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KDN 입법로비’ 칼바람 부는 여의도
국회의원 300명 수사 확대 되나
국회의원 300명까지 수사 확대?…전수조사 소문까지
대가성 여부 놓고 공방전…정치권 “청목회 사건 기억하라~”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경찰이 지난 18일 한국전력 자회사 한전KDN이 국회의원 4명에게 입법로비를 한 정황을 포착했다. 국회의원 4명이 연루됐다는 것은 결국 수사 초점이 정치권에 맞춰져 있으며 수사망이 정치권으로 좁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검경이 한전KDN 외에 여의도 입법 로비 실태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면서 여의도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계속된 정치권 수사
‘정치인 흠집 내기’
정치인을 후원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지만 ‘특권 내려놓기’를 외치는 정치권에는 대형 이슈로 번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법안을 바꿔주는 명목으로 로비를 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관행이기 때문이다.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검경 수사가 예사롭지 않다며 국회의원 300명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것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 특히 한 곳으로부터 10명 이상이 조직적으로 후원한 사례를 잡아, 대가성 여부를 파악하려 한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
이와 관련, 정치권 한 인사는 “여의도 주변에서 나오는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일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SAC)의 학교명칭 변경,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입법로비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된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검경에서 ‘입법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를 확대해 정치권 인사들에 대해 ‘상처’를 주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럴 경우 연루된 인사들은 20대 총선 출마에 굉장한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한전KDN 같은 경우는 ‘입법로비’에 대한 실체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실제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한국KDN이 직원 568명을 동원해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김현미 의원, 새누리당 홍일표, 여상규 의원 등 총 4명에게 특정한 대가를 바라고 후원금을 기부한 혐의 등으로 한전KDN 사장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995만 원에서 1816만 원의 후원금을 기부했다는 내용이다. 직원들을 동원, 이른바 ‘쪼개기 후원금’을 낸 셈이다.
이중 전 의원은 2012년 11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소프트웨어사업에 상호출자제한 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자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예상한 한전KDN은 4명의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입법로비를 벌였다. 결국 한전KDN은 즉각 대응팀을 만들어 전 의원 등에게 쪼개기 후원금을 납부, 치열한 로비전을 펼쳤다.
더구나 수시로 의원실을 방문, 법안 개정 내용 중 ‘제한 기업 중 공공기관은 제외한다’는 조문을 삽입한 법률 수정안을 전달, 법안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 대가로 한전KDN 직원 491명이 10만 원씩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전 의원은 1816만 원, 나머지 의원들은 995만 원에서 1430만 원의 후원금을 입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지난해 2월 전 의원은 사업 참여 제한 대상에서 공공기관을 빼는 수정안을 발의했다. 결국 한전KDN은 지난해 6월 전 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 300권, 총 900만 원 상당의 책을 구입했다. 또한 이 법안 통과 이후 한전KDN은 기부금을 내지 않았던 직원 77명에게 지시, 전 의원 후원계좌로 536만 원을 추가 기부하도록 했다.
여야 의원 4명
“대가성 없다”
실명이 거론된 해당 의원실은 대가성 여부에 대해 극구 부인하고 있다. 전 의원은 “입법로비가 아니다”면서도 “법의 한도 내에서 후원금을 받았다”고 일정 부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 의원은 출판기념회 당시 한전KDN 측이 책을 대량 구매한 것에 대해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해서 쓴 책이라 당시 초청장에 ‘이 책을 사주시면 책값은 모두 후원금으로 해서 사회적 기업에 기부하겠다’고 썼다”며 “실제 들어온 돈 전액을 사회적 기업에 기부했다”고 설명했다.
이름이 거론된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입법 과정에서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한전KDN의 조직적 후원금은 기사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연루된 여권 관계자들도 ‘사실무근’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입법로비’로 규정, 대가성이 짙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전 의원이 소프트웨어법 개정안 발의 직후 한국KDN 관계자들과 만났고, 직원들로부터 소액 후원을 집중적으로 받은 뒤 한전KDN에 불리한 법조항을 수정해준 만큼 ‘대가성이 명확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관계자들은 “대가성 여부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10만 원을 후원한 인사들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18대 국회 때 청목회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입증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입법로비 수사 놓고
정치권 설왕설래
경찰이 ‘입법로비’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과 달리 의외로 정치권은 ‘입법로비’가 ‘정권 차원에서 국회 길들이기’에 들어갔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야당 한 보좌진은 “최근 국회의원 300명에 대한 조사를 벌인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는 과거 전례가 있었던 만큼 입법로비를 규정하기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경찰과 검찰이 입법로비에 대한 수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국회를 길들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부터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입법로비 의혹, 치과의사협회, 물리치료사 협회 등 비리 수사에 줄줄이 의원들 이름이 거론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검찰과 경찰이 정치권을 향해 ‘입법로비’ 수사를 하자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중 박근혜 정부가 정치권 손보기에 나서면서 향후 국정 운영을 청와대 위주로 하려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입법 로비’ 수사에 대한 또 다른 정치적 배경도 회자되고 있다. 야당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4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 비리’ 국정조사와 누리과정 등 복지 예산 확보 경쟁에서 야당을 견제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갑자기 한전KDN을 수사하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공무원 연금개혁과 관련, 공무원들의 실상을 폭로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야권 한 관계자는 “공무원 연금개혁안을 놓고 여야가 치열한 머리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입법로비’ 수사를 통해 공무원들의 실상을 꼬집고, 공무원 연금개혁 필요성을 사정기관을 통해 알리려 하는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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