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인천 송도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 전말
“평가인증 점수 올려 달라고 복지부·상관 전화 와”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인천 송도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그동안 원아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았지만 송도 어린이집 사건을 계기로 쌓였던 문제들이 폭발한 분위기다. 타이밍이 늦긴 했지만 정부 관련 부처와 수사기관 그리고 정치권까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아동학대 방지책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일요서울]에서는 원아폭행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분석해 보고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또 다른 원아폭행 사건을 집중 조명해 봤다.
부실한 평가인증·교사검증 시스템이 문제
“보육교사 능력·인성 평가할 수 있는 절차도 없다”
인천 송도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은 그동안 발생된 사건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인천에서는 서구, 남동구 등에서 연이어 원아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직후만 여론이 들끓었을 뿐 시간이 지나면 잊히곤 했다.
“단 한 번의 행동이라
보기 어려워“
이번에 문제가 된 보육교사 A씨는 지난 8일 오전 12시 50분께 인천 연수구 송도동의 한 어린이집에서 4살짜리 원생 B양을 폭행했다. A씨는 당시 B양이 식판에 김치를 남겨오자 이를 억지로 먹이다 B양이 김치를 뱉자 오른손으로 B양의 왼쪽 뺨을 강하게 때렸다.
당시 CCTV를 살펴보면 A씨는 분노를 감추지 못한 채 B양의 뺨을 있는 힘껏 내리쳤고, 무방비 상태로 서 있던 B양은 구석으로 나가떨어진 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내 몸을 추스른 B양은 A씨의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바닥에 떨어진 김치를 치웠다. 한 편에는 겁먹은 또 다른 원생들이 아무 말 못하고 A씨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건 후 어린이집으로 찾아간 학부모들은 이 장면을 보고 흐느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당초 A씨는 조사과정에서 “훈계차원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동영상 속 A씨의 행동은 훈계차원을 넘어선 행동이었다.
한 상담심리사는 A씨의 행동을 보고 “평소 참았던 화를 터뜨린 것 같은데 저 정도 상태라면 상당히 오랫동안 쌓여온 화를 참지 못한 행동인 것 같다”고 분석하며 “단 한 번의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사건 발생 후 해당 어린이집 학부모들은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가기를 싫어했고 심지어 배변장애가 온 경우도 있다며 A씨가 지속적으로 폭력을 휘둘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했다.
경찰은 14일 2건의 학대 동영상을 추가로 공개했다. 공개한 동영상에는 지난 5일 해당 보육교사가 실로폰 채로 남자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한 차례 때리는 장면과 남자 아이에게 점퍼를 입히는 과정에서 손으로 허리를 강하게 잡아당기는 모습이 담겼다.
얼굴·엉덩이 맞거나
친구 맞는 모습 목격도
이런 가운데 경찰은 어린이집 원생·학부모 진술서와 증언을 통해 4건의 추가 폭행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해 9월에는 밥을 흘리고 먹는다며 한 아이를 때렸고, 11월에는 버섯을 먹지 않고 토해냈다는 이유로 또 다른 아이의 얼굴을 때렸다.
폭행 장면을 담은 CCTV 동영상 2건도 확보했다. A씨는 지난 8일과 9일 율동 시간에 한 아이 동작이 틀리자 어깨를 잡아 넘어뜨린 뒤 무릎을 꿇어 앉혔고, 같은 아이가 다시 동작을 틀리자 모자를 잡아 채 넘어뜨렸다. 또 점심을 먹고 잠을 자지 않는다며 여러 아이들에게 베개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경찰은 동료교사 4명을 통해 A씨의 폭행이 상습적으로 이뤄졌음을 확인했다.
인천 송도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은 지난 8일에 발생한 사건이다. 이전에도 인천에는 원아 폭행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인천 서구의 어린이집 교사 C씨가 네 살배기 어린이의 손목을 노끈으로 묶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이 확인한 CCTV에는 C씨가 자신의 얼굴을 밀쳤다는 이유로 원생 D군을 교사실로 데려간 뒤 그의 양 손목을 서랍에 있던 노끈으로 묶어 학대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지난해 12월 17일에는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한 어린이집에서도 두 살배기 아이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CCTV를 살펴보면 교사가 뛰어놀고 있는 한 아이를 낚아채 머리 높이까지 들어 올리더니 바닥에 그대로 내동댕이치는 장면이 찍혀 있다. 또 다른 아이도 같은 방식으로 내동댕이쳤다.
교사가 아이들을 내동댕이친 이유는 낮잠 잘 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운다는 등의 이유였다.
인천 외에 경기도 영어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에 대한 폭행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장소는 ‘도깨비방’이라고 불리는 불 꺼진 방이다.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부모는 지난해 10월쯤 아이들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도깨비방’이라는 불 꺼진 방에 갇혀 교사에게 맞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교사가 손으로 얼굴과 머리를 때리거나 밀치고, 막대기로 배를 때렸다고 말했다. 손을 들게하고 겨드랑이를 때리거나 가슴을 꼬집고 입을 손가락으로 찔렀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원아 폭행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보육교사의 자질과 부실한 평가인증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평가인증은 정부가
점검은 보육진흥원이
인천 송도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의 당사자인 보육교사 A씨는 1급 보육교사 자격증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1급 자격증은 2급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에서 3년 이상 일하면 별다른 시험이나 검증 절차 없이 승급할 수 있다. 사실상 해당 교사의 능력과 인성을 정부가 평가할 수 있는 절차가 없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부실한 평가 인증이다. 인천 송도 어린이집은 7개월 전인 지난해 6월, 100점 만점에 총점 95.36점을 받아 복건복지부의 인증을 받았다. 지난 12월 두살배기 아이를 내동댕이치는 사건이 발생한 인천 남동구의 어린이집도 평가인증 점수 총점 94.33을 받았다. 특히 보육환경과 보육과정은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기도 했다.
평가인증 기준인 75점 이상을 받은 어린이집은 복지부장관의 직인이 찍힌 ‘어린이집 평가인증서’와 인증번호가 적힌 ‘현판’을 받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평가인증은 정부가 해주지만, 실질적인 점검 주체는 한국보육진흥원(보육진흥원)이다. 민간재단인 보육진흥원은 2010년부터 어린이집 평가인증, 보육교직원 자격검정 관리 및 중앙보육정보센터 기능 등 복지부의 사업을 위탁받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보육진흥원이 소규모 민간재단이다 보니 인력 제한과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된 위탁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3년 5월 15일 기준 한국보육진흥원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보육진흥원은 현장관찰자 224명, 확인방문자 2명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기준 전국 어린이집 수가 4만 3936개소임을 감안해보면, 현장관찰자 1명이 196개소의 어린이집 현장을 점검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장관찰자 등의 평가 이후다. 한 보육진흥원 관계자에 따르면 “복지부 관계자 등을 통해 인증점수를 올려달라는 청탁이 많이 들어온다”며 “보통 상관에게 직접 전화가 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렇게 들어온 청탁은 대부분 자신들의 지인·가족·상관 등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점수를 올려달라는 경우다. 보육진흥원 입장에서는 상급기관 관계자들의 요구를 그냥 넘길 수 없는 입장이다 보니 직원들도 어쩔 수 없이 점수를 올려주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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