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 꿈꾸던 고교생 투신자살’충격
“피아노 레슨비 2개월 치 밀린 것 뿐 인데, 왜”
2008-09-30 이수영 기자
지난달 23일 오후 7시 50분 경, 충청북도 청주시 모충동의 한 6층짜리 빌라 앞. ‘쿵’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윤모(고1·17)군의 몸이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이 빌라에 사는 윤군이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자살을 기도한 것.
이를 목격한 동네 주민들에 의해 119 구급대가 출동했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은 윤군만이 아니었다. 구급대원들은 윤군의 집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는 40대 여인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윤군의 어머니 박모(40)씨였다.
피투성이가 된 박씨는 “아들이 갑자기 칼을 휘둘렀다”는 말을 남긴 뒤 정신을 잃었고 모자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박씨는 목숨을 건졌지만 윤군은 병원 도착 4시간여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고 말았다. 아들이 숨졌다는 소식을 들은 박씨는 충격에 그대로 말문이 막혀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가정불화가 참극 불렀나
경찰의 수사가 시작됐지만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어머니 박씨가 중상을 입은 만큼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상체와 팔 등을 십여 차례 찔린 박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심한 정신적 충격에 빠진 상태다.
일각에서는 어머니 윤씨가 계모이거나 심각한 가정불화로 이미 모자관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감정이 폭발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경찰도 이 같은 부분에 대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박씨는 아들과 피아노 학원 레슨비를 둘러싸고 말다툼을 벌였다. 2개월 치 밀린 학원비를 달라는 윤군과 박씨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분을 참지 못한 윤군이 부엌칼로 어머니를 수차례 찌른 뒤 빌라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윤군의 아버지(42)와 동생(7) 등 유가족들 진술에 따르면 윤군은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이들 가족의 생활도 궁핍함과는 거리에 멀었다. 단순히 밀린 학원비를 둘러싼 다툼이 비극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하기에 석연찮은 부분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팀 관계자는 윤군 가족이 재혼가정이 아닐뿐더러 아직까지 눈에 띄는 불화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보강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과정이라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다”고 전제한 뒤 “박씨는 윤군의 생모가 맞으며 가정불화가 있었다는 정황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목적으로 돈 필요했나
윤군 사건과 관련해 불거진 또 다른 의혹은 돈을 주지 않는 어머니에게 흉기를 휘두를 만큼 절박했다면 학원비 이외의 다른 용처가 있지 않았겠냐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 피해자로 협박을 당하는 등 급하게 돈이 필요한 상황에 몰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학원 레슨비가 2개월이나 밀려 있었고 이 사실을 박씨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추측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피아노 연주자를 꿈꾸던 윤군이 레슨을 받을 길이 끊기자 순간적으로 모친에게 분풀이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윤군이 평소에도 불같이 화를 내는 일이 간혹 있었다는 가족들의 증언은 이 같은 가설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가 십여 차례나 흉기를 휘둘렀음에도 어머니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데다 곧장 투신자살을 선택했다는 것 역시 이번 사건이 지극히 우발적으로 벌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어머니 박씨는 경찰조사에서 “아들과 학원비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던 중 갑자기 주방에서 흉기를 들고 나온 뒤 나를 찔렀다. 급히 방으로 도망쳤지만 아들이 쫓아왔고 여러 번 더 찌른 뒤 밖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윤군의 아버지와 동생은 현장에 없어 화를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범한 가정을 송두리째 박살 낸 사건의 실체는 드러날 것인가. ‘학원비’와 얽힌 모자의 다툼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만 남긴 채 희대의 ‘패륜사건’으로 낙인찍힐 위기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