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이겨내고 삶을 사랑하게 되기를…
[인물탐구] 17명의 의사가족, 은혜산부인과 김애양 원장
“문학은 환자 이해하는 폭을 넓히죠”
[일요서울 | 박찬호 기자] 문학작품 속에는 인간이 감당해야하는 온갖 불행과 역경이 담겨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질병만큼 인간을 괴롭히기에 좋은 조건이 다시 없습니다. 토마스 만은 억압된 사랑의 결과가 병이라고 말했습니다. 열심히 문학작품을 뒤져 우리 삶에서 그 질병이 그리는 궤도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부디 누군가에게 아픔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어 줄 거라 믿으면서요. 작품들 속에는 아픔을 헤아려 보다가 나와 처지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더욱 애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명작속의 질병 이야기> 머리글에서
집안 17명의 의사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은혜산부인과 김애양(57세) 원장은 이처럼 환자들에게 종종 소설 속 건강이야기를 들려준다. 환자들에게 마음의 힐링을 해주는 것이다. 김애양 원장의 가족 중 무려 17명이 의사다. 5남매(김애양원장은 넷째 딸)가 모두 의사이고, 둘째 언니의 남편(미국에서 병원건축 사업)을 뺀 4명의 배우자도 의사다. 산부인과 의사가 3명, 재활의학과 2명, 내과·비뇨기과·신경정신과 등 전공분야도 다양하다. 자식 대에서도 8명이 의사이거나 의대에 다닌다. 그야말로 닥터 패밀리다.
이들 5남매가 모두 의사를 직업으로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아버지의 강한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세계에서 7번째로 셰익스피어 전집을 완역한 고 김재남 전 동국대 명예교수다.
의사이자 수필가, 김애양
김애양원장도 의사이자 수필가다.
1998년 등단해 지금은 어엿한 수필가 겸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 중인 김 원장은 5년 남 짓 개원하면서 500여명의 아이를 받아냈다.
하지만 임신 7개월에 사산이 되어 병원에 도착한 산모. 양수가 터져 제왕절개가 필요했지만 마취과 의사가 없어 대학병원으로 보냈으나 사산을 하고 만 산모, 출산 직후 숨이 멎은 손주를 묻어주겠다고 병원에 삽과 곡괭이를 들고 나타나 죽은 아이를 달라던 할아버지 등 산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고초로 김애양원장은 결국 문을 닫고 몇 년간 휴식을 가졌다.
이 기간에 김애양원장은 백화점 문화센터를 찾아 문학을 배우기 시작했고 범우사에서 나오는 월간 잡지 <책과 인생>을 통해 등단, 2008년에는 첫 수필집 ‘초대’를 출간했다.
김 원장은 “처음에는 내가 글을 잘 쓰는지도 몰랐다”며 “몇 작품 집필하다보니 문화센터 선생님인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님이 등단을 권유했으나, 아무에게나 등단하자고 하는 사람인줄 알고 문화센터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9년 만에 다시 찾은 문화센터에서 다시 등단을 제의했던 임헌영선생을 만나고. 그 당시에 김애양 원장에게만 등단을 제의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오해를 풀게 됐다고 말한다.
이후 김애양원장은 수필집 출간 이외에 다양한 곳에서 원고청탁을 받거나 기획 연재물을 게재하고 대학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남촌문학상을 받은 <초대>이후 <의사로 산다는 것> <위로> 이어 이번에 <명작 속의 질병 이야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의사가 문학 속에 숨겨진 의학을 꺼내 재미있고 쉽게 들려주는 책이다. 가상 체험을 통해 질병에 대한 면역성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한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질병을 소재로 삼은 글을 만날 수 있다. 매독, 상상임신, 뇌막염, 간질, 천식, 요독증, 해표상지증, 녹내장, 건강염려증, 천식 등 총 19가지 질병이 담겨 있는 문학 작품을 다룬다. 김애양원장은 이 책을 통해 병마를 이겨내는 힘을 얻고 삶을 사랑하게 되기를, 또한 문학으로 소통하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글들은 문학지 <문학청춘>이라는 잡지에 3년간 연재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문학을 실현하는 장소, 은혜산부인과
김애양원장의 은혜산부인과 진료실은 문학을 실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가끔 글을 쓰다보면 '환자가 좀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문학을 접하고 글을 쓰면 남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는 게 그의 견해다.
환자를 만나는 의사로서 중요한 대목이다. 그는 감히 “카사노바도 책을 읽었으면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김애양 원장은 “의사라면 누구나 작가의 소질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의사들은 오랜 기간 글을 접해서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서 일기를 써보는 것도 글의 시작의 한 방법"이라고 권했다.
김애양 원장은 본인의 이야기도 더 한다. “‘작가로만 활동하면 더 행복했을까'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덜 좋을 것 같다"면서 “의사로서 작가를 하는 것이 문학을 더 즐길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학과 진료, 인간을 치유하는 일
김애양 원장은 “아폴론이 의학과 문학을 함께 관장하는 신이 듯이 문학과 의학이 동시에 육체와 정신의 치유 역할을 한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의사도 때로는 아프다는 것과 그냥 보통사람이라는 것을 글을 통해 말하고 싶다고.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 기자에게 마르셀 프로스트의 11권짜리 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김애양 원장을 지난해 이 책을 읽으면서 봄이 언제 왔는지 언제 갔는지 등나무 꽃이 언제 피고 졌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다.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의 지점에 이 작품이 었다고 말했다.
보르헤스는“과학은 육체의 확장을, 문학은 마음의 확장을 추구 한다”고.
『명작 속 질병 이야기』의 머리글에 “이 책을 통해 병마를 이겨내는 힘을 얻고 삶을 사랑하게 되기를, 또한 문학으로 소통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질병 없는 세상이 가능하진 않겠지만 가상 체험을 통해 질병에 대한 면역성을 얻고 모두 건강하길 기원 한다고 썼다.”
김애양원장은 문학을 통해 성공한 의사보다 좋은 의사로 남고 싶다고도 말한다.
chanho22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