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안 거부하는 국회의원들이 ‘민심’도 거부하나?

기획 시리즈 (7) ‘혁신 의지’ 행동으로 보여라

2014-11-10     오두환 기자

“병에 걸렸는데 나으려면 약을 쓸 수밖에 없다”
‘내 밥그릇’ ‘권력’ 내려놓을 수 없다는 의원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정치권에 혁신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혁신안이 나와도 국회의원들이 동의하고 동참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 최근 새누리당이 야심차게 출범시킨 보수혁신위원회(이하 보수혁신위)가 벌써부터 당내에서 ‘미운오리새끼’ 신세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새로운 정치를 위해 만들었던 보수혁신위의 혁신안에 정작 의원들은 콧방귀만 뀌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이들에겐 혁신의 의지가 있는 걸까.

지난 9월 29일 출범한 보수혁신위는 매주 월·수 두 차례씩 전체회의를 하고 있다. 회의 때마다 큰 이슈가 될 만한 혁신 이슈들을 제시해왔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탁상공론’이라며 외면하는 분위기다.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이 혁신위에서 나온 안건들을 새누리당 의원들과 논의하려 당에 의원총회를 열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대답이 없다가 3일에서야 조만간 열겠다는 답을 받았다. 혁신위 시작부터 당내 지도부와 마찰이 있는 듯한 분위기였는데 과연 당 지도부가 혁신위의 제안을 강하게 추진할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김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혁신위라는 게 일정한 반발과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병에 걸렸는데 나으려면 약이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안 먹으면 안 된다”며 당내 분위기를 밝혔다.

혁신안 내놔도 ‘시큰둥’ 일부 의원 반발도

보수혁신위는 그동안 계속된 회의를 통해 국회의원의 ‘무노동 무임금 적용’ ‘불체포특권 개선’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선거구 획정 권한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이관’ 등 민감한 이슈들을 쏟아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사실 정치권에서 늘 나왔던 이야기다. 국회가 파행되거나, 회의가 열렸음에도 출석하지 않은 의원에 대해 세비를 삭감하겠다는 것이다. 올해의 경우 세월호 특별법 제정 문제로 여야 대치가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사실상 국회 폐업 상태까지 갔었다. 자연스럽게 국회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수도 없이 쏟아졌다.

‘불체포특권’=‘절대반지’ 국회의원들 포기 못해

보수혁신위는 ‘세비 삭감’ 사유에 대해 ‘국회 원 구성이 되지 않을 경우’, ‘국회가 파행·공전할 경우’, ‘국회의원이 구속된 상태일 경우’, ‘회의가 열렸는데도 의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4가지를 들었다. 큰 원칙만 정했고 추후 구체적인 안은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부 국회의원들이 벌써부터 반발하고 있다. 보수혁신위 안이 ‘회의 참석’만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입법부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헌법에 규정돼 있다. 헌법 제44조 1항에는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고 명문화 돼 있다.

하지만 불체포특권은 당초의 취지와 달리 비리 의혹으로 구설수에 오른 의원들에 대한 보호수단으로 변질되면서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새누리당의 경우 ‘철도비리’ 혐의로 검찰 구속수사 대상이 된 자당 송광호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지난달 3일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부결되면서 ‘방탄국회’란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보수혁신위에서 안건으로 다루게 됐다.

하지만 현행 헌법과 관련 국회법에 따르면, 회기 중 국회의원이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검찰에 자진출석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로지 출석이 가능한 방법은 국회 본회의 표결을 통해 해당 체포동의안이 가결됐을 때다. 결국 불체포특권을 없애려면 헌법 개정만이 확실한 대안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체포특권 포기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또 불체포특권이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보호해 주는 보호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도 많아 불체포특권 포기의 길은 멀기만 한 게 현실이다. 그래서 형사소송법과 국회법 등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불체포특권의 높은 벽을 낮출 수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국회의원들이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밥그릇 뺏길까 ‘전전긍긍’생존 앞에 계파도 없어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안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현재 출판기념회는 국회의원들의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금원이었다. 하지만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아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책값의 10배, 100배 이상의 책값을 받아왔으니 당연한 결과다.

보수혁신위의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안이 발표되지 여당 내 중진 국회의원은 ‘지엽적 발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국민들이 볼 때 이정도 안을 쇄신안으로 생각하겠느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정도 쇄신안도 수긍하지 못하는 국회의원이 많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들의 정치쇄신 요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만 가는데 국회의원들은 쇄신은커녕 혁신조차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구 획정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에 대해 헌법에 맞지 않는다며 다시 조정하라고 결정해 여야 할 것 없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국회의원의 선거구별 인구 수 차이가 최대 2배를 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행 3대 1인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내년 말까지 2대 1 이하로 조정해야 한다.

인구가 많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은 지역구를 쪼개야 하는데 그만큼 선거구가 많아져 의원수도 늘어나게 된다. 반면 인구가 적은 영남과 호남 등 농어촌 지역은 인구비율을 맞추기 위해 선거구를 합쳐야 하고 의원수는 줄게 된다. 당장 전체 선거구 246곳 가운데 62곳이 조정 대상이다.

지역구가 없어질 위기에 처한 여야 의원들은 농어촌을 무시한 결정이라며 벌써부터 집단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평소 외쳐온 “법대로 해야” 한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계파를 초월해 공개적인 반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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