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김기삼 육필수기 '나의 국정원 체험기' 22
문민정부 무능력과 판단착오 DJ·노무현 좌파정권 10년 불러
2008-10-28 김기삼
김현철의 국정농단은 문민정권의 몰락을 재촉했을 뿐만 아니라 정권을 재창출하는데 실패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경제적으로 국가부도 사태가 났고 정치적으로도 국정파탄 사태가 터졌다.
언젠가 정권 초기에 김영삼 대통령은 후계자 문제를 언급하면서 “깜짝 놀랄 인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이 ‘깜짝 놀랄 인사’라는 사람은 아마 이인제씨를 지칭한 듯 했다. 이때부터 경복고 세력 사이에서는 이인제 씨를 후계자로 미는 분위기가 있었다.
같은 경복고 출신 중에서도 김덕룡씨나 이한동씨는 일찌감치 대상에서 제외되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경복고 출신 후계자에 집착하다 보니 경기고 출신이었던 이회창씨를 배제하고 경원시 했다는 점이었다.
경복고 출신들은 마치 자신들이 “온정을 베풀어 이회창 씨를 감사원장으로 영입하고 국무총리까지 시켜줬다"는 식으로 행동했다. 이회창씨가 총리의 헌법상 권한을 강조하는 등 깐깐하게 나오자 견제하는 듯 하더니 기어이 낙마 시키고 말았다.
YS가 언급한 깜짝 놀랄 후계자는?
그 후 이들은 이회창씨가 신한국당의 총재가 되고 심지어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고 난 후에도 이회창씨에 대한 견제를 풀지 않았다. 아마 이회창씨의 인간됨이나 성향으로 볼 때 ‘칼을 거꾸로 들이댈 것’이라고 판단한 듯 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이회창 후보와 끝내 갈라서는 바람에 김대중씨에게 정권이 넘어 갔다. 김영삼 측으로서는 ‘김대중에게 정권이 넘어 가는 것이 퇴임 후 안전을 보장받는 데 더 이로울 것이다’는 판단했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김영삼 정권의 가장 큰 실책이었고 비난 받아 마땅한 부분이라고 판단한다.
나는 짧은 신문과 생활과 대정실 보좌원으로 근무하면서 정보기관과 언론간의 관계에 대해 참 많이도 보고 들었다. 내가 대정실에 근무하던 94년도에도 이미 정권과 언론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당시 김영삼 정권도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했었다. 언론사 사정이라는 칼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기는 했지만 직접 칼을 들이대지는 않았다. 이에 비해, 김대중 정권은 지난 1999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국세청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언론을 탄압한 적이 있다.
한번은 오정소 실장이 조선일보 김철 부장을 초청하여 대정실 직원들에게 언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강연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김철 부장은 “언론은 무조건 조져야 한다. 주먹으로 대하는 게 제일이다."고 주장했다. 나는 ‘자신이 언론인이면서 어떻게 저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민정권 시절엔 조선일보의 힘이 막강했다. 지금처럼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일간지들을 죽이기 위해 사방에서 합동작전을 벌이기 이전이었다. 당시엔 조선일보 사주가 소위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조선일보는 텔레비전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는데 천칭의 한 쪽에 여타 신문을 쌓아 놓고는 다른 쪽에다 조선일보를 얹으면, 천칭이 조선일보 쪽으로 기울어지는 광고였다. 광고 내용처럼 조선일보는 다른 모든 언론을 합친 것만큼 영향력이 있었다.
요즘도 마찬가지인 걸로 보여 지지만 당시에도 신문들은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세계, 국민 같은 신문들은 매년 수백억 원씩 적자를 내고 있었다. 그 때도 한국일보는 부도 직전에서 간당간당 했다.
경향신문 사주였던 김승연 회장은 “한화 야구단보다 못한 놈들"이라며 신문사 관계자들을 질책하던 시절이었다. 소위 국민 주주 신문이라고 하던 한겨레신문도 만성 적자에 허덕거렸다. 그런 시절에, 조선일보만은 홀로 엄청난 흑자를 구가했다. 언론계 전체가 내는 세금보다 조선일보 한 회사가 내는 세금이 더 많을 정도였다. “조선 1면에 광고 내는 것이 골프장에 부킹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하던 시절이었다.
조선일보는 회사만 잘 나간 게 아니라 소속 기자들도 잘 나갔다. 언론계 전체에서 조선일보 기자들의 보수나 대우가 가장 나은 편이었다. 다른 매체에서 취재력을 인정받으면 조선일보로 옮겨가는 게 일종의 코스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문민정권의 탄생시킨 주역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정권을 가르치려 들 때가 많았다.
이건희 회장도 탐낸 신문기자는?
조선일보 기자들 중에 소위 ‘YS 장학생’들이 있었다. 김모 기자와 이모 기자 같은 사람들이었다. 첩보에 의하면 어느 날 조선일보 고위층에서 이 장학생들에게 “정권에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장학생들은 “그럴 수 없다"며 “차라리 사표를 쓰겠다"고 버텼다고 한다. 그러자 경쟁사인 중앙일보가 이 기자들을 스카우트 해 갔다.
첩보에 의하면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직접 이 기자들을 스카우트 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중앙일보는 조선일보를 따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삼성이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한 때 판매 경쟁이 지나쳐 지방의 배포 지국에서 칼부림 사건이 나기도 했다. 이들 기자의 스카우트도 이러한 경쟁의 산물이었다.
그 후 이모 기자는 중앙일보의 정치부장이 되었다가 모 인터넷 신문의 대표가 되더니 지난 대선 때에는 모 후보의 진영에서 일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