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강의 동영상 불법복제 ‘류본좌’ 잡고 보니…
학원비 마련 급급한 가난한 고시생
2008-05-14 윤지환 기자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서울 신림동 고시학원가에서 유명 학원 고시강의 동영상을 불법 제조·판매해 거액을 챙겨온 일명 ‘류본좌’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류본좌는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ID로 이 인물의 이름 등 신상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바 없다. 다만 성씨가 류씨로만 알려졌을 뿐이다.
경찰에 류씨가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법고시준비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저렴한 가격에 고시강의 동영상을 구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는 아쉬움과 더불어 불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구속돼야 마땅하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경찰에 확인해본 결과 이번에 경찰조사를 받은 류본좌는 그 류본좌가 아니었다. 성씨도 류씨가 아니었고 본좌라고 불릴 만큼 불법복제동영상강의 CD를 많이 판매한 것도 아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 대한 보도는 명백한 오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류본좌에 대한 기사가 나오게 된 것일까. 그리고 사건의 진짜 내막은 무엇일까. 이번 사건을 수사한 담당 경찰에 직접 사건을 확인해 봤다.
모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고시생들 사이에서 유명인사로 통하는 류본좌가 경찰에 검거됐다. ‘본좌’라는 별명이 보여주듯 류본좌는 사시준비생들에게 강의동영상 불법 복제판매 전문가로 알려졌다.
또 이 일간지는 이번에 붙잡힌 피의자(류씨로 보도)가 신림동의 유명 고시학원인 베리타스, 한림법학원, 합격의법학원 등 세 곳의 유명 강사들의 동영상 강의를 CD로 불법 제작·판매해오다 현장에서 검거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경찰 관계자의 말을 빌어 “압수된 컴퓨터에 수백 개가 넘는 고시 동영상 강좌가 저장돼 있었다. 최근 1년간 주고받은 이메일 기록이 모두 불법동영상 거래내역이었다”고 전했다.
피의자 A씨 가난한 고시생
그러나 본지가 이 사건을 조사한 서울관악경찰서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보도는 사실과 전혀 달랐다.
경찰 관계자는 “신문에 보도된 류본좌 사건에 대한 내용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도대체 왜 그런 내용이 나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나는 기사를 쓴 기자와 통화한번 한 적 없다. 기사가 보도된 이후 통화했는데, 그때 사실과 기사 내용이 다르다고 기자에게 말해 줬다”며 “그 기사 때문에 피의자가 경찰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그런 말 한 적도 없는 내가 곤란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류본좌라고 붙잡힌 이 인물은 알려진 사실과 달리 불법복제CD판매로 얻은 수익도 소액에 불과하다.
또 S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 경찰은 “S대학교라고 해서 서울대라고 알려졌으나 피의자 A씨는 서울대 출신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며 “여기저기서 류본좌가 S대 법학과 몇 학번이냐고 묻는 등 류본좌에 대한 문의 전화가 많이 와 골치가 다 아프다”고 말했다.
A씨는 전혀 범죄사실이 없는 평범한 사시준비생으로 경찰 조사결과 교재구입 할 돈도 제대로 조달하기 힘든 가난한 인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학원측은 A씨가 1년간 수집한 동영상 강좌가 수만 개에 달하며, 그 중 불법·복제해 판매한 것만 1만여 개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조사결과 그렇지 않았다”며 “A씨의 컴퓨터에는 겨우 10여개의 동영상만 저장돼 있었고 이메일이나 은행계좌 등을 확인해 보니 3년 동안까지 판매한 CD는 불과 50건 정도였다”고 말했다.
A씨가 그동안 벌어들인 총 수익은 150만 원정도로 1년에 CD판매를 통해 약 50만원을 번 셈이다.
이 관계자는 “CD팔아서 1년에 50만원 정도 번 것도 불법은 불법이지만 죄라고 하기엔 액수가 너무 적다”며 “A씨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조금씩 번 돈으로 학원교재를 샀다고 했다. 그는 이에 대한 증거자료도 경찰에 재출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류본좌에 대해 “류본좌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류본좌가 잡혔다는 기사가 나와서 그 존재를 처음 알았다”며 “류본좌가 실존하는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학원 관계자는 강의동영상 불법복제 판매로 피해가 막대하다고 경찰에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번에 A씨를 고발한 학원은 1개 학원이고 불법복제물로 피해를 입은 다른 학원은 A씨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학원측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A씨로 인한 피해액은 그리 크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류본좌가 단일 인물인지 아니면 불법CD를 판매하는 일당들이 쓰는 아이디인지 사시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CD팔아 용돈 마련 수준
일부에선 류본좌는 사시강의만 전문으로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에선 사시강의 판매는 류본좌라는 ID로, 그 밖에 다른 국가고시 관련 CD판매는 다른 제 3의 ID로 판매하는 전문 일당이 있다는 추리도 내놓고 있다.
분명한 것은 많은 사시준비생들이 류본좌라는 ID를 쓰는 인물에게 강의동영상 불법복제 제품을 구입했다는 사실이다.
법과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사시를 준비하는 많은 이들이 불법경로를 통해 마련한 강의동영상으로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