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케이블TV가 기가 막혀…

대기업 후광 업고 ‘막나가는 선정성’

2008-10-13     이수영 기자
알몸으로 뒹구는 남녀의 정사장면과 가슴을 훤히 드러낸 서양 미녀의 야릇한 눈빛. 수위 높은 포르노 필름이 아닌 TV 방송이다. 노골적인 성행위 현장과 헐벗은 여인들의 몸매가 얄팍한 모자이크 한 겹만을 두른 채 ‘케이블 프로그램’이라는 명목아래 브라운관을 수놓고 있다. 케이블 방송의 선정성 논란은 과거부터 있어왔지만 최근 CJ그룹과 SK 등 일부 대기업이 방송시장에 뛰어들면서 낯 뜨거운 선정성 경쟁이 한계수위를 넘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재벌그룹의 막강한 ‘머니파워’를 앞세운 이들 방송사들은 보다 자극적이고 ‘화끈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피 튀기는 생존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들 프로그램의 ‘막가는’ 제작 현황과 낯 뜨거운 케이블 프로그램의 폐해를 집중 조명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2008년도 심의의결 현황 내역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터넷 ‘야설’(야한소설)을 방불케 한다.

일례로 2008년 2월 8일 방송된 ‘tvN-치명적인 그녀’에서는 출세를 위해 가짜 학력과 섹스를 이용하는 한 여성을 묘사하면서 여주인공이 거래처 실력자들과 호텔과 차안 등지를 돌며 성관계를 맺는 내용을 방송했다. 하체는 이불로 가렸지만 배우들의 벗은 등을 고스란히 노출시킨 채였다.


적나라한 섹스신도 여과 없이 방송

같은 방송사 프로그램인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은 지난 2월 28일 방송분에서 남편이 해외에 나간 사이 아내가 내연남과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을 재연하며 CCTV에 촬영된 두 사람의 정사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해 내보냈다.

지난 3월 20일 방송된 ‘XTM-앙녀쟁투’는 모델 학원장이 패션쇼 참가를 미끼로 학생들을 속여 성관계를 맺거나 술에 취한 남녀 학원생이 모텔에서 잠자리를 갖는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방송하기도 했다.

역시 XTM에서 방영된 ‘신 데릴사위’의 지난 2월 16일 방영분에는 여성 출연자와의 결혼을 희망하는 6명의 남성들이 최종 사윗감으로 선택받기 위해 여러 테스트를 받는 중 정액을 채취해 정자 운동성 검사까지 받는 장면이 포함됐다.

‘스토리온-가족연애사2’는 지난 3월 24일 아파트 경비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 대학생이 여인들의 유혹에 빠져 이들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과 한 여대생이 성인 화상채팅에서 만난 대학동기와 성관계를 갖는 이야기를 방송해 물의를 빚었다.

지난 5월 4일 방송된 ‘ETN-남자사용설명서’는 남성을 ‘제품’이라 칭하며 ‘사용자’인 여성에게 여러 가지 상황에서의 제품사용법을 가르쳐 준다는 명목으로 방송이 진행됐다. “섹스 할 때 자세를 세 번 이상 바꾼 적이 있다” “남자는 한 가지만 크면 되는데 몸짱은 그게 작다고 들었다” 등의 출연자 말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 방통위의 제재대상이 됐다.

이렇듯 노골적인 성행위와 폭력장면을 묘사해 논란이 된 케이블 TV 방송 프로그램은 일부 대기업 소속 미디어 그룹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송훈석 의원(무소속)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케이블방송의 선정성 제재는 194건으로 48건에 불과한 지상파 방송보다 무려 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CJ그룹 계열의 CJ미디어와 오리온이 대주주인 ON미디어, SK의 미디어 자회사인 CU미디어 등 대기업 계열의 미디어 그룹이 운영하는 채널들이 ‘요주의 방송’으로 낙인찍혔다.

방통위의 방송심의제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들 재벌그룹이 운영하는 케이블 채널이 과도한 선정성을 이유로 권고 이상의 제재를 받은 건수는 129건으로 전체 제제건수(194건)의 66%에 달할 정도다.

대기업을 등에 업은 일부 방송사가 케이블 프로그램의 선정성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견이 나올만하다.

송훈석 의원은 이와 관련해 현 정부가 대기업의 방송진출을 사실상 전면 허용한 것이 방송의 공공성을 위협하는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송훈석 의원 “대기업 방송진출 위험수위”

송 의원은 “대기업 계열 미디어그룹의 방송선정성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지상파 진출을 허용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방송구조개편은 무조건 적인 산업화가 아니라 공공성에 목적을 둔 합리적인 산업화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 방송에 길들여진 거대 미디어그룹이 아무런 제재 없이 공중파 시장에 발을 들이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이들 그룹들은 유독 ‘성(性)적 코드’에 집착하는 걸까. 바로 수익성을 담보로 한 ‘돈 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케이블 시장에서 ‘대박’에 해당하는 2~3%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채널 CGV의 ‘색시몽’과 OCN의 ‘메디컬 기방 영화관’ 등은 수위 높은 베드신과 세련된 영상미를 무기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착한가슴’ 서영 등 케이블 스타를 줄줄이 배출한 이들 프로그램은 전작의 인기를 기반으로 후속편까지 제작될 만큼 방송사의 ‘효자종목’ 노릇을 톡톡히 했다. 상업기업을 배경으로 한 미디어 그룹들이 앞 다퉈 선정성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분간 케이블 채널들의 ‘낯 뜨거운 향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또 다른 ‘시청자 주권 침해’ 시비가 불거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