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범죄인형’ 3인방, 200일간의 기록
“내가 찌른 그 아줌마, 아마 죽었을 수도 있겠네요.”
2009-05-26 이수영 기자
아버지 때려 가족과도 의절
고군은 특수절도와 폭력혐의로 소년원 전과만 4범인 베테랑 범죄자였다. 길가에 세워 둔 오토바이를 훔치고 흉기를 든 채 빈집에 숨어들어가 물건을 털다 경찰에 붙잡히길 여러 번. 취객과 주먹다짐을 하다 폭력 전과까지 얻은 고군은 재작년 아버지에게 주먹을 휘둘러 가족들로부터 의절을 당해 갈 곳이 없는 처지였다.
소년원에서 나온 고군은 결국 경기도 Y 청소년쉼터 문을 두드렸고 이곳에서 2개월여를 보냈다. 이곳에서 그가 얻은 유일한 수확은 자신과 뜻을 함께할 동료들을 만났다는 것뿐이었다. 고군 보다 두 살 어린 정군과 일당 중 막내 양군 역시 전형적인 결손가정 출신 비행청소년이었다.
정군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출한 어머니 대신 할머니와 단둘이 살다 2년 전 상습적으로 가출을 해댔고 다니던 중학교를 중퇴했다. 정군 역시 특수절도 전과가 있었다.
일당 가운데 가장 어린 양군은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로부터 오랫동안 모진 학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최근 집을 나온 양군은 쉼터에 머물다 고군을 만났고 형들의 심부름을 도맡아하며 귀여움을 받았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범죄행각을 저지르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 보호관찰소의 눈을 피해 일을 저지르는 것은 너무 쉬웠다. 범죄 경험이 많은 고군은 가장 먼저 이동과 도주용으로 쓸 오토바이를 훔쳤다.
‘자가용’을 갖춘 3인방은 늦은 시간 경기도 일대 빌라촌을 돌며 문이 잠기지 않은 베란다를 통해 남의 집에 침입, 금품을 훔치기 시작했다. 반년 동안 이들이 훔친 금품 규모는 경찰이 확인한 것만 1700만원 상당. 3인방은 여관과 PC방, 술집 등에서 이를 모두 탕진했다.
살인의 댓가, 단돈 4만원
지칠 줄 모르던 3인방의 범죄행각이 절정에 달한 것은 이들이 처음 ‘살인’이라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기 직전까지 였다. 빈집털이 외에 주로 부녀자, 여학생 등 연약한 피해자들을 상대로 속칭 ‘퍽치기’(피해자의 머리 등을 둔기 등으로 때린 뒤 금품을 빼앗는 강도수법)를 일삼았던 3인방은 지난해 11월 어머니뻘의 5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만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30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 한 골목길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천모(52)여인에게 접근해 길을 묻는 척 주위를 끈 뒤 천 여인의 핸드백을 낚아채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천 여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고군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쓰러지면서까지 고군의 발목을 꼭 쥐고 버텼다.
고군은 천 여인을 떼어내기 위해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고 결국 천 여인은 등과 배 등을 8번이나 찔려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머니뻘의 피해자를 살해한 댓가로 3인방이 얻은 것은 고작 현금 4만원. 수입이 시원치 않자 고군은 다음날 곧장 또 다른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
숱한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변변한 처벌한번 받지 못한 3인방에겐 ‘살인’역시 적당히 무마할 수 있는 못된 장난에 불과했을 수 있다. 지문이나 흉기 등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 역시 이들에게 위안이 됐다. 그러나 철없는 살인범의 생각만큼 경찰의 수사력은 만만치 않았다.
천 여인이 살해된 뒤 즉각 수사전담반을 편성한 경찰은 최소 2명 이상이 범행에 가담했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프로파일링을 시작했다. 곧 오토바이 등을 이용한 청소년들의 범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최근 오토바이 날치기와 퍽치기 혐의 등으로 입건된 고군 일당을 끈질기게 추궁했다.
결국 3인방은 자신들이 저지른 살인과 손으로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범죄행각들을 털어놓았다.
만약 이들이 겁에 질려 범행을 그만뒀다면 천 여인의 죽음은 영원히 미궁에 빠질 수도 있었다. 범죄에 물들어버린 철부지 소년들의 객기가 사건 해결의 열쇠였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