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영상엔 성행위 장면은 없었다”

대기업 A사장 협박사건 전말

2015-02-02     오두환 기자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지난주 인터넷과 방송에서는 ‘대기업 사장 성관계 동영상’이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미스코리아 대회 출신의 김모씨와 그녀의 남자친구 오모씨가 성관계 동영상을 미끼로 대기업 사장 A씨에게 30억 원을 요구하며 협박한 사건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실 성관계 동영상을 미끼로 사람들을 협박하는 일은 이제 흔한 범죄가 돼 버렸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미인대회 출신의 여성과 대기업 총수의 아들이 범죄자와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흔치않다. [일요서울]에서는 이번 사건의 전말과 함께 유사한 사건들에 대해 알아봤다.

오 씨와 김 씨, 몰래카메라 설치 등 치밀하게 범행 준비
유명인·사회 지도층일수록 동영상 공개되면 치명적

‘대기업 사장의 성관계 동영상 협박사건’의 피해자는 국내 대기업 회장의 외아들 A씨다. A사장은 현재 두 딸을 둔 유부남이다.
A씨가 연루된 이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6월경이다. A씨는 김씨와 문제의 오피스텔에서 만났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서 동영상이 찍혔다. 수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김씨와 오씨는 A씨가 오피스텔에 오기 전에 미리 오피스텔 천정 소방시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피해자 A사장
유부남이라 떳떳치 못해

A씨와 김 씨 사이 오피스텔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김 씨와의 만남이 있은 후부터 오 씨와 김 씨의 협박이 시작됐다.

오 씨와 김 씨는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지난해 초쯤 지인의 소개로 A씨를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 따르면 오 씨는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A씨에게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수차례 협박했다고 한다. 결국 오 씨는 미인대회 출신이었던 김씨와 공모해 A씨에게 4000만 원을 뜯어냈다. 당초 요구액인 30억에 미치지 못해 지속적으로 A씨에게 협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A씨는 지속된 협박에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12월 이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A씨는 지난 23일 검찰에 출석해 고소 경위와 내용을 진술했으며, 자신이 옷을 벗고 있는 장면이 담긴 몰래카메라 영상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검찰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A씨의 변호인은 “동영상의 촬영 각도와 위치 등을 고려하면 오피스텔에 들어가자마자 있는 위치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며 “성행위를 하는 장면은 영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도 “자료를 압수해 분석한 결과 동영상에 성관계 장면은 없었으며 여성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것과 관련해 주거침입 혐의도 적용할 수 있는지 추가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실 A씨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다. 하지만 유부남인 탓에 떳떳치 못한 행동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부터 진행돼온 ‘이병헌 협박사건’의 결과를 지켜보고 검찰에 고소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상황이 A씨의 사건과 유사한 데다가 최근 협박범들에게 실형이 선고된 것을 보고 자신의 상황이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한 뒤 고소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고소를 접한 검찰은 지난 26일과 27일 오 씨와 김 씨에 대해 각각 체포영장을 집행하고 신병을 확보했다. 28일에는 오 씨에 대해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 공갈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상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며 30일 구속했다.

29일 오전 오 씨와 범행을 공모한 김 씨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회 지도층 연루된
별장 성접대 의혹도

최근 들어 성관계 동영상을 협박 무기로 삼는 범죄가 늘고 있다. 이병헌 협박사건의 경우 성관계 동영상이 아닌 음담패설 동영상으로 협박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유명인일수록 이러한 종류의 동영상 유포는 이미지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대기업에 다니는 일반 직장인들이나 고위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고위 공무원이 연루된 성관계 동영상 사건으로는 2013년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연루됐다고 의혹 받았던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이 있다.

당시 시중에는 ‘별장 성접대 의혹’ 문제의 발단이 됐던 동영상에 나오는 남성이 김학의 당시 법무부 차관이라는 소문과 함께, 고위층 리스트까지 나돌았다.

경찰은 장장 120일간의 수사기간 동안 피의자 18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지만 사건은 수많은 의혹들을 남긴 채 불기소 처분으로 마무리됐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던 이 사건은 지난해 6월 당시 사건의 참고인으로 진술했던 이수연 씨가, 동영상에 나오는 여성이 자신이라 밝히고 별장주인인 건설업자 윤중천 씨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고소하면서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이수연 씨는 윤 씨에게 수년간 고위층을 대상으로 한 성접대를 강요받았고, 별장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의 모처에서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지속적으로 성접대를 했다고 주장했다.

성접대 동영상 속 남성으로 지목된 김학의 법무부 차관은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며 진실을 밝혀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말과 함께 임명된 지 8일 만에 사퇴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별장주인 윤 씨나 이수연 씨를 알지도 못한다고 주장했다. 건설업자 윤 씨 역시 경찰조사 당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수연 씨는 윤씨와 김 전 차관이 서로의 동영상을 촬영하곤 했으며, 소문의 동영상도 그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 당시 국과수는 동영상의 음성 분석 판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지난해 이수연 씨는 검찰에 김 전 차관을 성폭력 혐의로 고소했으나 무혐의 처분했다. 김 전 차관과 함께 고소당한 건설업자 윤 씨에 대해서도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원주별장 동영상이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고소인을 불러 조사해봐도 등장하는 동영상에 사진촬영된 모양이 뒷모습과 옆모습뿐이라서 고소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며 “고소인이 동영상 속 여성이라고 주장해도 이를 입증할 다른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여성은 앞선 조사에서는 동영상 촬영 시점을 공소시효 완성 시기인 2007년 6∼7월이라고 했다가 이번에는 2008년 1~2월이라고 자꾸 촬영 시점을 뒤로 미루는 등 언제 찍혔는지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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