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글 속에 칼이 들어있더라”

2004-10-01     kideye1@ilyoseoul.co.kr 
“친애하는…”으로 시작하는 A4 용지 6장 분량의 편지는 “(검사) 여러분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한다”고 적고 있다. “도와줄 사람 없고, 피할 곳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서 거센 비바람과 맞서 싸우듯 정의구현을 위하여 분투하는 검사 여러분들의 노고와 고충을 저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라는 감성을 자극하는 구절도 있다. 그러나 일부에선 소위 ‘인품 편지’라 지칭하는 김 장관의 편지 행간에 ‘날카로움’이 숨어있다고 표현한다. 편지를 읽어본 한 중견 검사는 “편지글을 뜯어보니 칼이 들었더구만”이라고 평했다.또 다른 부장검사도 “이건 노골적으로 대선자금 수사팀을 겨냥한 것 같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중요사건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경우 그 사유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 결재과정에서 중간관리자들이 적정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여부도 아울러 살펴볼 것입니다”란 대목에서는 아예 “안대희(부산 고검장·전임 대검 중수부장)를 콕 찍어서 하는 말 같다”고 하는 검사도 있었다.

다음은 김 장관이 일선검사들에게 보낸 친서내용 요약문이다.

친애하는 전국의 검사 여러분!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더위도 이제 저만치 물러가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바야흐로 사색과 결실의 계절,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제가 장관 취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해 온 수사관행혁신 문제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 이 문제에 관한 저의 충심을 여러분에게 전하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미 취임인사를 통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검사는 “실력과 인품을 겸비하여 수사에 임하여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수사가 사회악과 범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 구체적 대상이 인간일 수밖에 없다면 수사의 주재자인 검사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인간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그 바탕 위에서 수사를 하여야 합니다. 정의와 사람은 함께 가야 하며 정의의 이름으로 인간이 무시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하여 수사대상자와 국민들로부터 진정한 승복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저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수사를 하지 말라거나 여러분의 순수한 열정을 폄하하는 의미로 곡해된다면 이는 진정으로 제가 원하거나 의도하는 바가 아닙니다. 사랑을 앞세우고도 정의는 실현할 수 있고 인간을 존중하면서도 얼마든지 훌륭한 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철학이요,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심이라는 점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모름지기 검사라면 자신의 이름으로 기소된 사건은 단 한건도 무죄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철저한 각오로 직무에 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검사들 사이에 무죄에 대한 책임의식이 무디어져 가는 걱정스러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적주의와 공명심에 사로잡혀 증거 및 법리에 대한 충실한 검토없이 안이한 판단을 해서는 안됩니다. 공판정에서 피고인과 변호인이 어떤 반론을 제기하더라도 흔들림없이 견뎌낼 수 있도록 완벽한 수사를 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앞으로 수사관행의 발전적 개혁을 담보할 수 있는 몇가지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려 합니다. 먼저 법무부의 검찰인사 담당인력을 보강해서 인사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편하겠습니다. 검찰수사가 적법절차와 정당한 방법에 의하여 적정하게 수행되었는지 여부를 사후에 점검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한편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중요 사건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경우 그 사유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 결재과정에서 중간관리자들이 적정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 여부도 아울러 살펴볼 것입니다. 단순히 수사실적만을 평가함에 그치지 않고 수사절차 및 수사결과의 적정성에 대한 질적 분석을 거쳐 수사검사 뿐만 아니라 중간관리자들까지 직접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실력과 인품을 갖춘 검사가 중요 수사부서에 배치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법무부에 감찰실을 설치하여 직무감찰을 강화함으로써 인간을 배려하는 수사관행이 검찰 내에 확고히 뿌리내리도록 할 계획입니다. 검찰에 대하여도 외부적 감찰이 엄정하게 이루어진다는 확고한 인식을 심어주는 길이 검찰의 진정한 권위와 신뢰를 회복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찾아나설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는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씀을 상기하여야 합니다. 전국의 검사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합니다. 또한 항상 애정어린 눈으로 여러분을 지켜보려 합니다. 도와줄 사람 없고, 피할 곳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서 거센 비바람과 맞서 싸우듯 정의 구현을 위하여 분투하는 검사 여러분들의 노고와 고충을 저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어려움은 새로운 내일을 위한 기회요 도약의 발판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자중자애하면서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검찰상을 구현하는데 매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