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참극’ 보상 공방 제2라운드

“똑같은 피해자인데 찬밥 취급, 말도 안 돼!”

2008-11-04     이수영 기자

6명의 사망자와 7명의 부상자를 낸 서울 논현동 D고시원 방화 참사 사건과 관련, 최근 한국인 희생자 및 부상자 가족들이 대책 위원회를 마련해 억울한 심정을 호소했다. 이들은 “사망자 한사람 앞에 3천만원 이상을 보상금으로 쥔 중국동포들에 밀려 한국인 희생자들은 언론의 주목조차 받지 못했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복부와 양 손목을 심하게 다쳐 치료도중 숨진 고(故) 김양선(49·여)씨의 동생 김양인(45·여)씨는 “단순히 장례식을 먼저 치렀다는 이유로 이렇다 할 보상을 받지 못한데다 그나마도 확답이 없다. 각종 기부금과 단체 성금이 중국동포들에게 먼저 돌아가는 바람에 나머지 가족들은 엄청난 소외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고시원 참사’가 벌어진 지 일주일여 만인 지난 10월 28일 밤 9시경. 서울 동교동 모 식당에 모인 피해자 가족들은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번 사건으로 여동생(고 서진·22)을 잃은 서성철(24)씨를 주축으로 모인 한국인 피해자 가족들은 허술한 보상절차와 잠적한 고시원 주인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중국동포 먼저 주고 남는 돈 가지라고?”

가족대표로 나선 서씨는 김해성 목사가 위원장으로 발족한 ‘논현동 고시원 참사 대책위원회’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그쪽(대책위원회)에 물어보니 중국 동포들에게 사망자 1인당 3천만원씩 먼저 돌아가고 한국인 피해자에게는 나중에 남은 모금액을 나눠 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며 “대꾸조차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생존자 김대영(29)씨의 어머니 이정임(51)씨는 “3천만원씩 손에 쥐는 중국동포들에 비해 한국인 피해자들의 목숨은 개 값만도 못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교회단체나 언론들이 모두 ‘눈 가리고 아웅’한다. 당장 살아남은 부상자들은 하루에 수십만원씩 불어나는 병원비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중국동포들보다 한국인 피해자가 더 많은 보상을 받은 줄 알지만 그 반대다”라며 “마취에서 깨어난 아들이 ‘당장 갈 곳이 없다’고 우는 모습에 가슴이 찢어졌다”고 말했다. 10월 31일 현재 한국인 피해자들이 받은 보상·위로금은 평균 500만원 정도. 서울 모 교회에서 직접 지원에 나선 고 민대자(57·여)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유족들은 각각 700만원의 위로금을 받았다.

고 김양선, 서진씨의 경우 법무부가 지원하는 범죄피해자구조법에 의해 지원되는 사망자 구조금 1천만원 가운데 200만원만 먼저 지급됐고 강남구청 사회복지과에서 지원한 500만원이 유족 계좌로 입금됐다.

가장 먼저 고시원을 탈출한 부상자 장종환(29)씨는 구청을 통해 300만원의 위로금과 한국교회봉사단 등 기독교 단체 명의의 성금 100만원을 받았다. 1주일 치 병원비만 700여만원에 달할 만큼 부상정도가 심각한 김대영씨 역시 300만원의 구청 위로금과 기독교 단체로부터 200만원을 받는데 그쳤다.

중국 동포들이 1500여만원에 가까운 목돈을 최근 한꺼번에 수령한 것에 반해 한국인 피해자들은 적은 액수의 보상금을 ‘찔끔찔끔’ 받은 셈이다.

이 같은 한국인 피해가족들의 원성에 고시원 참사로 희생된 중국동포 피해자들의 모금 활동을 진두지휘한 ‘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 김해성 목사는 “오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목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내국인의 경우 법무부에서 지원하는 ‘범죄피해자구조법’에 따라 최고 1천만원까지의 보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중국동포에 경우 이런 법적 구조 장치가 전혀 없어 부득이 모금 활동을 전개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한 ‘한국교회봉사단’ 역시 같은 입장이다. 봉사단 전혜선 목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단체 내부적으로 모금활동을 통해 약 1억원의 기금을 출연해 모든 피해자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신경 썼다”고 밝혔다.

전 목사는 “법무부를 통해 피해구조를 받을 수 있는 내국인들과 달리 중국 동포들은 장례비용은 물론 나머지 가족들의 체류비용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상황이 너무 딱해 모금활동을 시작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금액이 모였다”며 “원래 기획했던 대로 중국동포 유족들에게 2000만원을 전달했고 한국인 피해자들에게도 유족은 500만원, 부상자는 100~200만원을 각각 지급했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중국동포 피해자들이 수령한 위로금과 한국인 피해자들 사이에 절대적인 보상 액수는 크게 차이가 없다며 형평성 운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동포 유족들은 모금활동을 통해 모인 2000만원과 강남구청이 제공한 500만원, 대검찰청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300만원, 개인 후원금 200만원 등 모두 3000만원 상당의 보상금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피해자 소외? 오해다”

이와 비교해 한국인 사망 피해자들은 범죄피해자구조법에 명시된 사망 보상금 1000만원과 강남구청이 제공한 500만원, 한국교회봉사단이 출연한 500만원 등 약 2000만원 정도를 받게 된다. 여기서 중국동포 유족들의 한국 체류비와 비행기 표 값 등을 고려하면 양쪽 피해자들 사이 형평성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인 피해 가족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피해가족 모임 총무를 맡고 있는 김양인씨는 “우리라고 여유가 있어 장례를 먼저 치른 게 아니다. 돈 때문에 고시원을 전전하던 사람들 사정이야 중국이고 한국이고 빤한 게 아니냐”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또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핑계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사건 피해자가 오로지 중국동포 뿐인 듯한 언론과 기관들의 무관심이 마음 아플 뿐이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