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 윤 보살’ 추악한 사기극 ‘전모’

“마귀 들린 남편이 친딸도 잡아먹었어!”

2009-01-14     이수영 기자
강남에서 유명세를 떨치며 일명 ‘개포동 윤 보살’으로 불리던 무속인이 점을 보러 온 전직 군장성의 부인을 속여 1년 만에 무려 15억원을 갈취한 사건이 발생했다. 불안한 마음에 점집을 찾은 손님들에게 영험한 신령의 힘을 미끼로 거액을 빼돌린 것이다.

문제의 무속인은 수년 전 부유층의 부동산 투기를 고발한 TV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신이 내가 살 아파트를 점지해준다”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재력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에게 신 내림과 계시를 받았다는 후배 무속인도 많아 업계에서 ‘개포동 윤 보살’은 상당한 실력자로 알려졌다.

“남편에게 마귀가 들려 처자식을 잡아먹는다”는 폭언으로 피해자를 농락한 개포동 윤보살의 신들린 사기극을 들여다봤다.


“개포동 윤 보살한테 한번 가봐”

퇴역 장군의 부인으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온 김모(51·여)씨의 유일한 고민은 대학입학을 앞둔 딸의 진로문제였다. 고3 딸의 수능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난 2007년 10월 김씨는 이웃들의 소개로 무속인 윤모(59·여)씨를 찾아갔다.

개포동에서 점집을 운영하고 있던 윤씨는 강남 일대 귀부인들 사이에서 ‘개포동 윤 보살’로 불리며 유명세를 떨치는 용한 무당이었다. 윤 보살을 찾아간 그날 김씨는 그의 서슬 퍼런 고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한테 마귀가 들었어! 네 남편은 변태야. 벌써 첩이 일곱에 친딸도 잡아먹었구먼! 남편 손에 처자식 죽이고 싶지 않으면 내말 명심하고 들어!”

김씨의 남편은 군인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보수적인 남자였다. 이런 남편을 당연히 믿었어야 했지만 용한 무당의 시퍼런 서슬에 기가 눌린 김씨는 윤 보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윤 보살은 겁에 질린 김씨에게 “영험한 기도로 마귀를 쫓아주겠다”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도비용으로 한번에 수천만원씩을 받아 챙긴 윤 보살은 피해자의 입막음에도 철저히 신경 썼다.

“허튼 소리를 나불대고 다니면 기도발이 달아나니까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만 해.”

이미 윤 보살의 말발에 혹한 김씨는 혹시라도 부정을 탈까 혼자 속을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사이, 윤 보살의 재산은 눈 덩이처럼 속속 불어나고 있었다. 윤 보살은 역시 무속인인 남편 조모(61)씨 까지 동원해 김씨의 재산을 야금야금 빼앗는데 혈안이 됐다.

지난해 초까지 30여 차례에 걸쳐 김씨에게 6억원의 현금을 뜯어낸 윤 보살 부부는 더 이상 뜯어낼 돈이 없자 아예 ‘외상 장사’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남편이 친딸을 성폭행하고 유산까지 시켰다”는 윤 보살의 ‘영험한 협박’에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선 김씨.


강남에만 아파트가 수십 채 ‘진짜 강부자’

결국 윤 보살 부부를 상대로 차용증까지 써준 김씨는 애지중지 아껴왔던 강남 역삼동의 아파트까지 무당 손에 넘겨주고 말았다.

이미 퇴역한 남편의 퇴직금으로 받은 6억2000만원 역시 윤 보살의 주머니로 고스란히 넘어간 지 오래였다. 이 역시 윤 보살이 “남편이 퇴직금과 재산을 정리해 몰래 외국으로 나갈지 모른다”며 김씨를 부추긴 결과였다.

문제는 김씨의 남편이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친딸을 성폭행한 파렴치한에 부인을 버리려 꼼수를 쓴 냉혈한이었느냐는 것이다. 물론 남편은 억울한 모함을 당한 것뿐이라는 사실이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김씨의 남편은 본인 명의로 계좌에 들어있던 퇴직금 수억원이 아내 명의로 옮겨져 소리 소문 없이 증발해버린 사실을 안 뒤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결국 아내를 닦달해 이미 10억원이 넘는 돈이 무당에게 흘러들어간 것을 안 그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이혼을 결심하고 말았다.

하지만 김씨는 상황이 이지경이 된 와중에도 윤 보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버리지 못했다. 윤 보살은 한술 더 떠 “내가 기도로 남편과의 이혼을 막아주겠다”고 구슬려 김씨로부터 1억2000만원을 더 받아 챙기기까지 했다.

명망 있는 퇴역 장교의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데는 고작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전 재산을 날린 김씨는 결국 윤 보살 부부를 경찰에 고발했고 이들의 엽기적인 사기 행각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보살 부부는 강남 개포동과 역삼동에 본점과 분점까지 두고 용한 무당으로 행세해왔다. 윤 보살은 수년 전 고액 체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모 시사프로그램의 취재에 응하기도 했다.

당시 윤 보살은 “투기를 한 적은 없다. 다만 모시는 신께서 내가 살 아파트를 점지해 주신다. 타고난 재복이 이런 것을 어떻게 하느냐”며 제작진을 당황하게 했다.

‘재개발의 달인’으로 알려진 윤 보살은 최근까지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의 아파트를 골라잡아 대박을 터트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윤 보살이 자신과 남편의 명의로 수십 채의 아파트를 갖고 있다는 진술이 나왔다”며 “부동산 투기에도 여유 돈이 필요한 만큼 또 다른 피해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