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시절 미국식 민주주의의 위대함 실감

2008-12-30     김기삼 
나는 여러 군데의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다. 그 중에서도 펜실바니아 주의 카일라일(Carlisle) 이라는 소도시에 있는 디킨슨 법과대학이라는 곳이 마음에 들었다.

등록금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시골에 위치해 있는 점이 좋았다. 애팔레치안 산맥 안의 시골 벽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아마 1년간은 한국 사람을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현지에 도착해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시골 구석에도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제는 미국의 어느 시골 벽지에도 한국 사람이 없는 동네는 없는 것 같다.

카일라일은 평화롭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사람들은 더 없이 친절했다.

법원과 교회와 참전용사 기념비가 마을의 상징인 것처럼 마을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었다. 담벼락도 없는 고색창연한 대학 캠퍼스가 마을 안에 있었다.

마을 전체가 가로수에 푹 파묻힌 듯, 수백 년 된 가로수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었다. 펜실바니아 주에는 나무가 많다. 실바니아라는 말이 “숲”이란 뜻이다. 펜실바니아는 “펜의 숲”이란 말이다.

영국 왕이 펜 씨에게 수풀 덮인 땅을 하사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시냇가에는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우글우글했지만 아무도 잡아가지 않았다.

여름날 초저녁이면 무수한 반딧불이의 향연이 꿈결처럼 황홀하게 피어났다. 겨울철에는 눈 덮인 들판의 언덕이 아련히 펼쳐지는 곳이기도 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달력에 나오는 그림 같은 풍경이 그대로 있었다.

연수 갔다 돌아온 동료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누구나 한결같이 자기가 연수 갔던 곳이 제일 좋은 곳이었다고 믿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나도 카일라일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조금 살을 붙여 거창하게, “나는 카일라일이란 시골 마을에서 미국의 위대한 모습을 보았다”고까지 말했다.

실제로, 카일라일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화석처럼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선거 날 투표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미국식 절차적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그들의 선거는 조용하고 차분했지만, 모든 절차가 민주적이고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나는 이 시골 마을의 도서관에 가보고선, 미국의 세계 지배가 당분간 지속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골 마을의 도서관의 장서가 얼마나 많은지, 우라 나라의 큰 도회지의 도서관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카일라일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은 어딜 가나 마을마다 그럴 듯한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끼리 전산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어디서나 필요한 책을 빌려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들의 유치원에서 초 중등학교의 교육 시스템은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여기선, 촌지라는 게 발붙일 수 없는 곳이었다. 미국에서 50불 이상의 촌지는 뇌물로 취급된다. 미국의 공조직은 아직 부패되지 않았다. 이 점도 미국의 세계 지배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촌지가 없어도 선생님들의 열성과 책임감은 놀라울 정도였다. 한 명의 장애아를 돌보기 위해 서너 명의 교사가 달라 붙어서 교육하는 게 예사였다. 물론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진 지금은 당시에 가졌던 미국에 대한 인상이 많이 퇴색되었다. 나는 요즘 내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절감할 때가 많다. 특히 이 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보게 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미국에 연수 가려는 후배들에게, 나는 도시로 가지 말고 시골로 가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시골에는 아직 미국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서울이나 뉴욕이나 그게 그거다.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 연수지를 선택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인은, 미국이라고 다 같은 미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보면 그냥 미국이지만, 그게 아니다. 미국은 큰 나라이다. 하나의 대륙이다. 남과 북, 동과 서에 따라 기후도 천양지차이지만, 문화나 분위기도 천차만별이다.

도시 다르고 농촌이 다르다. 같은 농촌이라도 지역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차를 타고 20분 거리의 지역도 완전히 다른 동네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공부할 요량이면 동북 지역으로 가는 게 좋고, 적당히 쉬러 갈 요량이면 남서 지역으로 가는 게 낫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다면, 어디든 도시보다는 농촌이 낫다. 생활비 차이가 많이 난다.

카일라일은 전형적인 시골 학원 도시였다. 이 동네에 있는 디킨슨 칼리지는, 특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은 명문 사립대였다. 디킨슨 칼리지 한 귀퉁이에 디킨슨 법과 대학이 있었다. 두 학교가 이름은 비슷하지만 족보는 전혀 달랐다. 디킨슨 법대는 자기들 주장으로는 - 미국의 법과 대학 중에 일곱 번 째 설립된 유서 깊은 법대였는데, 시골 구석에 있어서 그런지 교세가 날로 줄어 들고 있었다. 이 학교는 내가 유학간 그 해에 펜실바니아 주립대학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에 편입되었다. 카일라일에는 미군의 육군대학(Army War College)도 있었다. 미 육군의 영관급 장교가 장성으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이 학교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육군대학 같은 곳이었다. 우리 육군에서도 매년 대령 한 명을 이 학교에서 연수시킨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