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모자 26억 낙찰에 하림 투자자들 '불똥' 내막

‘개인 취미활동’ VS ‘도전하는 기업인’

2014-11-24     박시은 기자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나폴레옹의 모자를 26억 원에 낙찰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거금을 들여서까지 구입한 이유와 목적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은 당초 예상액보다 5배 가까운 가격으로 역대 최고 경매가를 기록했다. 낙찰 받은 모자는 제2의 도약을 상징하는 의미로 하림 신사옥에 전시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은 다소 엇갈리는 모양새다. 역사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김 회장의 경영 정신이라는 시각과, 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상황과 맞지 않는 모습이란 반응이다.

   역대 최고 경매가 기록…구입 배경 눈길
   수익성 악화…사업다각화 행보 우려도

프랑스 퐁텐블로의 오세나 경매소에 따르면 김 회장은 대리인을 통해 나폴레옹의 이각모자를 약 26억 원에 낙찰 받았다. 당초 나폴레옹 모자의 낙찰가는 4억~5억 원 가량으로 예상됐으나, 한 일본인과의 경쟁으로 5배에 가까운 역대 최고 경매가격으로 낙찰됐다.

김 회장은 모자 외에도 나폴레옹이 썼던 칼, 은잔, 당시 화가가 그린 나폴레옹 초상화 등을 낙찰 받기 위해 약 11억 원의 돈을 더 지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림그룹은 “김 회장은 ‘불가능은 없다’는 말로 대표되는 나폴레옹의 도전정신을 높이 사왔다”며 “도전하는 기업인이 사라진 국내에서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키고자 모자를 구매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김 회장의 행보를 두고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경영철학을 보여준 것으로 봤다. 김 회장이 키우던 병아리 10마리를 기반으로 연 매출액 4조8000억 원대의 하림그룹으로 일궈낸 만큼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과 개척 정신을 강조한 일들 중 하나란 것이다. 김 회장은 자본금 4000만 원으로 세운 농장을 하림, 팜스코, NS쇼핑 등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키워냈다.

경매에 참가한 직원 역시 “하림은 나폴레옹과 같은 한국의 개척가”라고 말한 바 있다. 하림그룹은 “신사옥에 나폴레옹의 모자를 비치해 도전과 개척정신을 공유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김 회장이 낙찰받은 나폴레옹의 모자는 벌써부터 “30%를 더 줄테니 팔라”는 제안이 들어올 만큼 환금성이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모자 구입을 두고 탐탁치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경영 상황이 이 같은 경매 소식으로 회자될 만큼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룹 대표 계열사 하림은 3분기 영업손실 45억92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적자전환했다. 또 올 상반기 7000원대에 머무르던 주가는 경매 낙찰 소식이 알려진 날 3960원에 마감했다. 전거래일대비 1.25% 하락, 상반기와 비교했을 때 반토막이 난 셈이다.

또한 국내 최대 벌크캐리어 업체인 팬오션 인수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크다. 주력 사업과는 상관없는 영역으로의 진출이기 때문이다.

하림은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양계시장에서 벗어나 글로벌 곡물사업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사료생산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에 안정적인 곡물 수요기반을 갖췄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림이 시장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짙다. 주력 산업이 양계 가공업 등인 하림이 해운업과의 연관성이 적을 뿐만 아니라, 팬오션의 최종 회생채권 규모도 크기 때문이다. 팬오션 적정 인수가격은 6000억~7000억 원 내외로 평가되고 있지만 금융계에서는 우발채무 등으로 인해 팬오션의 최종 회생채권 규모가 1조원에서 많게는 1조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재 출연 다른 데 썼다면

또한 사전상속 논란 등으로 김 회장에 대한 평판도 우호적이지 않다. 김 회장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올품’의 지분을 아들 준영씨가 100% 보유하면서 계열사의 일감몰아주기와 사전 상속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지난 10월엔 유통기한이 13일이나 지난 1만4000마리 분량의 닭가슴살을 보관하다 적발된 일이 알려져 소비자들에게도 외면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영업손실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업다각화에 나서고자 나폴레옹의 모자를 구입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또 영업손실을 모자 투기로 메우려는 것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처럼 김 회장의 행보에 대한 시각은 엇갈리는 모양새다.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경영철학이 드러났다는 것과, 비록 김 회장의 사재를 턴 것이라고 해도 실적과 주가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 같은 최고경영자의 행보는 적절치 못하다는 시선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해외로 반출된 한국의 문화유산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사재를 쓴 다른 기업인들과 대비되면서 씁쓸함마저 남겼다. 일례로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은 개인적으로 해외를 돌며 각종 우리 유물들을 들여와 일부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국내 경영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YFM(Young Friends of the Museum)’ 모임은 지난 7월 고려시대 유물인 ‘나전경함(螺鈿經函)’을 일본에서 들여올 때 후원금과 지원활동을 펼친 바 있다. YFM은 국립중앙박물관을 후원하는 민간단체인 국립중앙박물관회 산하 모임이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의 한 해 유물 구입 예산이 28억 원으로 김 회장이 낙찰 받은 나폴레옹 모자 가격과 비슷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내외 대기업 창업자나 최고경영자들이 관심사나 독특한 취미 활동에 거액을 투자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면서도 “개인적인 영역을 탓할 수는 없지만 씁쓸한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하림그룹 측은 “투자의 목적이 아닐 뿐더러 김 회장의 사재를 털어 구입한 것이기 때문에 회사 일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경매에 참여했고, 그 결과물을 신사옥에 전시할 뿐이지 회사 경영 문제와 함께 볼 일은 아니다”며 “경영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계열사도 있지만 이를 종합해 그룹 성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그룹 경영 성과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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