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 ‘고시원 악마’에 여동생 잃은 축구선수 서성철
“범인 정씨, 이 고통 반드시 되갚아 주마!”
2008-10-28 이수영 기자
“그 인간, 형량 줄여서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받은 이 고통 고스란히 돌려줄 테니까.”
지난 10월 20일 서울 강남 논현동 D고시원에서 정상진(31)씨가 저지른 ‘묻지마 살상’의 참극으로 목숨을 잃은 여섯 명의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인 고(故) 서진(21·여)씨. 고인은 희생자 가운데 가장 어렸고 중국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이었다. 살인마의 칼날에 목과 가슴을 7번이나 찔려 참혹하게 죽어간 여동생을 떠올린 오빠 서성철(23·축구선수)씨는 피의자 정씨의 이름이 나오자 굳은 목소리로 복수를 다짐했다. 평생 축구밖에 모르던 순박한 청년의 눈빛은 비통함과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 미드필더 출신의 서씨는 브라질 리그까지 경험한 촉망받는 선수였다. 하지만 지난해 부상과 부진의 늪을 견디지 못해 팀에서 방출된 그는 여동생에게 일어난 불행이 모두 자신 탓이라며 한스러운 눈물을 흘렸다.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한탄하듯,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 20일 고인의 발인을 앞둔 빈소에서 서씨를 만났다. 꽃 같은 여동생을 살인마의 손에 빼앗긴 스물세 살 청년의 절규는 절절했다.
“마음이 너무 아픈 게… 우리 진이가 눈을 못 감고 죽었어요. 눈이라도 감겨주려고 했는데 (사후경직 때문에)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에 동생 얼굴 쓰다듬으면서 ‘미안해. 사랑한다’고 말한 게 전부입니다.”
“눈도 못 감은 우리 진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10여명의 친인척만이 자리를 지켜 한산한 모습이었다. 서씨는 갑작스런 비보에 안부를 묻자 “지금은 많이 무덤덤해졌다”고 말했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는 듯했다.
서씨가 동생의 사고 소식을 접한 건 사건이 벌어진 지 12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청천벽력 같은 담당형사의 말에 그는 ‘장난하지 말라’며 화부터 냈다고 했다.
“외출 중이었는데 저녁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어요. 처음엔 진이가 사고를 당했다고만 하셔서 ‘얼마나 다쳤어? 어디 꿰매야 해?’라고 물었죠. 급히 집에 돌아왔는데 메모가 하나 있더라고요. 강남경찰서 형사인데 전화 좀 달라고.”
불길한 기분이 들었던 건 그때부터였다. 혹시 동생이 폭행이라도 당했나 싶어 서둘러 담당형사에게 전화를 건 서씨.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소식에 그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서진이라는 아이 오빠라고 했더니 형사님이 말을 더듬으시더라고요. 그러더니 ‘동생분이 사망자 명단에 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장난 같았어요. ‘다시 한번 확인해보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죠.”
그러나 아버지에게 걸려온 두 번째 전화에 서씨는 주저앉고 말았다. “아들, 미안하다. 병원으로 오렴…” 하염없이 울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건 아버지는 이미 딸의 처참한 주검을 확인한 뒤였다. 하지만 서씨는 끝내 영안실에 안치된 동생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회칼에 난도질당한 동생을 보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가 정말 나쁜 오빠에요. 동생이 그렇게 누워있는데 겁이 나서 처음엔 만질 수가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하나밖에 없는 동생, 지금 안보면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는 친지들의 설득에 그는 발인을 하루 앞둔 지난달 21일 입관실에서 동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싸늘하게 식은 여동생을 보내며 서씨는 하염없이 울었다고 했다.
서성철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5년 브라질로 축구유학을 떠난 조기유학파다. 현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브라질 2부리그에서도 활약했던 그는 2006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프로선수로 데뷔했다. 줄곧 2군에서 뛰었지만 입단하던 해 인천의 2군 리그 우승을 이끌 만큼 성실했다.
오래 전 어머니와 이혼하고 혼자서 남매를 뒷바라지한 아버지가 어깨를 다쳐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부터 서씨가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다. 수입은 일반기업 고졸 초봉 수준에 불과했지만 한 푼도 쓰지 않고 중국에서 유학중이던 여동생 등록금을 댈 만큼 속 깊은 오빠였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문제가 생겼다. 서씨가 소속팀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것.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그는 더 이상 동생 뒷바라지를 해줄 수 없었다. 그런 사정을 빤히 아는 동생은 휴학을 했고 지난 8월 귀국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오빠에게 짐 될까’ 몰래 고시원 생활
서씨도 어떻게든 팀에 복귀하기 위해 울산, 전남 등 지방 프로팀을 돌며 부지런히 입단테스트를 받았다. 자신이 재기해야 가족들을 돌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절박했지만 결과는 낙관할 수 없었다.
여동생이 경기도 시흥에 있는 고모 집에서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다 교통비라도 아낀다며 고시원으로 들어간 게 불과 한 달 전. 그나마 오빠가 걱정할까봐 동생은 이를 숨겼고 결국 참극을 피하지 못했다.
‘팀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내가 더 열심히 뛰었다면.’ 서씨는 동생에게 일어난 비극이 자신 탓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제가 오빠 노릇을 정말 잘못한 거 같아요. 고모님 댁에 있다는 말만 믿었는데… 그냥 평범한 아르바이트라기에 전 ‘카페 같은데서 일하나보다’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한식당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서빙을 했더라고요.”
서씨의 한은 끝이 없었다. 브라질 유학 따위 포기하고 유난히 총명했던 동생을 위해 양보할 걸. ‘만년2군’이었지만 동생에게 단 한경기라도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보여줄 걸. 12년 동안 축구를 했지만 서씨는 동생을 단 한번도 경기장에 초대하지 못한 채 영영 이별을 고하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니…”
“마지막으로 꼭 안아줬는데…저는 몰랐어요. 사람 몸이 그렇게 차가운지. 제 동생 몸이 너무 차가워요. 믿을 수 없을 만큼 차요. 정말 이 고통 똑같이 받아봐야 해요, 그 사람(정씨)은.”
이별하며 어루만진 동생의 몸은 소름끼칠 만큼 차가웠다고 했다. 눈조차 감지 못한 채 허무하게 가버린 여동생은 12년 동안 죽어라 운동만 해 온 순박한 청년에게 날카로운 복수심을 심었다. 처음 덤덤하다고 말했던 서씨의 눈에서 또 다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6명을 죽이고 7명에게 중상을 입히고서도 ‘우발적이었다’며 명확한 범행동기를 밝히지 않은 정씨. 일각에서는 그가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하고서도 형량을 줄이기 위해 정신이상과 우발적 범행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서럽게 울던 서씨는 범인의 이름이 나오자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처음부터 정씨의 사형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범인이 어떻게든 형량을 줄여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씨는 억울하게 죽어간 동생의 복수를 직접 하고 싶다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제발 (정씨가) 가벼운 처벌 받아서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니, 제가 변호사를 사든 어떻게 해서라도 빼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 부모 찾아가서 똑같이 되돌려줄 겁니다. 네, 복수요. 제가 꼭 되갚아줄 거예요.”
피어보지도 못한 동생의 꿈. 서씨는 끔찍한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서씨는 피의자 정씨나 그의 부모가 이 기사를 꼭 읽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 동생 이제 21살이에요. 연약한 여자아이고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많은 애였어요. 그런데 어둠 속에서 힘 한번 못써보고 그렇게 됐어요. 정말 TV라면 ‘정씨, 당장 이리 나와!’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어요. 제발 이 기사를 그 인간이나 그 부모가 봤으면 좋겠어요.”
한편 고인의 유해는 지난 10월 22일 오후 벽제 화장장으로 옮겨져 납골묘에 안치됐다. ‘미련 남지 않게 강에 뿌리자’는 친지들의 만류를 뿌리친 서씨의 결정이었다.
끝까지 축구선수로 남아 보란 듯이 성공해 복수하겠다는 서씨. 그는 새 팀이 결정되면 가장 먼저 유니폼을 들고 동생을 찾아갈 생각이다.
“제가 못난 오빠라 해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요. 납골묘에 두면 오랫동안 돌봐줄 수 있잖아요. 그런데요, 기자님… 다른 건 모르겠고 시간을 조금만 되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동생만 살리면 저 축구 같은 거 다신 못해도 상관없거든요.”
#“죄송하다, 할 말 없다” 살인마의 ‘속 빈’ 사죄
지구멸망을 꿈꿀 만큼 주변 사람들을 미워한 ‘고시원 살인마’ 정상진. 그럼에도 정씨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처음 진술을 번복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피해망상에 빠져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짓을 정당화 시키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죄송하다, 할 말이 없다”는 그의 사과가 진심 없는 ‘속 빈 사죄’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달 22일 정씨의 고시원 방에서 그의 일기장을 확보해 공개했다. 2005년부터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일기장은 스프링이 달린 공책으로 검정과 빨강, 청색 볼펜으로 막연한 공상과 신변비관, 범행 각오 등을 담은 내용이 빼곡하게 담겨있었다.
여기엔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부터 잘못됐다. 몸과 두뇌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사람들이 싫다. 이제는 마무리할 때가 됐다’ 등의 자기비하와 범행실행을 결심하는 듯한 문구가 수없이 발견됐다.
정씨는 또 ‘이제는 내 마지막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필사의 항쟁뿐’ ‘신이 내게 두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난 복권 100억원 당첨보다 이 지구를 우주의 먼지로 폭파시켜달라고 할 것’이라며 세상에 대한 강한 분노를 강하게 표출했다. 순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정씨의 말과 달리 적어도 일기를 쓴 2005년부터 이번 범죄를 염두에 뒀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경찰은 정씨 내면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담은 기록이 발견됨에 따라 이를 정밀 분석하면 범행 동기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에게 예전부터 강한 범행 의지를 품고 발전시켜온 것으로 파악된다”며 “고시원 투숙자들을 비롯해 우리 사회가 ‘시한폭탄’과 함께 살아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씨는 경찰 조사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2005년부터 살인을 준비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고시원비와 휴대전화 요금, 벌금 등을 낼 돈이 없어 ‘이렇게 살면 뭐하냐’라는 생각에 범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