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인사태풍 집중분석
가족간의 일?…후계구도 맞물려 관심 증폭
[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재벌 오너가에 때 아닌 인사 태풍이 불고 있다. 예년엔 승진이 다소 늦춰지는 정도였다면 올해는 경영 2선 후퇴 또는 경영에서 손을 떼는 사례도 등장해 충격을 안긴다.
아울러 황태자의 갑작스런 거취와 관련해 기업들이 배경설명을 하지 않아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도 퍼지고 있다. 단순히 부모의 의중이라는 사실만 알려지면서 내부적으로 큰 잘못을 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이들 황태자의 행보는 단순 인사조치가 아닌 후계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
지는 자·뜨는 자…롯데·CJ·현대차 이목 쏠려
경영권 분쟁 조짐 보이기도…사측 “그런 일 없다”
그래서 주목받는 곳이 롯데그룹이다. 새해 초부터 신동주 전 부회장이 계열사 4곳의 등기이사 해임 소식을 알렸다.
이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재계는 물론 정치권도 그 배경을 궁금해 한다.
아직 뚜렷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근 신동빈 회장이 형의 해임은 “아버지(신격호 회장)의 뜻”이라고 밝힘에 따라 오너일가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게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일부 신문이 보도한 전문경영인과의 마찰, 또는 일본롯데 성과 추락 등 숱한 의문을 제기하는 일도 많았지만 이마저도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
이번 일로 인해 신동주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지만 이 역시도 확인 된 바는 없다.
다만 복수의 매체가 추론하듯 신 전 부회장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이며 그로 인해 신격호 총괄회장이 극단의 조치를 내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따른 후계구도 시나리오가 다각도로 분석되고 있다는 것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롯데 측은 “가족 간의 일이고, 회사 차원에서 말씀드릴 내용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따라 향후 형제간 후계구도가 어떻게 될지는 여전히 의이다.
같은 시기 CJ그룹 이미경 부회장도 경영에서 한 발 물러났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라구나비치에 머물고 있다. 이 부회장의 미국행은 어머니 손복남 고문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진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구속 이후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상경영체제로 운영돼 왔다. 손경식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 이채욱 CJ주식회사 대표이사, 김철하 CJ제일제당 대표이사 등이 참여하는 그룹 경영위원회를 발족해 회사의 주요 현안을 결정해 왔다.
이 부회장도 자신의 자리에서 이 회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2월 이 부회장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 “현재 나는 사실상 CJ그룹의 최고경영자(CEO)”라며 “이는 이 회장이 없는 동안 회장 지위에 오를 것이란 의미는 아니며, 직함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노희영 전 CJ그룹 브랜드전략고문을 비롯해 이 부회장이 외부 영입한 컨설턴트들이 곳곳에 포진하자 그룹 안팎에서 이를 염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내부 사세 확장에 따른 혹시 모를 부작용(?)을 의심했다는 후문이다. 대표적 인물이 노 전 고문이다. 소득세 탈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가운데 전격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노 부사장이 기존 임직원들과 곳곳에서 충돌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에 결국 손 고문이 제동을 걸었다. 현재 노 씨에 이어 외부에서 영입된 컨설턴트들도 지난해 대부분 회사를 떠났다.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은 다른 각도에서 경영에 대한 입지 이야기가 나돌았다. 글로비스 매각이 이슈로 떠오른 것. 글로비스는 정 부회장의 후계구도 실탄설로 주목받은 업체다.
정 부회장도 이 같은 논란을 의식이라도 하듯 지난 12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15 디트로이트 모터쇼’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문제에 대해 경영권 승계 차원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정 부회장은 “승계보다는 지배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 부자가 지분을 팔려고 한 것이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면서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 그룹 중 대주주 일가 지분이 30%를 초과하는 계열사는 내부거래 금액에 제한을 두고 있다. 내부거래액이 총 200억 원 또는 연간 매출의 12% 이상일 경우다.
이에 따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 부회장은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주식 1600여만주(43.39%) 중 500여만주(13.39%)를 매각하기로 하고 최근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그러나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은 물량이 많고 종가보다 7.5~12% 할인되는 거래 조건 탓에 불발됐다.
단순 해프닝이 될 뻔했지만 오너 황태자라는 이유만으로 재계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빈자리 백년손님이 채워
이처럼 오너 일가의 공백의 발생하면서 이 자리를 메우려는 또 다른 황태자의 행보에도 초점이 맞춰진다. 이미 이재현 CJ 회장의 사위인 정종환 씨(36세)가 그룹 후계구도 전면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 상태다.
이 회장의 경영공백이 길어지는 가운데 회장의 직계인 장녀 경후 씨(31세)와 장남 선호 씨(26세)가 단기간 내 그룹 경영에 뛰어들기는 어려운 데서 나온 그룹 차원의 고육지책으로 분석된다.
업계에 따르면 정 씨는 최근 본격적으로 그룹 현황 파악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CJ의 미주법인인 CJ아메리카 소속인 그는 CJ아메리카 업무 외 계열사 현황 파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CJ그룹 입사 전 미국 시티은행과 모건스탠리에 근무한 적이 있으며, 내부에서 재무적 식견과 경영 역량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신세계 그룹 정명희 회장의 외동딸인 정유경 부회장의 남편 문성욱 부사장도 대표적인 사위경영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 부사장은 지난 1일 이마트 해외사업 총괄 대표 부사장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 글로벌 패션1본부장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 부사장은 그동안 이마트의 해외 사업 등 새 먹거리 발굴에 주력해 왔다.
또한 지난해 부회장으로 승진한 박장석 SKC대표이사도 잘 알려진 사위 경영인이다. 박 부회장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둘째 딸 혜원 씨의 남편으로 미국 스티븐스대 경영학 석사를 졸업하고 1979년 SKC미주본부에 입사한 뒤 승진가도를 달려왔다. 업계에서는 박 부회장의 경우 재벌가 사위보다는 전문경영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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