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관피아 임원 직접 영업
관급 도로 공사‘싹쓸이’전말
단가 높은데도 수주 척척…특혜 정황 로비 의혹
수익 일부 공무원에게 리베이트 제공 가능성도
[일요서울 | 김재현 프리랜서] 정부가 새롭게 출범시킨 인사혁신처가 공무원연금과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위한 작업에 본격 착수할 계획인 가운데 관가에서는 어디가 시작점이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탄생한 만큼 초기 성과에 조직의 역량을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최근 관피아 혐의로 조사를 받던 이들이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해 인사혁신처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는 지난 20일 ‘관피아’ 비리와 관련, 부산항만공사 관계자에게 뇌물을 전달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브로커 K(53) 상무와 H(44) 부장이 경북 청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관피아 척결을 필수과제로 삼고 있지만 ‘관피아’의 횡포를 호소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관피아 척결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지방 도로 공사 하도급 문제를 놓고 관피아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관심을 끈다. 내용을 살펴보면 특정 업체가 전직 간부급 공무원들을 다수 채용해 관급 공사를 독식하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교통분야에 적지 않은 비리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항만과 철도 분야에 관피아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 사정기관이 이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될 조짐이다. 바로 도로 공사 분야다.
정부와 국회가 관피아 규제 방안을 마련해 관가에 대한 부패 척결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최근 철도에 이어 국도 등 도로 공사에도 관피아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돼 정부의 의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충청도 소재 한 업체가 퇴직한 국토관리청 공무원들을 대거 영입해 전국 각지의 도로공사 하청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서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전직 공무원들은 퇴직 후 도로공사 관련 업체인 A사에 임원으로 취업해 관급 공사 영업을 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자료에 따르면 A사는 각 지역의 전직 국토관리청 인사들을 임원으로 영입한 뒤 이들에게 과거 근무했던 지역에 파견돼 공사 수주를 담당해왔다. 업계에 따르면 이 업체는 이들 ‘관피아’의 활약으로 최근 수년 사이 급성장했으며, 전국 곳곳의 도로 공사를 수주해 상당한 이득을 챙겼다. 이 업체는 타 업체보다 단가가 현저히 높은데도 공사를 수주해 특혜 의혹을 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업체가 수익의 일부를 리베이트로 공무원들에게 제공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정기관 조사 안 이뤄져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상도 강원도 등 각 지역의 도로 공사 관련 ‘관피아 비리’가 만연하지만 제대로 된 사정기관의 조사는 아직 이뤄진 적이 없다. 발주처와 특혜 업체가 철저히 입을 맞추기 때문에 조사를 한다 해도 구체적인 물증을 찾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최근 A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살펴보면 도로공사와 관련된 관피아를 뒷받침하는 관련 자료가 적지 않다. 이 중 충청도의 모 지역 국도 공사 내용을 살펴보면 이 지역 도로 공사 하청에 관여된 A사에는 이 공사를 발주 관리하는 국토관리청 산하 국토유지관리사무소 출신 인사가 이 회사의 임원이다.
더구나 이 인사는 이 지역 도로 공사 하청 영업을 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 국토유지사무소에 근무했다. 석연치 않은 부분은 또 있다. 그는 이곳에서 근무할 당시 뒷돈수수 정황이 드러나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도 모 지역 공사에 참여할 당시 이 인사는 국토관리청 공무원들과 접촉해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에 대해 국토유지관리사무소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해당 인사는 만난 적도 없고 누군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인결과 이 인사는 사무소 직원들 뿐만 아니라 사무소장을 비롯해 국토관리청 직원들도 이 인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말하자면 의심을 피하기 위해 문제의 인사를 모른다고 시치미를 뗀 것에 다름 아니다.
문건을 보면 해당 지역의 국도 공사를 발주하고 시행하는 과정은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다.
조달청이 발주한 해당 지역 국도 포장공사는 B사가 시행했고 이 회사는 A사의 특허공법을 이용해 공사를 추진했다. B사가 이 공사를 이행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A사와 B사 간에 갈등이 불거졌다. 공사를 수주한 B사는 하청업체 A사의 특허공법을 사용하되 공사장비는 다른 업체를 통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운 반면 A사는 자사장비를 이용하지 않으면 공법사용을 불허하겠다는 것이다.
A사가 공사에 불참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런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면서 양사 간의 갈등은 깊어졌다. 여기서 문제는 국토유지사무소 측의 태도다. B사가 다른 회사 장비를 사용해 공사하겠다고 하자 사무소는 A사의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 공사 계약을 진행할 수 없다고 나온 것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사무소의 이런 반응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하도급 계약과 관련해 사무소와 A사가 작성한 합의서를 보면 공법시행에 필요한 자재는 A사에서 조달하도록 명시돼 있지만 공사 장비는 낙찰업체 즉, B사가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다른 업체 장비를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공사와 관련해 건설기술진흥법 신기술사용법 조항에 따른 것으로, 조달청이나 국토교통부도 이에 대해 특허기술공법과 관련해 재료와 기술은 해당사에 국한되지만 장비는 예외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B사는 이 같은 부분을 관계 부처에 정식으로 문의해 “장비 사용은 공사 입찰에서 낙찰 받은 업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는 답변을 얻었다.
이런 부분에 대해 B사는 사무소에 설명했지만 사무소 관계자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A사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공사를 다른 업체에 의뢰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동안 공사 준비에 들어간 비용 등을 감안할 때 B사 입장에서 이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문건을 살펴보면 A사는 변리사 등에 자문을 거쳐 계약서의 특허공법시행과 관련해 기술, 자재 뿐만 아니라 장비도 자사의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무소는 이 점을 내세워 A사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사무소 관계자는 A사와 B사의 마찰에 대해 ‘관피아’ 의혹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며 “두 회사는 서로 하도급율이 안 맞아 갈등을 겪은 것이지 우리가 A사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련 규정 조항도 무시
그러나 편들기가 아니라는 사무소 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 본질적으로 두 회사는 하도급율이 안 맞아 갈등을 겪는 것이 맞다. A사의 장비를 사용할 경우 단가가 높아 마진이 없다는 게 B사의 입장인 반면 B사는 자사의 장비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마진이 낮아 사업참여의 의미가 없다는 문제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업체간의 이해일 뿐 공공기관인 사무소가 A사의 손을 들어주며 장비사용을 강요할 순 없다. 오히려 명시된 규정에 따라 B사의 입장이 갑이라는 점을 A사에 상기시켜야 하는 게 사무소의 역할이다.
이는 A사가 변리사의 의견을 받아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변리사 의견과는 별도로 관급공사는 발주기관의 관련 규정을 따르게 돼 있고 이는 협약서나 계약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실제로 사무소와 A사가 체결한 신기술(특허공법) 사용협약서를 살펴보면 제 4조에 [제 2조에 따른 신기술(특허공법)이 사용되는 공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기술보유자의 기술적 노하우를 사용하지 않거나 기술보유자가 보유한 특별장비 등을 사용(낙찰자가 사용가능한 경우는 제외)하지 않으면 시공 및 품질 확보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을’은 ‘낙찰자’와 해당 부분에 대하여 하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시공에 참여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특허 기술이나 재료는 달라도 공사 장비는 다 똑같기 때문에 특허와 무관하다. 따라서 관련 규정도 장비는 기술사용 규정에서 예외로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소는 B사에 A사의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다른 업체의 장비 사용을 불허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사무소 측은 B사가 A사의 장비를 사용도록하기 위해 B사 관계자를 직접 압박하기도 했다.
사무소가 A사와 특허사용 계약을 한 배경도 수상하다. A사는 단가가 다른 회사보다 최대 20% 이상 높은데도 각종 입찰 등을 통해 관급공사를 수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배경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 “A사는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한 회사로 업계 주목을 받고 있다”며 “이 회사가 급성장 한 것은 관피아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국토관리청 출신 전직 공무원 다수가 이 회사의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특히 C이사나 P이사는 영업담당 임원으로 영입돼 이 회사의 관급공사 수주를 전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최씨는 전직 국토관리사무소장 출신이고 그 전에 사무소의 구조물과장을 거쳤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전관예우 형태로 사업을 수주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또 A사 내에는 이들 외에도 같은 공무원 5명이 더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모두 관급공사 수주를 위해 영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편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안행위)는 지난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관피아 방지법’인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퇴직 공직자의 취업제한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고, 2급 이상 고위직에 대한 업무관련성의 판단 기준을 ‘소속 부서의 업무’에서 ‘소속 기관의 업무’로 확대했다.
취업제한 규정 위반에 따른 처벌도 강화됐다. 현행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 조정했다.
변호사·공인회계사·세무사 자격증 소지자가 각각 법무·회계·세무법인에 재취업하는 경우에도 재산등록의무자인 고위 공무원 및 공공기관 임직원은 취업심사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 관피아가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이 심각한 데 비해 규제와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일명 ‘솜방망이 규제’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로 공사 ‘관피아’ 개입 관련 문건을 살펴보면 이 같은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공공연하게 커넥션이 자행될 것 같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관피아가 비리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수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최대 2,000만원의 벌금은 관피아 척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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