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제 2탄 국정원 북풍공작사건 진실

북풍사건 주인공 윤홍준씨 “모든 국민들 좌익 세력 실체 알아야”

2008-10-21     윤지환 기자

<일요서울>은 지난 호(753호 참고)를 통해 97년 12월 대선정국을 뒤흔들었던 국정원 북풍공작사건에 대한 기사 제1탄을 보도한 적 있다. 이어 2탄에선 북풍공작사건의 핵심인물인 윤홍준씨와 국정원 직원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사건의 진실에 대해 들어봤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 영주권자 윤씨는 건강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북풍사건에 휘말려 1년 6개월간 수감생활을 하고 난 이후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 당뇨와 암 등 각종 질병이 그의 온몸을 좀먹었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고 윤씨는 말한다. 물론 지금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북풍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악령은 윤씨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다.

윤씨는 그동안 건강악화로 외부와의 접촉을 꺼려왔다. <일요서울>은 윤씨가 최근 건강이 호전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와 연락을 시도했다.

중간 연락과정을 거쳐 어렵게 윤씨와 선이 닿을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윤씨는 매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지난날 죄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일로 수감생활을 한 탓인 듯 했다.

윤씨와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 형기를 마친 후엔 나로 인해 피해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것 보상해 주는데 주로 시간을 보냈다. 같이 사업을 했던 사업 파트너들은 내가 구속되는 바람에 피해를 많이 봤다. 그런 것들을 처리했다. 그러다 감옥에서 얻은 당뇨병이 악화되고 암까지 겹쳐 최근까지 병 치료를 했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매일 불안에 떨었다. 그래서 정신과 치료도 장기간 받았다.

- 북풍사건으로 개인적인 피해가 막심했을 것 같다.
▲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다. 재산 날린 건 물론 건강까지 잃었다. 가장 난감했던 것은 형기를 마친 후 미국 영주권이 취소된 것이었다. 영주권자는 외국에서 6개월 이상 체류할 수 없는데, 감옥에서 1년 6개월을 살았으니 영주권이 박탈당하는 건 도리가 없었다. 장기간 한국에 머물면서 각고의 노력 끝에 스페셜 영주권을 받아 다시 미국으로 왔다.

- 북풍사건 전부터 국정원의 일을 도왔다고 들었다. 그 배경을 설명해 달라.
▲ 1994~ 95년 정도에 필리핀서 신문종이공장을 운영했다. 그때 나는 필리핀 정치권의 고위 인사들과 우연히 친분을 쌓게 됐다. 내가 그들을 한국에 초대하고 또 그들로부터 감사의 대접을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필리핀의 유명 한국인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북한인들이 날 찾아와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영문을 몰라 일단 거절했다. 내가 미국으로 가자 북한인들은 사람을 연결시켜 그곳에서도 나에게 접근해왔다. 그래서 그들과 한 번 두 번 만나게 됐는데 그러다 친북교포의 소개로 북한 고위인사의 자제도 캐나다서 만나게 됐다. 북한인들은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다며 중국으로 같이 가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고민 끝에 대공기관에 이 사실을 문의했고 이때부터 국정원과 연결돼 국정원 일을 도와주게 됐다.

- 북풍사건 직후 국정원을 협박해 수억 원의 돈을 뜯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사실인가.
▲ 그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조직이 어떤 조직이라고 감히 그럴 수 있나. 그러면 국정원이 가만있겠나. 뭘 모르는 기자들의 추측일 뿐이다. 뭔가 아는 기자라면 절대 그런 기사를 쓸 수 없다.

-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은 있나.
▲ 있다. 나는 국정원, 그러니까 당시 안기부의 일을 도우면서 사비를 적지 않게 썼다. 정보를 빼내기 위해 로비자금도 들어갔고 교통비, 체류비 등 모든 것을 내 돈으로 처리했다. 국정원에서 그런 걸 따로 줄 리가 없지 않나. 북풍사건 직후 국정원에서 그동안 내가 들인 사비를 일부 보상해 주는 차원에서 돈을 줬다. 그건 인지상정에서 이뤄진 일이다. 내가 바라지 않았지만 국정원이 알아서 해 줬다. 국정원과 나 사이에는 그런 신뢰가 형성돼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지금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 윤홍준씨가 한국 정치권 내 좌익세력에 대한 핵심정보와 그들 활동에 대한 여러 증거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 없다고 말할 순 없다. 그것에 대해선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다.

- 북풍사건의 진실을 뒷받침할 자료들도 가지고 있나.
▲ 있다. 언젠가는 이것을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언제쯤 공개할 생각인가.
▲ 나를 비롯한 북풍사건 관계자들 모두가 공정한 재심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판단되면 그때는 공개할 것이다. 아직은 정치적으로 안전한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 북풍사건과 관련 황장엽 위원장이 증언할 부분도 있나.
▲ 분명히 있다.

- 황 위원장이 북한을 비난하면서도 무언가 핵심적인 부분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 이런 말은 조심스럽지만 황 위원장의 아들 황경모씨가 아직 북한에 살아있다.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다거나 죽었다는 말들이 나돌지만 믿을만한 소스로부터 그가 확실히 살아있다는 정보를 접한 적 있다. 북한은 그를 죽일 수 없다. 황 위원장의 남한 활동을 제한하기 위한 볼모이기 때문이다. 황경모씨는 지금 평양에 살고 있다. 그는 과거 북경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 적 있다. 북한에서 시킨 것이다. 그때 황경모씨는 아버지에게 “남한에서 말조심 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 황경모씨는 수용소에서 허리를 많이 상했다. 그래서 평양에서 큰 수술을 받았다. 사람들은 안 믿겠지만 그때 수술 자금 2만 달러 정도를 내가 쥐어줬다.

- 황경모씨 전화는 평양에서 걸려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북경에서 건 것이 맞는가?
▲북경으로 안다.

- 김정일의 와병설이 나돌고 있다. 혹시 아는 바 있나.
▲ 프랑스에서 주기적으로 약이 공급되고 있고 유럽 최고 의료진들이 수시로 들어가 건강을 체크한다. 당뇨가 심해졌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지만 위독하다는 소식은 없다. 위독설은 지병악화에 따른 확대해석인 것 같다.

- 출소 이후 북한쪽 사람들과 접촉한 적 있나.
▲ 그건 나중에 상세히 밝히겠다. 한 가지 말하자면 2006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북경을 극비리에 방문해 화제가 된 적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의 중국방문은 동선이 철저히 베일에 싸여진 채 이루어졌다. 이때 나도 북경에 있었다. 내가 북경에 간 이유는 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김 위원장 도착 하루 전에 북경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베이징을 거쳐 바로 중국 광동성 심천지역을 방문했는데, 이유는 경제문제 때문이었다.

- 북풍사건 이후 남한 첩자라고 북한에 알려졌을 텐데 아직도 북한과 교류하고 있다는 말인가.
▲ 그에 대해 더는 밝히지 않겠다. 북에선 어렵게 만든 루트를 소중히 여기는 것 같다. 언젠가 세상이 바뀌면 더 많은 측면에서 나를 활용 할 수 있을 거라 계산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느낀다.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 다음호에 제3탄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