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곗돈 들고 튄’ 그녀는 어디에?

시장상인 울린 100억 사기사건 전모

2008-04-22     이수영 기자

서울 노원구 상계시장 상인들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불경기 탓에 하루하루 먹고살기 빠듯한 가운데, 피땀 흘려 모은 목돈까지 하루아침에 떼였기 때문이다. 상계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계모임을 이끌던 ‘큰 손’ 김모(56·여)씨가 자취를 감춘 건 지난 2일. 김씨와 함께 그가 끌어 모은 곗돈 100억원의 행방도 묘연해졌다. 피해자들은 지난 7일 서울 노원경찰서에 김씨를 고소했다. 그들은 수년 간 알고지낸 김씨가 작정하고 자신들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나자 분통을 터트렸다. 피해자들 사이에서 김씨가 중국으로 밀입국했다는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공범으로 지목된 김씨 남동생이 제 발로 경찰서에 나타나 피해자들과 만났다. 그는 ‘나 역시 피해자’라며 항변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씨에게 뒤통수를 맞은 A씨(66)는 서울 상계시장에서 수십 년 간 냉면을 팔아온 베테랑 장사꾼이다.

A씨는 2006년 입소문을 통해 계원 40명이 매달 50만원씩 부어 2000만원이 모이면 돌아가며 원금과 이자를 타는 계모임을 알게 됐다.

원금 2000만원에 열 달 치 이자 200만원을 얹어 모두 2200만원을 타는 식이었다.

전형적인 억척 주부였던 A씨는 은행의 수십 배가 넘는 이자율에 혹해 계모임에 가입했다.


‘큰 손’ 은 50대 가명

계주가 ‘김정숙’이란 이름의 상계동 일대 ‘큰 손’이라는 것 밖에 아는 것이 없었지만 20년을 부어도 끄떡없었다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A씨는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기대에 무려 11개 계에 가입, 꼬박꼬박 돈을 부었다.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아들, 딸에게도 계모임에 들 것을 권한 A씨는 2년 동안 2억원에 달하는 목돈을 김씨에게 맡겼다.

마침내 A씨가 곗돈을 탈 차례가 다가왔지만 김씨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덜컥 겁이 난 그가 계원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하자 피해자 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김정숙’이라는 이름도 신분을 속이기 위한 가명이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지난 6일 한 자리에 모인 피해자들은 대부분 상계시장 상인과 상계동에 사는 주부들이었다. 피해자 대책 모임을 만든 이들은 이튿날 김씨를 고소했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김씨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피해자 모임에선 중국에 자주 드나들던 김씨가 돈을 챙겨 밀입국 했을지 모른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와 공범인 것으로 알려졌던 남동생(52)이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와 피해자들과 대면했다.

김씨는 상계동에 사는 남동생 집을 오가며 이웃들과 안면을 텄고 계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식사대접을 하는 등 환심을 샀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가 자취를 감추기 직전 남동생 역시 3억 9000만원짜리 아파트를 5000만원이나 싸게 내놓아 팔아치운 뒤 사라져 함께 도주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뿐만 아니라 일부 피해자들은 “남동생에게 직접 곗돈을 건넸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으로 도주했을지도”

경찰에 자진 출두한 김씨 남동생은 죄가 없다며 맞섰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갑자기 집을 옮긴 것은 지방근무가 결정 돼서다. 누나가 계모임을 조직한 것은 알고 있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또 일부 계원들이 자신에게 곗돈을 맡겼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누나와 연락이 끊어진 상황에서 나까지 공범으로 몰리는 게 억울해 직접 찾아왔다. 모함을 당한 나 역시 피해자”라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 남동생을 상대로 정확한 정황을 조사함과 동시에 잠적한 김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

한편 김씨가 적어도 150명 이상을 상대로 100억원대 돈을 빼돌렸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노원경찰서 경제수사팀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에 공식적으로 접수된 피해액은 32억원에 불과하다.

경찰은 도주한 김씨가 30여개에 이르는 계모임을 조직했던 사실을 들어 실제 피해액이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추가 신고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