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심판받는 법원

대법원 편법 수의계약 의혹 사실인가?

2008-09-26      기자
대법원에서 편법 수의계약 의혹이 터졌다. 올해 방만한 경영으로 감사원의 질타를 받은 이후 두 번째다. 최고 헌법 수호기관이란 대법원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 것이다. 이번에는 대법원의 퇴직 공무원들이 만든 업체가 대법원에서 발주한 1100억 원대의 사업을 거의 독점적으로 수행해 왔다는 내용이다. 지난 4월 감사원 지적에 대해 대법원은 관련자를 솜방망이 처벌하는 데 그쳤다. 대법원의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감사원은 올해 초 ‘감사결과 처분요구서’를 통해 대법원이 지난 2006-2007년 ‘사법업무 및 등기업무 전산화 과정’에서 당초 예산금액 보다 307억2200만원을 초과 집행했다고 밝혔다.

사업 추진과정에서 계약이 확정되기도 전에 특정업체가 사업을 미리 수행하도록 한 데다 제안요청서에 포함되지 않는 사업까지 하도록 해 금액이 크게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하도급 업체 임원은 법원 출신

이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직원은 계약 상대방인 민간업체가 부담하는 해외 출장도 다녀왔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은 대법원에 “이 사업을 부당 추진한 관련자들을 징계하고, 이 사업에 대한 계약을 조달청에 의뢰하는 등 계약질서 문란행위가 재발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관련자를 서면 경고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최근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이 대법원의 방만한 경영실태를 정면으로 치고 나왔다. 대법원의 관련자 조치가 법적으로 어긋나고, 대법원 전 직원들이 소속된 특정업체가 1100억 원대 사업을 독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박 의원은 18일 국회 법제사법위 질의를 통해 “대법원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1100억 원대의 사업을 L업체와 수의계약했으나 계약 전 이미 L업체가 관련 업무에 착수하는가 하면 여러 차례 계약이 변경되는 등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의원은 이어 “L업체의 한 하도급 업체 이사 6명 전원이 법원 행정처 전산직에서 퇴직한 공무원 출신으로 드러났고, 이 하도급 업체가 사실상 대법원 관련 업무를 독점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어 “법원 행정처는 L업체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일사천리로 계약을 변경, 총 9차례에 걸쳐 307억 원을 추가 집행하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집행해 왔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이 예산을 307억 원 초과 집행했다는 감사원의 올해 초 지적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박 의원은 또 대법원의 관련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조치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법원행정처가 감사원 징계요구를 권고사항으로 판단,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 소관이란 이유로 해당공무원들에게 서면 경고조치를 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박 의원은 “사법부를 행정부와 달리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고, 사법부의 경우도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여전히 헌법과 법률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면서 “법치주의 원칙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법원도 해명에 나섰다. 대법원은 “법원 전산시스템을 멈출 수 없어 사업을 계속 진행하게 했지만, 투명성,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경쟁입찰을 했고 사업 미확정이나 제도 미정비 등으로 계약이 지연되다 L사가 다시 선정되는 바람에 이미 진행해 온 사업내용을 계약에 포함, 제안 요청금액보다 계약금액이 초과된 것일 뿐 예산을 추가집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예산 낭비적 요소는 없었으나 계약 전에 사업을 수행하게 해 회계 규정을 위반한 점이 인정돼 관련 직원을 서면 경고하는 한편 올해부터는 전면 경쟁입찰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법사위원들 감사원 고발 한목소리

특정 업체가 하도급을 독점했다는 의혹에 대해 대법원은 “1998년 정부 구조조정 때 퇴직한 전산공무원들이 2000년에 설립한 업체가 아웃소싱 개념으로 주 사업자 또는 하도급 업자로서 업무를 수행해 오다 규모를 확대해 L사의 주요 업무에 대해 하도급 업체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어 “수주업체가 비용 효과를 대비해 선정하는 하도급 문제에 법원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은 또 지난해부터 조달청 입찰을 통해 다른 사업자로 교체되기도 했고, 올해 들어서는 이 하도급 업체와 계약한 사례가 없는 등 외주업체에 대한 일체의 특혜나 차별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해명에 대해 여야 법사위원들은 19일 전체회의에서 대법원의 수의계약 의혹과 관련, 감사원의 고발을 촉구했다.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 주광덕 의원은 “사안이 명백한 만큼 마땅히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도 “지금이라도 고발해야 한다”며 동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