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늘 하던 대로 기술…감정인에게만 문책하다니”
#29.강진 청자박물관 감정서②
2014-12-01 조아라 기자
지난 40여년 수많은 감정 평가서를 써줬다. 강진청자박물관에서 간청해 써준 한 장의 감정평가서의 대가는 혹독했다. 2009년 10월 5일 국정감사에서 상주출신 모 국회의원이 발언한 내용과 같은 달 21일 배포된 보도자료는 본인을 두고 부도덕한 학자, 부정매매 주동자, 부정매매 사단 사단장이라 했다. 더 나아가 본인에 대해 본격적 조사를 해 수십 년간의 여죄를 낱낱이 밝혀 엄격하게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강진에서 산 주전자는 대한민국 최고 감정기관인 고미술협회(고미술상인협회)에서 감정한 결과 1억 원도 안 되는 유물이라는 감정평가서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본인을 비롯한 여러 명의 학자, 감정인에게 부도덕한 감정인이라고 큰 모멸감을 안겨줬다. 본인은 높고 높으신 권좌에 계신 분의 말씀이기에 일언반구 항변도 못했다. 잘못하면 무슨 더 큰 수모와 곤욕을 볼지 몰라 무섭고 두려워 비열하게도 지금까지 고개 숙이고 엎드려 목숨만 부지하고 있다.
모 국회의원의 국감발언과 보도자료 내용이 전국의 인터넷 신문에 오르내렸다. 또 강진 청자박물관과 상주출신 모 국회의원간의 의견다툼으로 수많은 공방이 문제화돼 배포됐다. 그때마다 상주출신 모 국회의원 측에선 본인을 부도덕하고 부정매매 사단장이라고 하는 문구가 수백 번도 더 나왔다.
강진 청자 감정평가서도 늘 하던 대로 똑같이 기술했다. 본인은 강진 청자의 평가액을 9억 5천만 원이라고 기술했다. 그랬더니 강진 청자박물관장이 얼굴이 하얗게 되면서 “선생님 파는 분이 꼭 10억 원을 내야 한다고 해 양측에서 합의했는데 선생님이 9억 5천만 원이라고 써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재고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래서 “국고를 아끼싶시오. 아무리 그래도 5천만 원 안 깎아주겠습니까”하고 감정평가서를 건네줬다. 고미술값이란 가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값도 없다.
경기 변동에 따라, 상인들의 수완에 따라 매입자의 의견에 따라 바뀌니 양측의 합의한 값이 가격인 것이다. 가짜를 팔고 큰돈을 받아도 지금은 아무 일도 아닌 세상이다. 고미술 거래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비리가 있다고 늘 듣는다. 그런 문제는 도외시하고 왜 본인과 몇몇 감정인에게만 엄중한 문책을 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강진군에서는 자신들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샀는데 국회의원에게 “자신들을 싼 유물을 비싸게 샀다고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등 문제를 제기했다. 양측의 공방이 가열됐다. 그간의 여러 가지 복잡한 언쟁과 재감정평가가 이뤄졌지만 국회의원 측과 강진군 측에서 수긍하지 않았다.
강진군에서 내게 머리를 숙여 “선생님들께서 감정서를 써주셔야만 저희가 귀중한 청자를 살 수 있으니 꼭 감정위원으로 감정서를 써 주십시오”라고 했기에 소신껏 감정서를 써줬다. 강진군은 두 차례에 걸쳐 여러 점의 유물을 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자 강진군은 감정위원 6인과 유물 판매자, 고미술협회장 등 도합 8인을 업무상 배임 및 사기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처음엔 강진 검찰지청에 고소했으나 피고소인 모두가 서울에 있어 서울 중앙 지방 검찰청으로 이관됐다.
본인도 서초경찰서에도 출두해 조사를 받았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도 조사를 받았다. 다행히 서초경찰서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담당형사나 검사가 친절하게 대해줘 고맙게 생각했다. 몇 달 후에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 통보를 받았다. 본인은 서초경찰서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두한 것이 강진군의 고소에 따른 것이라 당연한 법적 절차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종로경찰서 사법 경찰관 경위 모씨, 경사 모 라는 직인이 찍힌 공문을 받았다. 강진 청자문제로 조사할 것이 있으니 출두할 것을 요청이었다. 그래서 본인은 “담당지역 검찰에서 이번 강진 청자 사건전모를 종합조사 할 권한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왜 종로경찰서에서 같은 문제로 출두하라하느냐”했지만 출두를 거듭 요청했다.
결국 종로서 형사 두 분이 본인 사무실에 와서 몇 시간 심문 후 긴 조사를 작성하고 돌아갔지만 아직 아무런 말이 없다. 그리고 또 감사원에서 전화가 왔다. 자신이 특별감찰국 모 과장인데 본인보고 출두해 조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청화백자 매죽문 준(樽)
15세기 중엽. 높이 41.0CM. 호암미술관소장. 국보 219호
지난호에는 1456년에 제작된 청화백자 흥녕군대부인 묘지를 소개했다. 이 묘지의 발견은 조선 초 청화백자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됐다. 그런데 이보다 11년뒤인 1467년에 제작된 황수신묘지가 잇따라 발견돼 조선조 청화백자는 조선전기에 이미 만들어 졌다는 학설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됐다.
이번에 소개하는 청화백자매죽문준은 양식적으로 원명 청화백자의 영향이 견부와 동체 하부에 있는 연판문 등 종속문에 남아있다. 두벌의 지석과 비슷한 연대인 15세기 중엽이라고 생각되는 귀중한 자료이고 소중하고 뛰어난 미술품이다. 이 준보다 한발 앞서는 청화백자 연당초어문준(보물788호)이 역시 호암미술관에 있다. 연당초어문준보다 빠른 시기의 청화백자모란당초문준이 일본 모처에 소장돼 있고 여러 출판물에 소개됐다.
또한 1489년에 제작돼 이 준보다 뒤늦은 청화백자 송죽문 준(국보176호)이 동국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일련의 작품이 있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이 매죽문준은 주문양이 원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독자적인 회화적 구성과 필치의 매죽문이다. 미술품으로도 드높은 아름다운 명품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초기청화백자 연구에도 그 중심에 있는 소중한 미술품이다.
<사진=한국미술발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