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삼 육필수기 ‘나의 국정원 체험기’ 25

연예계 대대적 사정작업은 안기부-청와대 합작품

2008-11-18     김기삼  
지난 95년 초 연예계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작업이 있었다. 표면적인 명분은 연예계에 만연한 부패를 일소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국민들의 비판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호도책이었다.

요즘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대한민국의 연예계는 향락과 한탕주의가 판치는 복마전이었다. 어느 영화 선전 문구에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던 지 그 이상을 볼 것"이란 표현이 있었는데 대한민국의 연예계가 바로 그 짝이었다.

온갖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 상상할 수 없는 일까지 다 벌어지는 요지경이 대한민국의 연예계였다. 몇 년 전 시중에 누구는 손만 들면 된다 해서 ‘택시’라고 불리고 또 누구는 줄만 서면된다 해서 ‘버스’라고 불린다는 등 말들이 돌았다.

그 중의 한 명은 청순한 이미지로 인기 있던 배우였는데 그 후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기도 했다. 그녀는 요즘 다시 방송에서 재기를 도모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른 한 명은 외국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기도 하고 요즘도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몇 년 전에 소위 『연예계 X 파일』이란 것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 어느 중견 연예인이 봉사 후에 “별거 없죠?"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코멘트를 했다 해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X파일이란 걸 읽어 보니 내가 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연예계는 어쩌면 영원히 구제가 불능한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연예계 사정은 검찰이 수사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은 청와대의 민 모 비서관이 총대를 멨다.


연예인은 ‘택시’이자 ‘버스’

안기부 방송과가 민 비서관에게 측면에서 정보 지원을 좀 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막상 연예계 내부를 들춰 보니 악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돈과 섹스와 마약이 미쳐 돌아가는 난장판이었다.

당시엔 “OO아 차 바꿀 때 되지 않았니?"라는 말이 유행했다. 인기 연예인의 하룻밤 화대가 차 한대 값이라는 얘기였다. 재미있는 현상은 청순한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일수록 뒷말이 더 풍성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알고 느끼고 있는 이미지는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게 조작된 것이었다.

물론 이미지를 조작하기 위한 메커니즘과 커넥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주요한 부분이 촌지와 뇌물과 로비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계 중에 유독 연예계나 스포츠계 기자들이 부수입이 가장 짭짤하다고 알려져 있는 이유도 아마 그런 데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연예계는 가십거리가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당시 주말 연속극에 갓 등장한 까만 용모의 눈이 큰 여자 연예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기까지 과정을 들어보니 그야말로 인생역정이라 할 만 했다.

그녀는 요즘 코미디 프로로 전향하여 활동하고 있는 모양이다. 언젠가는 미모의 모 탤런트 모녀가 모 재벌 3세를 엮으려고 공항에서부터 입체적인 작전을 구사하는 것이 안테나에 잡히기도 했다.

최근 그녀는 그 재벌 3세와 이혼하고 다시 텔레비전에 복귀한 것 같다. 내가 연예계를 들여다보고 놀라웠던 점은 엄마가 직접 매니저를 하는 연예인일수록 사생활이 더욱 문란했다는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연예계는 엄마가 자기 딸을 매춘으로 내모는, 믿기 어려운 비정한 세계였다. 육감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모 연예인이 특히 그렇다는 수군거림이 있었다. 연예계의 3대 뚜쟁이가 누구누구라느니 하는 소문도 대체로 확인되었다.

PD와 연예인들 간 몸상납과 PD와 기획사 간 ‘잃어주기 포커’도 대체로 사실로 확인되었다. 유명 시나리오 여 작가와 그녀의 대학동창이며 친구였던 모 여 탤런트가 배역장사를 하는 사실도 거의 확인되었다.

당시 어느 음악방송 유명 DJ는 기네스북의 연속 방송출연 기록을 하루하루 갱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잠적해 버렸다. 검찰이 자신에 대해 수사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 DJ는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에서 신곡을 소개해 주는 대가로 곡당 2~300 만원 가량의 뇌물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몇 달간 진행된 검찰의 수사도 결국 용두사미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수사에 불려 나온 연예인들의 진술의 신빙성도 문제이거니와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범죄성을 입증한 물증을 잡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정권으로서도 언론에 한바탕 보도했기 때문에 내심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민정권에서 행해진 연예계 사정이라는 클레식한 레퍼토리는 지난 2002년 국민의 정부에서도 그대로 재현된 바 있다.

시작한 동기도 풀빵처럼 똑 같았고 진행과정과 결말도 대략 그저 그렇게 비슷하게 났다.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는가 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방송계 사정 작업은 연예계 전반이 아니라 방송PD들만 따로 골라 수사하고 있는 점에서 이전과는 약간 다른 성격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국정원과 연예계가 관계되는 얘기를 하나만 더 소개하겠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소위, ‘O 양’에 대한 얘기다.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들은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대충 이렇다. 국정원이 이 사건에 개입한 사연은 좀 우스꽝스럽다. 비디오에서 주연으로 등장하는, 종마처럼 잘 빠진 남자 배우 H씨는 마약 중독자였다.


O양의 비디오와 이종찬 원장

그는 O 양이 뜨기 전 매니저 겸 애인이었는데 훗날을 대비하여 문제의 비디오를 찍어 두었다. 그는 O양과 헤어진 후 돈이 궁해지자, 이 비디오를 들고 한국의 모 대형교회 당회장의 아들인 J씨를 협박했다.

당시에는 O양이 J씨의 애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협박을 당한 J씨는 처음 한 두 차례는 돈을 줄 수 밖에 없었지만 계속된 협박에는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

이즈음 이종찬 원장은 J씨가 운영하는 모 일간지를 담당하는 수집관에게 이 비디오의 원본을 입수하라고 지시했다. 이 원장과 J씨의 부친인 당회장과는 평소 돈독한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모 일간지의 담당 수집관은 내가 신문과에서 부임했을 때 행정관이었던 윤 모 선배였다.

윤 수집관이 비디오 원본을 입수하긴 했지만 이때에는 이미 유포를 막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 대충 그렇고 그런 스토리였다.

지난 2005년 필자가 미림팀의 존재를 제보한 후 우연하게도 유독 이 일간지가 전직 직원으로서의 필자의 도덕성에 대해 문제를 삼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