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D병원 의료사고 끝나지 않는 싸움 내 막
수술 중 사망 故 김진현 하사 유가족 병원상대 법정 투쟁
2009-05-12 윤지환 기자
2007년 6월 22일 부천의 한 병원에서 현역 육군 하사관이 치질수술 직후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 후 유가족들은 병원 측의 부실한 대처로 환자가 사망했다며 의료진에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법대로 하라며 유가족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끝까지 병원 측의 잘못을 밝혀내고 말겠다며 투쟁에 돌입했다. 양측의 대립은 첨예했다. 병원 측은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유가족 측은 병원 측이 과실을 은폐하기 위해 마취 동의서와 같은 서류를 조작하는 등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건은 진실게임양상으로 변해갔다. 그 후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유가족들의 투쟁은 끝났을까. 이 사건은 [일요서울]이 최초 보도한 이후 주요 방송과 언론에 잇따라 보도되면서 의료사고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유가족 측에 따르면 사법부는 병원 측의 의료행위 중 과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거액의 보상금이 아니다. 보상금을 원했다면 이 사건은 이미 끝났어야 한다. 유가족들은 병원 측의 과실인정과 공식적인 사과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건으로 의료사고를 내도 처벌받지 않는 의사들의 성역이 깨지기를 유가족들은 원하고 있다. 아직도 지루한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는 부천 D병원 의료사고 피해자 유가족을 만나 봤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들이 어느 날 어처구니없게 세상을 떠났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병원 측의 과실이었다. 그래서 이를 병원 측에 강력히 항의했다. 병원 측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잘못이 없다며 법대로 하라고 했다. 그뿐 아니다. 자식이 죽어 억장이 무너지는데 병원 측은 우리한테 보상금을 타내려고 억지를 부린다고 했다. 기가 꽉 막혀 말조차 제대로 안 나왔다.”
피해자 故 김진현(2007년 당시 23세) 하사의 아버지 김윤기(52)씨는 이렇게 말하며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이제는 이런저런 말할 기운조차 없다고 말하는 김씨의 눈은 어느새 붉게 충혈 돼 있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병원 측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만은 분명히 했다. 무엇이 김씨를 이토록 분노에 휩싸이게 한 것일까.
김씨는 “아들이 죽자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도대체 뭘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는데도 나몰라하는 병원 측의 뻔뻔스런 행동을 보면서 뭘 해야 할지 알게 됐다.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의료사고에 대한 의사들의 면책특권을 없애고 말겠다”고 말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김씨는 “의사들은 사람을 죽이고도 법적처벌을 받지 않는 성역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의료지식이 없는 피해자들이 병원을 상대로 투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겪이라고도 했다.
김씨는 병원 측의 태도에 분개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과실을 저지른 의사들을 처벌받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주변에선 김씨의 팔을 붙잡으며 만류했다. 수술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마취가 잘못된 의료사고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사법부도 의료사고엔 관대하기 때문에 부질없는 싸움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말을 듣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씨는 “내가 공연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아들 잃은 사람에게 보상금 노리고 생트집 잡는다며 사과한마디 하지 않는 병원 측의 태도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내 전 재산을 소송비용으로 다 날리더라도 끝까지 병원을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그동안 소송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가장 힘든 것은 물증을 구하는 것이었다. 재판에서 의료사고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나 증언을 찾아야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타 병원에선 입을 다물었고 D병원은 서류를 순순히 내 주지 않았다.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렵게 구한 의료기록과 수술차트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냈다. 그 결과 병원에서 일부 서류를 조작한 증거를 찾아냈다.
김씨에 따르면 “국과수에서 ‘마취술기의 부적정성을 배제하기 어려움’이라는 검사결과를 전해왔다. 또 서류상으로 볼 때 시간을 조작한 흔적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런 내용을 접하고 ‘이젠 병원의 과실을 세상에 알리고 아들의 한을 풀 수 있겠구나’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말하자면 의사들의 의료행위는 성역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의료사고 담당의 실형 선고
김씨에 따르면 사법부는 모든 정황과 그에 따른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에 소극적인 느낌을 강하게 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병원 CCTV기록과 진료기록부를 대조하면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진료기록부가 30분이나 늦게 기록되어 있다. 병원 측에서는 이를 두고 ‘당시 상황이 긴박해 잠깐씩 메모를 해 놓았다가 나중에 기록하였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지 조작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병원 측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조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재판에서도 제기된 부분이지만 법원은 이를 병원이 고의적으로 조작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2단독 신현일 판사는 지난 4월 22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부천 D병원 마취의 이모씨에 대해 금고 8월을, 집도의 김모씨에 대해선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수술한 환자 김 하사가 치칠 수술 뒤 2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는데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집도의는 피고인의 유가족과 합의한 점을 고려, 집행유예를 선고하지만 마취의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실형을 선고한다"면서 “다만 마취의인 피고인도 합의를 보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법정구속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집도의는 항소 포기를, 마취의는 항소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가족측도 형량이 터무니없이 낮다며 항소할 뜻을 분명히 했다.
또 김씨는 아직 밝혀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법원은 담당의들이 응급처치를 적절히 하지 못했다는 점만을 두고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수술 전후 과정에서 병원 측의 부주의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수술 전부터 환자는 안정을 취해야 함에도 아들이 누운 침대를 입원실에서 수술실까지 145미터를 뛰어서 이동시켰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불안감 조성, 혈압과 맥박 상승 등으로 수술에 부작용이 올 수 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외과담당의 김모씨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 얼마 전에 형사합의를 봤다. 하지만 마취담당의 이모씨의 경우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가 합당한 죗값을 치를 때까지 법적 투쟁을 계속 할 것이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