티끌의 시간 위에서도 인간은 온몸으로 사랑을 하고, 온몸으로 삶을 밀고 나간다. 허무의 백척간두 위에서도 인간은 삶이라는 하나의 상징을 완성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인간의 위대함일 것이다.

이진우/시인동네/154p/9천원

[저자 소개]

1965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9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슬픈 바퀴벌레 일가』 『내 마음의오후, 장편소설 적들의 사회』 『소설 이상』 『메멘토모리, 산문집 저구마을 아침편지』 『해바라기 피는 마을의 작은 행복등이 있다. 삼십 대로 접어들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시와 장편소설을 쓰며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