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증세 없는 복지’의 끝은…결국 기업 목에 법인세 달기?
이러한 가운데 정계 일각에서는 증세 없는 복지는 환상일 뿐 근본적인 세수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대상이 개인보다 기업에 맞춰져 있고 이는 결국 법인세 인상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다.
개인과 기업에 대한 이중잣대 심화
다음 타깃은 부가가치세?…향방 주목
우리나라 근로소득자들의 유리지갑은 매우 얇다. 물가는 올라도 급여는 여기에 비례해 오르지 않는다. 세금도 자진해서 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원천징수로 떼어간다. 실제로 국세청의 근로소득자 소득파악률은 100%다. 자영업자 소득파악률 62%에 크게 대비되는 수치다.
이 투명한 월급봉투는 그나마 연말정산으로 보완된다. 한 해 동안 냈던 세금의 명목을 따져 일부를 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뀐 연말정산을 두고는 그나마 얇은 지갑이 아예 깨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미 박근혜 정부는 취임 이후 2013년 세법을 개정하면서 조원동 전 경제수석의 발언으로 증세 파동을 겪은 바 있다. 이에 따라 세액공제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고 세부담 증가의 기준은 총급여 3450만 원에서 5500만 원으로 다소 올라갔다.
하지만 실제 연말정산을 해본 근로소득자들은 기준점에 상관없이 적어진 환급액에 분노했다. 여론이 민란에 가까운 지경으로 나빠지자 정계에서는 선거를 의식한 나머지 다 끝난 연말정산을 두고 소급적용안이 나왔을 정도다.
만약 이 상황에서 연말정산이 재개편되면 소득세수가 줄어 세수부족은 극한으로 치닫게 된다. 원래 정부가 계획했던 세수증가는 1조3000억 원이었지만 그나마도 8600억 원에 그쳐 4400억 원을 어디에서 메워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출범 당시부터 증세 없는 복지라는 아이러니의 무덤을 판 탓이다.
실질세율과 실효세율
동시 경감
세부적으로 보면 국가가 거둬들이는 세금은 크게 국세와 지방세로 나뉜다. 국세는 총 14개, 지방세는 총 11개로 논란이 되는 소득세는 국세에 속한다. 3대 국세는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로 국세의 7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세목이다.
이중 소득세는 개인의 경제활동을 대상으로 하고 법인세는 기업의 이익에 부과되며 부가가치세는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 주체에 따라붙는다. 만약 소득세를 올리는 것에 실패하면 그 다음은 법인세나 부가가치세가 타깃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최근 법인세는 실질세율은 물론 실효세율로 볼 때도 꾸준히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008년 이명박 전 정부에 의해 25%에서 22%로 3%포인트 감소했다. 수치상으로만 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난해 법인세 평균 23.4%에 비해 낮다.
단순히 따져도 개인은 최고 38%를 세금으로 내고 기업은 최고 22%를 내는 것 자체가 역설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물론 규모의 차이를 감안했을 때 이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간 기업육성 정책에 의해 이뤄진 세감면만도 충분하다는 항의가 뒤따른다.
게다가 각종 추가감면을 적용하면 기업들이 실제 내는 실효세율은 16% 안팎에 머무른다. 국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2009년 17%대에서 2013년 14%대로 감소하기도 했다. 이는 OECD의 지난해 실질 법인세 부담의 3분의 2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정작 기업들은 절약한 세금을 연구개발이나 임금향상에 쏟기보다는 사내유보금으로 회사에 쌓아두는 쪽을 택했다. 재계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2008년 37조 원에서 2013년 158조 원으로 세 배가 넘게 증가했다.
이에 반해 근로소득자들의 소득은 2007년부터 사실상 정체돼 있어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데 기여했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수년간 제자리걸음하는 실질임금 증가율이다. 실질임금은 명목임금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분을 제한 것으로 근로자들의 실제 구매력을 의미한다.
감면도 대기업에만
불균형 심화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가장 불리한 근로소득자에게 세부담을 지우기보다는 그나마 여력이 있는 기업을 조이는 게 맞지 않겠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기업 중에서도 감면 혜택을 크게 보는 대기업을 겨냥해야 중소기업들에 미치는 피해가 최소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기업들의 법인세 신고현황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전체 조세감면액 비율은 2008년 18%에서 2013년 25%로 7.4%포인트 늘어났다. 이중 상위 10대 기업이 납부한 법인세는 전체의 13%에 한했으나 감면액은 46%에 달했다. 그러나 42만개 중소기업의 법인세 감면액은 전체의 23%에 머물러 대비를 이뤘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번 연말정산 논란이 그동안 암묵적인 금기로 여겨졌던 법인세 인상 논의의 시발점이 됐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이는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조차 증세 없는 복지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것과 동시에 정계의 동반자인 ‘재계 목에 세금 달기’가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원초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관련해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박근혜 정부는 증세를 결단하지 않고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어떠한 치적도 쌓기 어려울 것”이라며 “법인세는 성장이 아닌 분배 문제이며 과거와 달리 현재는 기업이 아닌 민간소비에 의해 경제성장률이 결정되는 단계에 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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