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공개-패티김·길옥윤 ‘파경의 비밀’

“이탈리아인과 불륜 사실 아니다 ”

2008-04-22     이수영 기자

신비주의로 둘러싸인 가요계 여왕 패티김(70)이 베일에 싸였던 사생활에 대해 충격고백을 던졌다. 패티김은 지난 16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 세기의 커플로 관심을 모았던 작곡가 고 길옥윤씨와의 사랑과 이혼 과정을 털어놨다. 데뷔 50년 만에 밝혀진 슈퍼스타의 폭탄 고백에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일흔을 넘긴 ‘가요계 역사’의 파란만장한 과거사를 들여다봤다.

가수생활 50년을 맞은 패티김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은 시작부터 화제를 몰고 왔다.

패티김이 출연을 결심한 프로그램이 유독 ‘독한 질문’과 ‘바닥까지 드러나는 진솔함’을 강요하는 <무릎팍 도사>이기에 세간의 관심은 더욱 집중됐다. ‘패티김이 아닌 김혜자(패티김 본명)를 찾고 싶다’며 강호동 앞에 등장한 그의 거침없는 입담은 13.6%의 높은 시청률로 빛을 발했다.

패티김의 최초 고백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역시 작곡가 길옥윤씨와의 결혼과 이혼에 얽힌 오해들이다.


패티김 출연 시청률 13.6%

1959년 미8군 위문 공연을 통해 가수로 데뷔한 패티김은 광복 이후 한국 가수로서 처음으로 일본에 진출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대스타로 성장한 패티김은 베트남 위문공연을 다니다 길씨를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 6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그때 대중들 사이에서는 패티김이 외국 남자와 눈이 맞아 남편을 버렸다는 루머가 퍼졌다.

패티김은 “말도 안 되는 억측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렸다. 무대에서 두 번이나 쓰러질 정도”였다며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가난한 길옥윤을 내가 버렸다는 항간의 소문을 잘 알고 있다.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그는 훌륭한 음악적 동반자가 꼭 좋은 인생의 반려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며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가게 된 책임이 길씨에게도 있음을 털어놓았다.

패티김은 “길씨가 하루하루 즐기며 사는 사람이라면 난 1년, 10년짜리 계획을 세워 사는 사람이다. 더구나 길씨는 1년 내내 술을 마시고 심지어 도박에까지 손을 댔다. 부인으로서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지금 남편인 이탈리아인과 불륜에 빠져 이혼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결혼연도까지 공개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길씨와 1972년에 이혼하고 지금 남편과 1796년 식을 올렸다. 나 자신과 내 음악을 위해서라도 절대 부정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물론 첫 남편인 길씨와도 애틋한 감정과 추억이 적지 않았음은 부정할 수 없다. 패티김은 길씨가 전화로 들려준 사랑노래에 마음이 움직여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그는 “내성적인 길 선생이 새로 쓴 노래라며 전화로 들려줬다. <4월이 가면>의 가사였다(눈을 감으면 보이는 얼굴/잠이 들면은 꿈속의 사랑/날이 갈수록 깊이 정들고/헤어보면은 애절도 해라). 이 노랫말이 청혼처럼 들려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고 밝혔다.

1966년 결혼한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가수와 작곡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세기의 커플’로 명성을 날렸다.


꿈의 여정, 50년 칸타빌레

3년 뒤 두 사람 사이에 첫딸 정아(39)씨가 태어났다. 딸의 첫돌을 기념해 길씨는 ‘1990년 정아는 스물하나’라는 곡을 지어 가족 사랑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아씨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됐다.

패티김은 서로를 너무 모르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결혼결정을 내렸고 ‘남편 아내’는 ‘작곡가 가수’ 관계와 큰 차이가 있었다고 파경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패티김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자 최고의 작곡가로서 길씨를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패티김은 1995년 길씨가 숨지자 직접 추모공연을 마련해 고인의 마지막을 지켰다. 전 부인이기에 앞서 동료로서 의리를 지킨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 초라하게 죽게 할 수 없었다. 그 사람 노래를 아직도 부르고 사랑한다. 정말 훌륭한 작곡가였다”고 말해 진한 감동을 남겼다.

한편 패티김은 지난 18일 자신의 음악인생 50주년을 기념해 ‘그대 내 친구여’ 등이 수록된 정규 음반을 발표했다.

이달 말 전국 25개 도시를 돌며 ‘꿈의 여정 50년 칸타빌레’라는 이름의 대규모 콘서트로 활동을 재개한다.


# 가요계 전설, 길옥윤은?

서울대 출신 대중음악 거장

<4월이 가면> <서울의 찬가> <이별>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대중음악 작곡가다.

본명은 최치정으로 1943년 경성치과전문대학(서울대학교 치과대 전신)에 진학한 재원이었다.

광복 직후 박춘석·노명석 등과 그룹 ‘핫팝’을 결성, 주한미군 클럽에서 연주활동을 시작했다.

길옥윤은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기 전 유명 재즈 섹소폰 연주자로 먼저 명성을 날렸다.

1966년 패티김과 결혼했으나 6년 만에 이혼한 뒤 1988년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했다.

서양 음악을 한국적 색깔을 지닌 멜로디로 승화시킨 것은 한국 가요사의 큰 업적으로 남는다. 1995년 숨을 거둔 뒤 전 부인이자 음악적 동반자인 패티김이 나서 추모공연을 통해 고인의 이름을 세상에 각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