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유혹’아내의 변심에 연쇄살인

“날 배신한 아내 가장 행복할 때 죽이고 싶었다”

2009-05-19     이수영 기자

자신을 죽이려한 남편과 남편을 빼앗아간 옛 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죽음 문턱에서 다시 돌아온 아내. 180도 변신한 모습으로 처절한 복수를 선보였던 드라마 ‘아내의 유혹’ 속 주인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충분한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현실 속 ‘남편의 유혹’은 끔찍한 연쇄살인극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복수’라는 키워드는 같았지만 파렴치한 남편의 범죄행각은 경악스러운 패륜범죄로 기록됐다. 지난 13일 전남 영암경찰서는 재결합한 아내와 의붓딸을 하룻밤 사이에 잇따라 죽이고 숨진 아내의 조카마저 겁탈한 이모(43)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이씨에게 희생된 피해자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가 성폭행한 처조카의 여동생 역시 열흘이 넘도록 행방불명 상태이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도망친 조카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 이씨는 “내가 감옥에 간 사이 아내가 날 배신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독한 복수심을 이기지 못해 참극을 저질렀음을 시인한 것이다.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아내와 재결합한 이씨는 왜 하필 지금 범행을 저질렀을까. 또 이씨의 아내와 딸이 죽기 일주일 전 사라진 작은 조카는 과연 무슨 일을 당한 걸까.


“조카 강간하기 전 의붓딸도 범했다”

현재 경찰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라진 작은 조카 A양(17) 역시 이씨에게 희생됐는지 여부다. 이씨는 의붓딸과 아내를 죽이고 큰 조카 B양(23)을 성폭행한 것 까지는 인정했지만 A양에게 해코지를 했느냐는 추궁에는 일절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만약 A양이 이씨에게 살해당한 뒤 유기됐다면 이씨는 무려 가족·친족 3명을 연쇄 살인한 희대의 패륜살인마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수사 결과 드러난 이씨의 범행 과정은 마치 광기에 서린 듯 하다. 불과 5시간 만에 각각 두 건의 살인과 강간을 몰아치듯 저지른 까닭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12일 오후 7시 경 자신의 집 안방에서 의붓딸(20)을 강간한 뒤 목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 4시간 뒤인 같은 날 밤 11시 경 이번에는 자신의 차 안에서 아내를 같은 수법으로 죽였다.

아내와 의붓딸을 차례로 살해한 이씨는 이번엔 목포에 살고 있는 처조카 B양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고모부의 부름에 곧장 달려온 B양. 하지만 안타깝게도 B양은 이미 짐승으로 돌변한 그에게 겁탈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의붓딸의 순결을 빼앗고 목숨마저 거뒀음에도 끓어오르는 욕망을 잠재우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씨는 B양을 살해하지는 않았다. 유리테이프로 피해자의 손발을 묶은 이씨는 그를 안방에 가둔 것. 새벽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뒤늦게 귀가한 친딸(23) 역시 B양과 함께 감금당했지만 천만 다행스럽게도 더 이상의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다.

친딸은 이씨와 살해된 아내 사이에서 태어났다. B양과 이씨의 친딸은 살인마가 잠시 집을 비운사이 함께 도망쳐 악몽 같은 범행 사실을 낱낱이 폭로할 수 있었다.


아내에 복수하려 친척까지 살해?

수사팀 내부에서는 지난 5일 실종된 A양도 이씨에게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특수강간 혐의로 이미 두 차례나 교도소를 드나들었던 이씨의 과거 전적뿐 아니라 의붓딸을 성폭행한 뒤 살인까지 저지른 일련의 과정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까닭이다.

그렇다면 왜 이씨는 유독 아내와 아내 쪽 친척들만을 희생물로 선택했을까.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씨는 자신이 교도소에 복역하던 중 재혼한 아내에게 극도의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자신의 분노를 아내뿐 아니라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의붓딸, 아내가 유독 귀여워하던 처조카에게까지 표출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이씨가 느낀 배신감이 당사자인 부인 뿐 아니라 ‘여성’ 전체에 대한 적개심으로 발전했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에 따르면 슬하에 딸 하나를 둔 이씨 부부는 1984년에 헤어졌다. 이씨는 성폭행 혐의로 1987년부터 2005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오랜 기간 교도소 신세를 져야했고 아내는 다른 남자와 살면서 또 다른 딸을 낳았다.

두 번째 남편과도 갈라선 부인은 지난 2007년 이씨와 다시 살림을 합쳤다. 두 딸과 함께 네 식구가 된 이씨 가족은 그동안 별다른 문제없이 원만한 가정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년 간의 평화는 이씨가 자신의 복수를 가장 철저하게 실현시킬 미끼에 불과했다는 게 수사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씨는 경찰에서 “내가 자리를 비운사이 날 배신한 아내에게 악감정이 계속 남아있었다. 아내가 가장 행복해 할 때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고 털어놓은 것.

행복에 겨운 아내의 등에 비수를 꽂고 아내가 아끼는 소녀들까지 짓밟은 ‘남편의 유혹’. 올 한해 가장 경악스러운 ‘막장 드라마’로 기록될 만하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