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간 뒤바뀐 인생 ‘기막힌 형제’
엇갈린 인생 파노라마
2008-05-20 이수영 기자
기막힌 인생유전의 시작은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2살이었던 형 순철씨 앞으로 군대소집 영장이 나오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집안의 기둥이니 몸조심 시켜야한다’는 부모님 성화에 대신 나선 것이 4살 터울의 동생 현철씨.
결국 현철씨가 형을 대신해 3년 4개월의 군복무를 마친 것이 화근이 됐다. 1962년 시행된 주민등록법 탓에 현철씨는 1963년 재대한 뒤 꼼짝없이 형의 이름으로 주민등록 신고를 해야만 했던 것.
“장남이 집안 기둥인데…”
대리 입대한 사실이 탄로 나면 혹시라도 전과자가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순철씨는 이미 4살 어린 동생의 이름으로 주민등록 신고를 마친 뒤였다.
이름이 뒤바뀌었지만 총각시절 형제들은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여전히 그들의 본명을 부르며 생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형제가 반려자를 만나 가장이 된 뒤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내 권모(66)씨를 만나 가정을 꾸린 순철씨는 혼인신고를 하러 간 순간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이 뒤바뀐 탓에 아내를 동생 호적에 올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호적상 명칭이 ‘제수씨’가 된 기막힌 상황은 동생도 똑같이 겪었다.
현철씨 역시 아내를 형의 호적에 올려야했고 본의 아니게 형수와 ‘호적상’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이다.
이들 사이에 자녀가 태어나자 문제는 더 꼬이기 시작했다. 뒤바뀐 법적 신분 때문에 친자식은 조카로, 조카는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해 ‘기묘한 족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공문서상 형의 자녀들은 작은아버지와 어머니의 아이들로, 동생의 자녀들은 큰아버지와 어머니의 아이들로 기재됐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자식들의 고충은 학교생활 내내 극심한 스트레스가 될 법했다.
결국 참다못한 두 형제는 2004년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엉망으로 엉킨 가족관계를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과 의논을 끝낸 뒤 먼저 형인 순철씨가 나섰다.
그는 제수씨를 상대로 혼인신고 무효소송을 냈고 다음해인 2005년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형수인 권씨도 법적 남편인 시동생 현철씨를 상대로 같은 소송을 연이어 제기해 시동생과의 잘못된 부부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조카가 된 친자식들을 다시 찾아오는 것. 서울가정법원 가사8단독 이헌영 판사는 순철씨의 아내 권씨가 시동생을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존부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권씨의 아이들이 법적 남편인 현철씨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법적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자식 태어나자 ‘기묘한 족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권씨 자녀들의 친아버지는 실제남편인 형 김씨일 것”이라며 “따라서 권씨 자녀들과 김씨의 동생 사이에는 친생자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형 부부가 연이어 관련 소송에서 이기자 동생 현철씨 역시 자식들 호적을 바로잡기 위해 같은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남을 위한 부모님의 배려가 형제에겐 무려 48년 동안 뒤엉킨 가족사에 시달리게한 족쇄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