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魔)의 4번 타자’ 둘러싼 3대 의문점
‘마포 4모녀 피살사건’ 전말
2008-03-20 이수영 기자
4명의 피해자, 1명의 가해자가 모두 시신으로 발견된 비극적 사건에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특히 프로야구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쥔 전직 스타플레이어가 살인범으로 지목됐고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 국민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 해태타이거즈 4번 타자 이호성(41)씨가 내연관계인 김연숙(45·여)씨와 세 딸 등 네 명을 참혹하게 살해·암매장한 것에 대해 경찰은 돈을 노린 이씨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다. 사건을 맡은 서울 마포경찰서는 “이씨가 돈 문제로 다툼이 생기자 김 여인을 죽이고 완전범죄를 위해 세 딸도 모두 살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이 내린 수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여러 정확들이 석연찮다.
‘마(魔)의 4번 타자’ 이호성은 왜 4모녀를 처참하게 살해했을까. 이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집중 추적했다.
이씨의 범행이 철저히 계획됐다는 것은 수사팀 안에서도 이견이 없다.
먼저 이씨는 김 여인과 함께 지난달 18일 오전 1억 7천만원을 모두 현금으로 찾았다. 수표나 송금과정을 생략한 건 계좌추적을 따돌리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이씨가 김 여인 가족에게 2~3일 여행을 권한 것도 실종신고를 늦춰 시간을 벌려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미리 김 여인과 세 딸의 시신을 옮기기 위한 이민용가방과 방수비닐을 준비한 이씨. 그는 살인을 저지른 뒤 김 여인의 피가 묻은 침대매트리스 위에 잉크를 뿌려 경찰의 눈을 속였다. 이씨는 또 시신을 실어 옮긴 김 여인 소유 SM5승용차를 일이 끝난 뒤 말끔히 세차, 제자리에 갖다놓는 치밀함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이씨는 숨진 김 여인의 휴대전화번호로 김 여인이 운영하는 횟집종업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김 여인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미기위해서다. 게다가 이씨는 4대가 넘는 ‘대포폰’을 쓰고 사건이 불거진 뒤 공중전화로만 연락하는 수법으로 완전범죄를 꾀했다.
살해된 김 여인은 지난달 18일 은행 5곳에 나눠 보관했던 1억 7천만원을 현금으로 찾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직접 차를 몰아 김 여인과 함께 은행을 돌며 돈 가방을 챙겼다. 이 돈은 이틀 뒤 김 여인 모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자금으로 내기 위한 것이다.
네 모녀가 살해된 뒤 1억 7천만원은 고스란히 이씨 주머니로 들어갔다. 이씨가 이 돈을 빼앗기 위해 계획적으로 김 여인 모녀를 숨지게 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씨는 스크린경마사업이 실패하며 270억원에 이르는 빚을 진 것으로 드러났다. 수년 째 큰 빚을 안고 도피생활에 익숙한 이씨가 상대적으로 적은 1억 7천만원 때문에 4명의 목숨을 끔찍하게 빼앗았다는 건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홍성삼 서울 마포경찰서장은 지난 11일 수사결과 발표 때 “이씨가 김 여인으로부터 빼앗은 돈은 1억 7천만원이 전부”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실을 확인해줄 김 여인이 숨진 상황에서 경찰수사결과가 100%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 여인에겐 현금화된 재산이 더 있기 때문이다.
김 여인 오빠는 경찰조사에서 “이씨가 더 많은 돈을 가져갔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동생이 살던 홍제동 아파트를 판 돈만 3억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생통장엔 고작 2천만원이 남아있다. 분명 이호성과 더 많은 돈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2005년 6월 부도를 낸 뒤 전남지역 조직폭력배의 고리사채를 쓴 사실도 드러났다. 그가 3억원짜리 당좌어음 만기가 돌아오면 5억원짜리 어음을 다시 써주는 식으로 빚을 돌려막았다는 것.
이런 까닭에 수사팀 일각에선 돈을 갚지 않고 서울로 도망친 이씨가 이들에게 협박당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이씨가 이성을 잃고 김 여인 모녀를 살해한 뒤 자살을 결심한 이유도 협박공포에 시달린 탓이란 것이다.
이런 정황들만 봐도 이씨가 1억 7천만원을 위해 그런 살육을 저질렀다는 수사결과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이문수 마포경찰서 형사과장은 지난 12일 “계속 수사 중이지만 잠정적으로 이번 사건은 이호성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렸다. 또 추가범행도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시신을 실었던 SM5승용차 안 생수병에서 그의 지문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과장은 “김 여인 집과 승용차에서 15개의 지문을 찾아냈다. 그 중 확인이 가능한 것은 이씨 게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또 사건이 일어난 지난달 18일 밤 시신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이민용가방을 옮긴 남자와 이틀 뒤 아파트주차장에 김 여인의 차를 세워두고 사라진 남자가 같은 사람이라고 잠정 결론지었다.
CCTV를 본 김 여인 식당주방장과 종업원들이 두 화면에 비친 인물에 대해 이씨라고 바로 지목한 이유에서다. 두 화면 속의 인물이 다르게 보였던 건 두 대의 카메라 각도가 달랐기 때문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CCTV에 잡힌 두 남자의 체형이 확연히 다르고 화질이 좋지 않아 의심의 여지가 남아있다. 180cm가 넘는 키에 건장한 체구인 이씨보다 나중 찍힌 남자는 상대적으로 호리호리하고 왜소하다.
범행에 걸린 시간도 의문이다. 이씨는 김 여인의 아파트에 들어선지 6분 만에 김 여인과 작은딸(19), 막내딸(13)을 한꺼번에 살해하고 시신운반까지 끝냈다. 일반사람이라면 쉽게 해내기 힘든 일이다.
아무리 전직운동선수라도 김 여인 등 3명의 저항을 불과 수 분 만에 제압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또 누군가 김 여인 집에 들어가 이씨와 함께 세 가족을 살해했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이씨가 김 여인으로부터 빼앗은 7천만원 행방도 묘연하다. 경찰은 공식적으로 공범의 존재여부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하지만 경찰 안에선 이 돈이 공범의 ‘수고비’로 주어졌을 수도 있다는 견해다.
경찰은 3년 전 실종된 이씨의 동업자 조모(당시 37세)씨도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재수사에 들어갔다.
조씨는 광주지역 조직폭력단 M파 소속조직원이었다. 그는 2005년 1월께 이씨와 처음 만나 전남 순천 화상경마장 사업투자자를 모으는 일을 했다.
광주시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조씨는 2005년 8월 3일 오후 6시께 광주상무지구에서 이씨를 만났다.
하지만 조씨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부인은 사흘 뒤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조씨가 5억원의 빚 때문에 잠적한 것으로 보고 사건처리를 끝낸바 있다.
그때 참고인조사를 받은 이씨는 “밤 9시쯤 조씨를 만나 차안에서 10분쯤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졌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그날 밤 11시께 아내와 안부전화통화를 한 뒤 자정쯤 휴대폰이 꺼졌고, 지금껏 행방이 아리송하다.
‘지난해 7월 김 여인의 남편이 자살한 과정에도 이씨가 개입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수사팀 안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김 여인의 남편 정모씨는 의처증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계자는 “정씨가 부인이 운영하는 횟집에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런 정씨가 돌연 지난해 7월 서울 용산의 한 모텔 방에서 목맨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정씨의 죽음은 ‘우울증에 따른 자살’로
결론지어졌다. 하지만 2006년부터 이씨와 김 여인이 내연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 경찰조사에 의해 드러났다.
이에 ‘이씨가 정씨 자살에 관련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 여인부부와 이씨가 모두 숨져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긴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의문으로 남는다.
#이호성 모녀 살해사건의 재구성
<살해 동기>
- 김연숙 씨, 2008년 2월 18일 본인 계좌에서 1억7천만원 현금 인출.
- 이호성 씨, 김 여인의 돈 노리고 일가족 살해 계획.
2월 18일(살해 전)
- 오전 0시 10분 : 김 여인, 식당직원에서 “며칠 여행 다녀오겠다” 말한 뒤 퇴근.
2월 18일(살해 시점)
- 오후 4~5시쯤 : 이씨, 대형 여행가방 들고 있는 모습 아파트 CCTV에 찍힘.
- 살해시각(미상) : 김 여인과 둘째딸, 막내딸 등 3명 목 졸라 살해. 침대 매트리스에 김 여인 핏자국 남자 잉크 뿌린 뒤 베란다에 세워 둠.
- 오후 9시14~56분 : 김 여인과 두 딸 시신 여행용 가방에 싣고 나가는 모습 CCTV에 찍힘.
- 오후 11시 : 김 여인 휴대전화로 외출한 큰딸에게 전화. 서울 종로에서 큰 딸 만난 뒤 제3의 장소서 망치로 때려 살해.
<살해 뒤>
2월 19일
- 오전 5시쯤 : 전남 화순군 인근 교회 묘지에 인부 3명 동원. “묘비 세울 구덩이 파달라” 지시. 인부들 떠난 뒤 일가족 시신 암매장.
- 오후 2시 : 광주시 진월동에서 이모(47·여)씨 만나 현금 5천만원, 편지 등 주며 “친형에게 보내라” 부탁.
2월 20일
- 오후 4시 : 김 여인 전화번호로 식당직원에게 ‘식당 잘 부탁한다’ 문자메시지 보냄. (여행 중으로 위장하려)
- 오후 8시 18분 : 김 여인 소유 SM5승용차를 김 여인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는 남자 CCTV에 찍힘.
2월 25일
- 광주 친형에게 안부전화 검.
3월 7일
- 오후 6시 40분쯤 : 경기도 일산에서 진짜 애인 차모(40)씨 만남.
3월 8일
- 오전 1시 : 광주에서 이 여인 만나 5천만원 든 통장 건네며 “1천만원은 갖고 4천만원은 차 여인에게 보내라” 부탁.
- 자정 : 일산에서 차 여인 만나 서울 S호텔 투숙.
3월 10일
- 오전 0시 : 차 여인과 마지막 안부전화통화.
- 오후 3시 8분쯤 : 한강에서 이호성씨 시신 발견.
- 오후 11시 40분쯤 : 전남 화순군 공동묘지에서 김 여인 모녀 4명 시신 발견.