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도시관리공단 도 넘은 ‘발 빼기’ 눈살

‘인재(人災)로 시민 죽었는데’… 취재기자 잡상인 취급

2009-02-24     이수영 기자

“기자랑 할 말 없으니 전화 끊으십시오.”

지난 17일 오후 4시경 서울 성북구 종암동 개운산 스포츠센터 지하에서 발생한 보일러 폭발 사고로 2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벌어졌다. 사건의 책임소재를 놓고 스포츠센터를 직접 관리·운영하고 있는 성북구 도시관리공단과 보일러 시공업체, 보일러 안전점검을 담당한 에너지관리공단이 수사가 진행될수록 열띤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현장감식과 관련자 소환 등 경찰 수사가 속도감을 내고 있는 가운데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의 유별난 ‘나몰라라 식’ 발뺌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취재기자를 ‘잡상인 취급’하며 상대조차 하지 않는 등 사건을 무마하려는 데만 혈안이 돼있는 까닭이다. 무려 10명의 시민 목숨이 폭발음 속에 사라질 뻔한 대형 참사가 벌어졌음에도 관리 책임자인 도시공단의 ‘무대포식’ 대응은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지난 18일 기자는 폭발 사건과 관련한 사실 확인과 해명을 듣기 위해 도시공단 개운산 스포츠센터 담당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담당 직원은 ‘문전박대’나 다름없는 홀대 끝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자 면담 요청까지 했지만 역시 단박에 거절당했다.

도시관리공단 개운산 스포츠센터 김모 담당자는 “이미 관계자들이 경찰에 줄줄이 소환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 수사결과가 나온 뒤 이를 참고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경찰 수사결과 받아쓰면 되지”

단순 사실 확인이라도 하기위해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김 담당자의 태도는 여전히 냉랭했다. 마치 상부로부터 ‘언론사의 어떤 질문에도 함구하라’는 지시를 받은 듯 했다. 기자가 상급자와 통화하겠다는 뜻을 밝혔음에도 ‘자리에 안계시다’는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기자가 “이런 식으로 취재를 거부하면 도시관리공단 측에 불리한 주장이 나와도 적절한 해명 기회를 잃게 될지 모른다”며 설득했지만 김 담당자는 “마음대로 하라”며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종암경찰서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보일러실 관리자만 자리를 지켰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보일러 관리자는 도시관리공사가 운영하는 개운산 스포츠센터의 상주 직원이다.

문제는 스포츠센터 측이 보일러 관리자가 사실상 스포츠센터 시설 여러 곳을 동시에 관리하도록 지시했다는 점이다. 도시관리공단 관리자의 말을 인용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보일러 관리자는 보일러 관리 뿐 아니라 센터 보수작업 등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보일러 상임 관리자는 관련 자격증을 가진 전문 인력이지만 실제 보일러 관리는 단순 ‘감시’업무로 실제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도시관리공사 측이 보일러 전문 인력에게 다른 시설물 관리까지 함께 맡겨 관리 소홀을 부추겼다는 주장이 나올 만 하다.


전문인력, 다른 파트 돌려 막기?

폭발한 보일러는 많은 양의 물을 가열시켜 증기로 열을 내는 ‘노통연관보일러’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보일러의 폭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가스가 누출됐을 경우와 저장된 물이 적정수위(60~70%)를 넘겨 끓어오르다 폭발하는 것이다.

폭발 규모로 봤을 때 이번 사고는 후자가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같은 고수위 폭발은 사고 1~2시간 전에 이상 징후가 드러나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보일러 전문 업체 A사 관계자는 “가스 누출 폭발은 건물 전체를 날려버릴 만큼의 위력이 있어 이번 사고는 고수위 폭발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고수위 폭발은 적정수위를 넘어 폭발하기까지 약 1~2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관리자가 확인만 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보일러 관리자가 원래 근무 영역을 비우고 다른 일을 처리한 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한편 문제의 보일러가 폭발하기 약 7시간 전인 지난 17일 오전 에너지관리공단으로부터 안전 점검을 받았고 ‘정상’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안전 점검을 실시한 에너지관리공단 측이 부실 검사를 벌였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에너지관리공단 측은 문제 가능성을 일축했다.

에너지관리공단 검사진단지원실 최모 담당관에 따르면 에너지공단은 완전히 분해 된 보일러에 대한 안전검사만 실시한다. 즉 보일러 운행을 중단하고 이를 분해해 청소한 뒤 조립하는 과정은 보일러 상임 관리자와 시공업체 몫이라는 얘기다.

최 담당관은 “보일러 안전점검은 1년에 한 번씩 실시되는데 전문 시공업체에서 분해해 청소를 마치면 보일러 상임 관리자를 포함한 관리자가 입회한 상태에서 검사하는 게 원칙”이라며 “검사가 끝나면 다시 전문시공업체가 보일러를 조립하고 시운전을 해 문제가 없어야 모든 점검이 끝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보일러 안전검사가 스포츠센터 리모델링 공사 기간에 쫓겨 졸속으로 처리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즉 정확한 수사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에너지관리공단 역시 책임의 한 축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폭발 피해자, 거액 보상 소송하면 승산 충분

이번 사고로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들이 관련 책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 이길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 전망이 나왔다.

이 사고로 김경복 씨(41·여)와 박용희 씨(37·여)가 사망했고 김성희 씨(39·여) 등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숨진 김씨와 박씨의 시신은 고려대 안암병원, 경희대 병원에 안치됐다. 부상자들은 고려대 안암병원, 서울대병원, 성바오로병원, 경희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한편 지난 1999년 씨랜드 화재참사 사건에서 활약한 안병희(법무법인 한중) 변호사는 사고 피해자들이 관련기관과 책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안 변호사는 “이번 사고는 보일러 관리시스템에 문제가 있었음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며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 책임자와 책임기관이 명확해져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변호사는 지난해 서울 논현동 고시원 방화·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