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필립 파라다이스 회장의 손쉬운 경영권 승계법
비상장사 지분 증여…대 이어 반복된다
현재 파라다이스는 일본 기업과 함께 인천 영종도에 국내 최초 복합리조트 사업을 진행하는 등 오랜만에 광폭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이에 전 회장의 가족 등 오너 일가의 움직임도 함께 주목받으며 앞서 있었던 증여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오르는 상황이다.
회장 부인은 사장…처남은 영종도 복합리조트 총괄
미성년인 자녀 삼남매 일찌감치 지주사 주식 넘겨받아
파라다이스는 국내 카지노 중 매출 1위를 달리는 기업이다. 특히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시장점유율 50%를 넘기는 영향력을 과시한다. 서울 워커힐을 비롯해 인천, 제주도 등에 총 5개의 카지노 객장을 운영 중이다.
파라다이스의 선대회장인 고(故) 전락원 회장은 카지노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다. 전 선대회장은 1972년 설립한 파라다이스투자개발을 통해 민영화된 카지노사업권을 확보했다. 파라다이스라는 명칭은 전 선대회장의 이름인 ‘낙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 2004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전 선대회장은 호텔과 면세, 건설 등으로 사업분야를 늘렸다. 그럼에도 주력사업은 여전히 굴뚝 없는 황금산업인 카지노에 맞춰져 있었고 수익의 대부분도 여기에서 나왔다.
오랜만에 모습 드러낸 전 회장
이 같은 선택은 장남인 전필립 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은 후에 다소 변동이 있었다. 선대회장의 타계로 비교적 이른 나이인 40대에 그룹 수장이 된 전 회장은 그간 조용한 경영을 펼쳐왔다.
젊은 시절 전 회장은 중앙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망으로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렇게 보스턴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도중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전 회장은 마음을 바꿔 다시 경영을 택했다. 귀국한 전 회장은 취임 전 10년간 그룹에서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았다.
한때 전 회장은 대표적인 은둔형 경영자로 꼽히기도 했다. 2005년 공식 취임 이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다. 앞서 2010년에는 그룹 비전을 제시하는 선포식에 5년 만에 얼굴을 비쳐 다소 적극적인 행보가 예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으로 얼굴을 보인 것은 4년 만인 지난 11월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기공식이었다.
사실 전 회장은 2010년까지 여행 등 신사업 진출에 열을 올렸으나 모두 부진한 결과로 끝났다. 결국 주력사업에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전 회장은 2012년 신세계에 매각한 면세점을 시작으로 비주력 계열사 정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모두 파라다이스가 그룹 사활을 걸고 진행하는 파라다이스시티 투자금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는 파라다이스가 일본 세가사미홀딩스와 합작투자하는 복합리조트 사업이다. 합작사 파라다이스세가사미의 지분은 파라다이스 55%, 세가사미 45%로 구성돼 있으며 총 투자금액은 1조9000억 원에 이른다. 이와 관련해 파라다이스는 올해에만 손자회사를 포함한 계열사 15곳 중 6곳을 팔아 자금을 확보 중이다.
증여세 감면 노린 행보인가
그럼에도 모자라는 1조 원가량은 파라다이스세가사미가 자체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차입할 예정이다. 앞서 파라다이스세가사미는 파라다이스의 출자금으로 인천 카지노 사업부문을 영업양수했다. 이외에 복합리조트에 포함된 특1급 호텔과 외국인전용 카지노 및 쇼핑몰 등은 차입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이 파라다이스세가사미의 대표는 바로 최종환 파라다이스 사장이다. 최종환 사장은 전 회장의 부인인 최윤정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의 남동생이다. 부사장이던 최 사장은 연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고 최 이사장은 지난 4월부터 그룹 디자인총괄 사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또 전 회장 자녀인 삼남매는 매우 어린 나이부터 착실히 지분을 넘겨받고 있다. 현재 삼남매가 보유한 파라다이스글로벌 지분은 모두 20.1%로 각각 6.7%씩이다. 파라다이스글로벌은 전 회장과 자녀들이 지분 87.43%를 보유한 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다.
전 회장은 취임한 해인 2005년 당시 만 10세도 되지 않은 삼남매에게 파라다이스인천 지분 20%씩을 줬다. 이후 파라다이스인천은 2011년 파라다이스글로벌에 흡수합병됐고 삼남매는 신주 6.7%씩을 보유하게 됐다.
사실 파라다이스글로벌은 비상장사로 지분 증여 시 경영권 승계에 다소 유리한 면이 있다. 비상장사는 가치 평가를 조절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만약 고의로 일회성 비용을 반영해 해당 회사의 실적을 떨어뜨리면 지분 증여에 따른 세금은 급감한다.
이후 증여가 끝나면 회계처리를 바꿔 다시 원래대로 해당 회사의 이익을 조정함으로써 오너 일가는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마치게 된다. 파라다이스의 경우에도 지분 증여 이후 파라다이스인천이 고속성장해 이 같은 의혹을 받을 만하다. 올해 삼남매는 파라다이스글로벌이 최대주주로 있는 (주)파라다이스 지분 일부를 처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승계 방식은 전 회장이 선대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방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당시 전 회장은 파라다이스부산 지분 80%가량을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았다. 파라다이스부산 역시 비상장사로 (주)파라다이스 등 핵심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파라다이스는 공시 의무가 없는 비상장사를 통한 경영권 승계의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다소 편법적인 측면이 있지만 증여세 감면 등에서 가장 확실하기 때문에 선대회장에 이어 현 회장도 이러한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