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북한 김 씨 일가 여성 편력

좋아하는 스타일 ‘제각각’가수·배우·비서…내연녀는 기본

2014-12-29     이지혜 기자

16세의 첫사랑…유부녀 뺏어 관계 맺기도
3세대 김정은 사랑은 현재 진행 중 ‘관심’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북한 김 씨 일가(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여성 편력은 유명하다. 1세대 김일성은 물론 2세대 김정은까지 본 부인을 제외하고도 여러 명의 첩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세대 김정은 또한 젊은 나이만큼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러나 김 씨 일가는 닮은 외모와는 다르게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은 제각각이다. 김일성은 순수한 여성을 원했으며, 김정일은 유명한 여성을 좋아했다. [일요서울]은 북한 김 씨 일가 3대의 여성편력에 대해 분석해봤다.

김 씨 일가의 1대 김일성 주석은 공식적으로 세 명의 부인을 뒀다. 첫 번째 부인은 만주 빨치산 시절에 만나 결혼한 김 주석의 첫사랑 한성희다. 16세의 김 주석은 비밀독서클럽을 만들고 한성희를 가입시켜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러다 빨치산 유격대 대장이 된 25세 때 한성희를 빨치산 활동에 끌어들이고 첫 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나 일본경찰의 습격으로 한성희가 포로로 끌려가면서 2년 만에 첫 번째 결혼 생활이 끝난다.

‘백두여장군’ 김정숙과
 김일성의 여인들
 
한성희와 헤어진 김 주석은 두 번째 부인 김정숙과 결혼했다. 김정숙과는 1936년 항일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김정숙의 소생이 김정일과 김경희다. 김정숙은 1949년 넷째를 출산하다가 32세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김정숙은 사망 후 아들 김정일에 의해 장군으로 추존돼 ‘백두여장군’이란 호칭으로 불리게 됐다.

두 번째 부인 김정숙이 사망하자 김일성은 한국전쟁 중 자신의 비서였던 김성애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김성애는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먼저 임신 한 뒤 비밀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1958년 가족사진을 공개하는 형식으로 알려지게 됐다. 두 사람의 관계는 김정숙이 살아 있던 시절부터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 사람의 불륜을 알게 된 김정숙이 출산 당시 김일성이 보낸 의사의 진료를 거부했고, 그로 인한 난산으로 고통 받다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김정일은 김성애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집권 이후 김성애는 권력에서 밀려났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알려진 3명의 부인 외에도 김일성에게는 두 명의 내연녀가 있었다. 첫 번째 내연녀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아 흔히 ‘제갈씨’로 불린다. 제갈씨는 김일성의 주석궁 안마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녀는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아들 김현을 두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녀의 아들이자 김일성의 사생아 김현은 지난 2001년 김정일에 의해 숙청 당했다.

김일성의 두 번째 내연녀는 무용수 출신의 미녀 김송죽이다. 김송죽은 지난 1992년 스웨덴에서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김백연과 함께 쇼핑을 즐기다가 외신 언론에 포착돼 알려졌다.

첫사랑부터 ‘불륜’
김정일의 화려한 연애史

김 씨 일가 2세대 김정일의 여성 편력은 아버지 김 주석을 능가했다. 김정일을 위한 수십 명의 여성들로 구성된 기쁨조가 항상 대기하고 있어 김정일이 몇 명과 사랑을 속삭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김정일의 자녀도 마찬가지다. 현재 3남4녀로 알려졌지만 사생아까지 포함하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정일의 첫 번째 부인은 배우 성혜림이다. 김정일과의 사랑을 키워나갈 무렵 성혜림은 아이까지 있는 유부녀였다. 그러나 그녀의 결혼사실은 김정일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김일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1969년부터 성혜림과의 비밀 동거에 들어갔다. 두 사람 사이에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태어났지만 김일성은 성혜림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결국 성혜림은 김정일의 사랑이 식은 후 북한 밖으로 내쫓겼다. 그리고 2002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김정일의 두 번째 부인 김영숙은 김일성 집무실 전화교환수 출신으로 김일성이 직접 며느리로 선택한 사람이다. 공식적으로는 김정일의 유일한 아내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버지의 강요로 인한 결혼을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인지 김영숙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 고영희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교포 출신이며 1970년대 예술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했다. 그러다 공연조로 뽑혀 연회에 참석했다가 김정일의 눈에 띄어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이후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고 그때 태어난 아들이 바로 김정은이다. 김정일의 사랑을 받던 고영희는 유방암으로 치료를 받다가 2004년 사망했다.

네 번째 부인 김옥은 평양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음악단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김정일의 비밀 파티에서 인연이 시작됐고 그 뒤 김옥은 김정일의 최측근이 됐다. 두 사람의 관계는 고영희가 살아 있을 무렵부터 시작됐지만 두 여자는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희가 죽기 전 김옥에게 자식들을 부탁할 정도였다. 그 뒤 김옥은 김정일이 죽는 순간까지 그 옆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1966년 결혼식을 올린 첫 번째 부인 홍일천이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퍼스트레이디 리설주와
내연녀 이여심·서은향

3세대 김정은의 옆자리는 퍼스트레이드 리설주가 지키고 있다. 모란봉중창단 단원으로 활동했던 리설주는 2011년부터 김정은과 교제를 시작했고 김정일 사후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2012년 7월 공식행사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면서 김정은의 정식 부인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예술단원 9명이 공개처형된 이유가 리설주를 둘러싼 성추문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그의 숙청 의혹이 제기됐지만 다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리설주와의 결혼 전 김정은에게 3명의 여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은의 첫 번째 여자는 가수 현송월이다. 김정은과 현송월은 2000년 초반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당시 현송월에게 애인이 있었지만 김정은이 끈질기게 구애를 해 결국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요구로 두 사람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 헤어졌을뿐 현송월이 결혼한 후에도 두 사람의 만남은 계속됐다. 현송월은 지난해 총살 당했다고 알려졌지만 지난 5월 공식석상에 대좌 군복을 입고 나타나면서 소문을 무마시켰다.

김정은의 두 번째 여자는 이여심이다. 이여심은 리설주와 같은 은하수관현악단 소속 피아니스트다. 국내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여심과의 결혼을 원했지만 김정일의 강력한 반대로 결국 리설주와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의 만남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의 세 번째 여자는 은하수관혁악단의 배우 서은향이다. 김정은은 서은향의 외모에 빠졌지만 결혼상대로는 리설주를 선택했다.
그리고 김정은의 여성편력은 현재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