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아내 죽인 남편 5년 만에 쇠고랑

‘부부의 날’ 끔찍한 일이…

2008-05-28     이수영 기자
매년 5월 21일은 법정기념일로 정해진 ‘부부의 날’이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되자’는 뜻이 담겨있다. 그러나 ‘제2회 부부의 날’ 이었던 지난 5월 21일 만삭의 아내를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유기한 비정한 남편이 경찰에 붙잡혀 기념일의 의미를 무색하게 했다. 경북 봉화경찰서는 지난달 21일 출산을 앞둔 아내를 잔인하게 때려 살해한 뒤 집 뒤뜰에 묻은 채 무려 5년 동안 숨어 지낸 홍모(46)씨를 긴급체포,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각각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동병상련의 정을 키워온 신혼부부의 비극적 파멸은 담당 수사관은 물론 모든 이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파국으로 치달은 홍씨 부부의 풀스토리를 추적했다.

지난 5월 초, 수년 동안 비어있던 홍씨 집에 이사를 오기위해 이웃주민 A씨는 집 안팎을 청소하다 까무러칠 뻔 했다. 뒤뜰에 쌓인 흙더미를 쓸어내자 하얗게 색이 바랜 사람의 유골이 나온 것.

A씨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작은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출동한 경찰은 발견된 유골이 6년 전 ‘바람이 나 집을 나갔다’고 알려진 홍씨의 부인 김모(당시 31세)씨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 여인의 치과기록과 유골에서 발견된 치아 보철을 대조해 신원을 확인한 것이다.


이사 온 이웃이 시신 발견

가출했다던 김 여인이 집 뒷마당에서 백골로 발견되자 가장 먼저 의심을 산 것은 남편 홍씨였다.

경찰 관계자는 “이웃들에게 부인이 가출했다고 알렸으면서도 막상 경찰에 가출신고를 내지 않은 점과 수년 째 자취를 감춘 남편에게 혐의점이 짙다고 보고 홍씨를 추적하게 됐다”고 말했다.

알코올 중독증에 시달린 홍씨의 병력과 주변인을 탐문하던 경찰은 마침내 지난달 20일 경북 안동의 모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긴급체포했다.

곧장 경찰서로 연행된 홍씨는 아내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혐의를 털어놨고 경찰은 다음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지 5년 4개월 만이었다.

홍씨 부부의 시작은 누구보다 애틋했다. 홍씨와 김 여인은 2002년 초 경북의 한 병원에서 각각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 환자로 만났다.

전 남편과 사이에 세 아이를 뒀지만 이혼 당한 뒤 우울증에 시달려온 김 여인은 말동무로 다가온 홍씨에게 마음을 열었고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사랑을 키워갔다.

그해 4월 나란히 퇴원한 두 사람은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했고 7개월 뒤 결혼에 골인해 경북 봉화에 신접살림을 차리게 됐다.

그러나 이들의 신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일정한 수입이 없었을뿐더러 치료를 위해 병원을 오가야 하는 처지로 생활이 궁핍했다.

위태롭게 유지되던 부부생활이 끔찍한 파국을 맞은 것은 2003년 1월. 한 금융기관에서 보낸 상환 독촉장 때문이었다.

오랜 치료에도 불구하고 술을 끊지 못한 홍씨는 그날도 만취 상태로 집에 돌아와 또 술을 찾았다. 안방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그의 눈에 ‘문제의 우편물’이 들어온 게 사건의 불씨였다. 우편물은 1997년 홍씨가 농자금 대출금으로 빌린 돈을 빨리 갚으라는 내용의 독촉장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궁핍한 살림에 독촉까지 날아들자 홍씨는 이성을 잃었다. 등기우편으로 온 독촉장을 아내가 대신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돼 더욱 역정을 냈고 “왜 마음대로 도장을 찍어줬느냐”며 부인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아내에 미안하다” 참회의 눈물

아내의 뱃속엔 자신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홍씨는 임신 35주로 출산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내의 배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려 쓰러트렸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유산됐고 김 여인은 과다출혈로 쓸쓸히 죽어갔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홍씨는 침대 밑에 피투성이로 쓰러져있는 아내를 흔들며 ‘왜 여태 자고 있느냐’고 짜증을 냈다. 그러나 아무리 깨워도 부인은 일어나지 못했다. 이미 숨을 거둔 뒤였기 때문이다.

정신이 번쩍 든 홍씨는 시신을 숨겨야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뒷마당으로 부인의 시신을 옮긴 홍씨는 삽으로 서둘러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추운 겨울 딱딱하게 얼어붙은 땅이 잘 파질리 없었다.

결국 얕게 흙을 떠낸 뒤 그 속에 김 여인을 눕힌 홍씨는 흙더미와 낙엽을 끌어 모아 시신을 그럴듯하게 감췄다.

날이 밝자 그는 이웃들에게 “아내가 바람나 가출했다”는 헛소문을 퍼트렸고 얼마 뒤 알코올 중독을 핑계로 정신병원에 숨어들었다. 부인과 처음 만난 바로 그 병원이었다.

한편 홍씨와 아내 김 여인은 모두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정부 보조금을 받는 처지였다. 남편은 이 돈에도 욕심을 냈다. 그는 병원에 숨어 지내는 동안 아내 몫으로 지급된 정부 보조금 20여만원을 빼돌려 생활비로 쓴 사실이 경찰 조사에 의해 드러났다.

안타까운 것은 홍씨가 뒤늦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묵묵히 처벌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홍씨는 경찰에서 “숨어 지낸 5년 동안 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이렇게 털어놓으니 속이 후련하다. 하늘에 있는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고 죄스럽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부의 날’ 알려진 홍씨 부부의 안타까운 사건은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